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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진자 증가 '도박' 우려에도 英 "코로나와 함께 일상 산다" [똑똑, 뉴스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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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독자 김민수님의 질의를 받아 담당 기자가 심층 취재해 작성했습니다.

지난 20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서쪽 최대 복합 쇼핑몰 ‘웨스트필드 런던’. 마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출현 이전으로 돌아간 듯했다. 인기 카페와 식당엔 대기 손님이 줄지어 차례를 기다리고, 초콜릿 시식이나 화장품 테스트 행사도 제한 없이 진행됐다. 오후 5시쯤이 되자 24만㎡ 규모의 쇼핑몰은 거의 가득 찼다.

마스크 착용을 권하는 쇼핑몰 내 안내문이 무색하게, 방문객 절반 정도는 마스크 없이 쇼핑을 했다. 특히 어린이나 젊은 층 대부분은 마스크를 벗고 다녔다.

영국 보건부에 따르면 이날 영국 내 코로나19 신규 확진자는 3만2058명. 지난 17일 신규 확진자는 3만6580명에 달했다. 여전히 많은 사람이 이 병에 걸리고 때론 목숨을 잃고 있지만, 쇼핑몰에서는 누구도 이를 크게 의식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판촉 행사 중이던 한 화장품 브랜드의 직원은 “(코로나 전인) 1년 반 전만큼 손님이 많지는 않다. 금요일 오후인데 이 정도 분위기인 걸 보면 완전히 회복됐다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그래도 손님이 돌아오고 판매도 회복돼 희망을 갖고 있다”고 했다. 감염이 무섭지 않은지 묻자 “더블(2차) 접종자인 데다가 젊어서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20일 영국 런던 복합 쇼핑몰 웨스트필드 런던에 모인 사람들. 런던=전영선 기자

20일 영국 런던 복합 쇼핑몰 웨스트필드 런던에 모인 사람들. 런던=전영선 기자

2년째 이어지는 코로나19와의 전쟁에서 영국은 ‘위드 코로나(코로나와 공존)’를 선택했다. 지난달 19일 초ㆍ중등학교 방학에 맞춰 잉글랜드가 봉쇄를 모두 푼 데에 이어 스코틀랜드와 웨일스, 북아일랜드도 순차적으로 코로나 규제를 걷어냈다.

지난 4월부터 4단계로 나뉘어 진행한 봉쇄 완화 계획을 모두 마무리 짓고 그 어떤 나라도 가지 않은 길을 가고 있다. 해외여행 관련 규제를 제외하면 사실상 코로나 이전 시대로 복귀했다.

축구장과 각 공연장, 나이트클럽은 정원까지 꽉 채울 수 있다. 2차 백신 접종까지 마친 경우에는 확진자와 밀접 접촉해도 자가 격리할 필요가 없다. 유전자 증폭 검사(PCR)를 해 음성이면 아무 제약 없이 활동할 수 있다. 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마스크를 써 달라는 당부가 있지만, 강제성은 없다. 대형 마트나 공연장 등 실내에서의 마스크 착용도 개인의 선택에 맡긴다.

영국 코로나19 백신 접종률.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영국 코로나19 백신 접종률.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이런 결단은 백신 접종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동안 축적된 데이터에 기반한 것이다. 영국 정부에 따르면 21일 현재 16세 이상 성인인구 중 백신 2차 접종자는 전체의 76.3%다. 1차 접종을 마친 성인은 전체의 87.5%에 이른다.

영국 공중보건국(PHE) 33주차 백신 감시 보고서에 따르면 백신을 맞으면 코로나19에 걸려도 죽거나 심하게 앓을 위험이 현저히 줄어든다. 2차 접종을 한 경우 알파 변이에 대해서는 93%, 델타 변이에 대해서는 96%가 보호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백신 방어 효능이 영구적인 것은 아니다. 얼마나 지속하는지 현재로서는 알 방법이 없다. 그런데도 영국 정부는 코로나 박멸을 기다리는 대신, 코로나 속 일상으로의 복귀를 택했다.

20일 런던 복합 쇼핑몰 웨스트필드에 설치된 백신 접종 권고 디스플레이. 런던=전영선 기자

20일 런던 복합 쇼핑몰 웨스트필드에 설치된 백신 접종 권고 디스플레이. 런던=전영선 기자

1~3차 웨이브(확산) 당시 보건 시스템을 완전히 마비시킨 중증 환자 수가 대폭 감소하면서 가능했던 선택이다. 인공호흡기가 필요한 중증 환자가 4만 명에 육박했던 지난 1월에 비하면 현재는 양호한 수준(6000명대)이다. 당시 하루 사망자가 1820명을 기록한 날(1월 21일)도 있지만 현재 하루 사망자는 100명 안팎에 머물러 있다.

봉쇄를 완전히 풀면 필연적으로 확진자가 치솟을 것이라는 전망은 빗나갔다. UEFA 유로 2020 기간(6월 11일~7월 11일) 축구 팬 이동으로 5만 명대까지 증가했던 확진자 수는 대회 종료와 함께 떨어지기 시작했고, 봉쇄 해제 이후에도 감소세는 지속했다.

 21일 영국 리버풀에서 축구팬들이 프리미어리그 리버풀 대 번리의 경기를 관람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21일 영국 리버풀에서 축구팬들이 프리미어리그 리버풀 대 번리의 경기를 관람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여기에 경제난 등 다른 사회 문제를 고려해 계속 봉쇄를 이어갈 수 없다는 주장도 ‘위드 코로나’를 택하는 압력으로 작용했다. 지난 16개월 동안 영업 중단과 재개를 반복해 온 식당·펍 등 소규모 영업장과 서비스 부문의 불만이 한계에 달한 것도 부담을 키웠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봉쇄 완전 해제를 앞두고 연 지난달 5일 기자회견에서 “날씨가 따뜻하고 방학이 시작된 지금이 아니면 영원히 규제를 풀 수 없을 것”이라며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되 각자 판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봉쇄 해제에 야당은 우려를 표했지만, 정치적 수사에 그쳤다. 키어 스타머 노동당 대표는 “한꺼번에 규제를 해제하는 것은 난폭한 결정”이라며 “마스크 착용 의무화와 재택근무 권고는 계속돼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영업 정상화에 대해서는 별다른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20일 런던 복합 쇼핑몰 웨스트필드의 한 매장 앞에 직원을 찾는 공고(왼쪽)와 매장 운용 방침을 안내하는 입간판이 나란히 서 있다. 런던=전영선 기자

20일 런던 복합 쇼핑몰 웨스트필드의 한 매장 앞에 직원을 찾는 공고(왼쪽)와 매장 운용 방침을 안내하는 입간판이 나란히 서 있다. 런던=전영선 기자

이미 2년째로 접어든 코로나 사태가 십수년간 이어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상황에서 모든 정부가 코로나에만 매달릴 수는 없다. 그럼에도 코로나와의 공존을 선택한 영국의 실험이 옳은지 현재로는 단언하기 어렵다.

CNN 등에 따르면 일각에서는 이를 ‘도박’이라고 비판한다. 영국의 코로나 19 누적 사망자가 13만1000명이 넘는 상황에서 위험한 선택이라는 것이다. 4단계 완화를 앞두고 영국 과학자 1200명은 “정부가 위험하고 비윤리적인 실험을 하고 있다”는 비판 성명을 내기도 했다.

영국 코로나19 신규 확진자 추이.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영국 코로나19 신규 확진자 추이.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경제에는 일단 긍정적이다. 경제 지표가 회복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 12일 영국 통계청에 따르면 비필수 점포의 영업이 부분 재개된 2분기 영국 국내총생산(GDP)이 전분기보다 4.8% 증가했다. 영국은행 전망치(5%)에 미치지 못했지만 선방했다는 평가다. BBC는 전문가를 인용해 “오는 10월쯤 영국 경제는 2020년 2월 이전 수준으로 회복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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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임상 시험을 이끈 앤드루 폴러드 옥스퍼드대 교수는 지난 10일 코로나19 관련 초당파 모임에서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은 사람을 검사하고 중증 입원 환자 치료를 개선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폴러드는 “집단면역이 가능하지 않은 상황"이라며 "백신 접종자도 잘 감염시키는 새로운 변이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영국이 선택한 '위드 코로나'의 고비는 가을이 될 전망이다. 신학기가 시작하고 실내 활동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북아일랜드처럼 그동안 확진자 수가 상대적으로 적었던 지역에서 갑자기 감염자가 느는 현상도 골칫거리다.

일단 영국 정부는 지난 1일부터 백신 접종 연령대를 16~18세로 확대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사지드 자비드 영국 보건부 장관은 “9월 중 건강 취약층에 대한 3차 접종(부스터 샷)을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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