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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인기 ·노메달에도 선수들은 당찼다···MZ세대의 도쿄올림픽

중앙일보

입력

한국 수영(다이빙) 대표 우하람이 3일 일본 도쿄 아쿠아틱스 센터에서 열린 남자 다이빙 3m 스프링보드 결승 경기에서 연기를 펼친뒤 코치진과 인사하고 있다. [도쿄=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Z]

한국 수영(다이빙) 대표 우하람이 3일 일본 도쿄 아쿠아틱스 센터에서 열린 남자 다이빙 3m 스프링보드 결승 경기에서 연기를 펼친뒤 코치진과 인사하고 있다. [도쿄=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Z]

“예능프로그램에서 메달 못 딴 선수 특집 보고 싶다.” “이번에 ‘노메달’인 A 선수에게도 관심 가져주세요.”

SNS에 올라온 글의 일부입니다. 지난 8일 폐막한 2021 도쿄올림픽에선 MZ세대를 주축으로 새로운 문화가 탄생했습니다.  ‘노메달’ 국가대표 선수를 찾아내는 알리는 일입니다. 이번 올림픽에서 대한민국 대표 선수단은 금메달 6개, 은메달 4개, 동메달 10개로 종합 16위를 기록했습니다. 지난 2016년 리우올림픽에서는 8위, 2012 런던올림픽에서는 종합 5위를 했던 만큼 만족스러운 성적표는 아니었죠. 그러나 이번엔 메달이나 순위, 성적에 그 누구도 연연하지 않았습니다.

[밀실]<제71화>
MZ국가대표 선수들을 만나다

“같은 나이인데 얼마나 노력했을지 아니까, 응원해주고 싶다.” 한 누리꾼이 단 댓글처럼 결과보다 개인의 노력과 과정을 더 중요하게 보는 MZ세대가 또래 국가대표 선수들과 공감대를 형성하며 응원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건데요. 메달을 따지 못한 비인기 종목 국가대표 선수들을 찾아내는 응원 문화는 빠르게 ‘놀이’처럼 번졌습니다. 밀실팀도 이 놀이에 동참해봤습니다.

관중의 관심, 비인기 종목 인기로 이어졌으면

“리우올림픽 때 예선 탈락하니까 ‘수영해서 돌아와라’는 댓글도 달렸는데, 이번 올림픽은 고생하고 노력했다는 걸 알아주는 게 감사하단 생각이 들어요.”-다이빙 국가대표 우하람(24) 선수

“괜찮다고, 잘했다고 다들 해줘서 메달을 따지 못했다는 죄책감보다 감사한 생각이 더 많이 들었어요.” -역도 국가대표 이선미(22) 선수

“이렇게 큰 사랑을 받아본 적이 처음이라서 신기해요. 자부심을 느끼고 더 잘해야겠다는 책임감도 느껴요.” -럭비국가대표 최성덕(23) 선수

밀실팀이 만난 ‘노메달’의 비인기 종목 국가대표 선수들은 그런 인기와 응원에 어느 때보다 힘이 난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선수들은 개인의 유명세가 목적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각기 다른 장소에서 밀실팀을 만난 선수들은 미리 입이라도 맞춘 듯 똑같은 말을 전했는데요. “비인기 종목을 조금이라도 알릴 수 있어 좋았다”는 겁니다.

럭비 국가대표 최성덕(23) 선수. 석예슬 인턴

럭비 국가대표 최성덕(23) 선수. 석예슬 인턴

럭비팀 국가대표 장정민(28) 선수는 “럭비를 알린 것만으로도 올림픽 출전 목표를 달성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습니다. 사상 첫 올림픽 무대에 선 대한민국 럭비팀은 지난 7월 26일 열린 7인제 럭비 조별리그 A조 첫 경기에서 뉴질랜드에 5대50으로 졌습니다. 세계 랭킹 2위인 뉴질랜드팀을 상대로 올림픽 첫 득점을 기록했지만, 결국 ‘아름다운 꼴찌’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최성덕 선수는 “꼴찌인 게 사실이라 기분 나쁘지 않다”며 “잃을 게 없는 밑바닥이라고 생각해 보여주고 싶은 걸 보여주자고 생각했고 실제로도 후회 없다"고 합니다.

럭비팀뿐 아닙니다. 우하람 선수도 “다이빙을 처음 봤는데 이렇게 재미있고 스릴 넘치는 줄 몰랐다고 말씀해주시는 게 기억에 남는다”고 합니다. 다이빙 훈련장이 따로 없어 코로나19로 인해 공공시설인 수영장이 폐쇄돼 연습이 어려운 현실을 보면, 종목에 대한 관심을 반갑게 여기는 선수들의 마음이 이해됩니다.

국가대표이기 이전에 올림픽 즐기는 MZ세대

도쿄올림픽은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으로 무관중으로 진행된 최초의 올림픽이었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선수들은 누군가 지켜본다는 부담감을 내려놓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올림픽에서 기억에 남는 장면을 말하는 선수들의 답변이 꼭 경기에 국한되어 있지 않은 것도 그래서였을 겁니다.

장정민 선수는 “유튜브에서 영상을 찾아보면서 따라 해보려고 노력했던 뉴질랜드 선수들과 직접 부딪혀야 한다니까 떨리고 설렜다”며 웃었습니다. 또 세계적인 선수들과 함께 개막식에서 입장했던 순간에도 스스로가 올림픽에 와 있다는 게 신기했다고 해요. 긴장감보다는 설렘이 더 컸던 거죠.

올림픽에 출전한 럭비 국가대표팀이 지난 7월 26일 일본 도쿄스타디움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7인제 럭비 조별리그 A조 뉴질랜드와의 경기에서 패한 뒤 서로를 격려하고 있다. [연합뉴스]

올림픽에 출전한 럭비 국가대표팀이 지난 7월 26일 일본 도쿄스타디움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7인제 럭비 조별리그 A조 뉴질랜드와의 경기에서 패한 뒤 서로를 격려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선미 선수는 “코로나가 심해져 올림픽 때마다 있던 맥도날드가 이번엔 없었다”며 아쉬웠던 점을 털어놓습니다. 또 다른 종목 선수들과 숙소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멋진 순간도 기억에 남는다고 합니다.

결과에 100% ‘쿨’하긴 힘들지만 금방 극복

선수들은 결과에 ‘쿨’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장정민 선수는 “메달이 너무 따고 싶었는데 도저히 안 돼서 아쉬웠다”고 토로했고, 우하람 선수도 “모든 선수에겐 메달 욕심이 있다. 선수들에게 메달은 정말 간절하다”고 말했어요.

롤 모델을 두지 않고 운동한다던 이선미 선수도 카메라에 잡히지는 않았지만, 용상 3차 시기에서 155kg을 들어 올리지 못한 직후 뒤돌아서 눈물을 흘렸다고 해요. 이선미 선수는 직전 2차 시기에서 152kg에 성공해 상위권이었지만, 3차 시기에서 실패해 아쉽게 4위에 머물러야 했죠.

지난 2일 도쿄 국제포럼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여자 역도 최중량급(87㎏ 이상)에서 이선미 선수가 용상 1차시기 148kg을 성공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일 도쿄 국제포럼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여자 역도 최중량급(87㎏ 이상)에서 이선미 선수가 용상 1차시기 148kg을 성공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렇지만 선수들은 서러움을 금방 잊고 회복하는 정신력을 가졌습니다. 이선미 선수는 “안타깝고 우울했던 건 딱 시합 다음 날까지였다”며 “시합 다음 날부터는 다음 대회를 준비해야 해서 마음이 분주해졌다”고 말합니다.

최성덕 선수도 “한 번에 1등이나 2등을 꿈꾸기보다, 바닥부터 시작해서 끝까지 올라가는 게 제가 생각하는 한국 럭비의 최종 목표”라며 “그때까지 지켜봐 달라”는 말을 전했죠. 우하람 선수도 다음 올림픽을 향한 투지를 불태웠습니다. 우 선수는 “다음 올림픽 때는 꼭 메달을 따와서 이번에 국민 여러분이 보내주신 사랑에 보답하겠다”고 포부를 밝혔습니다.

처음 받아보는 관심에 책임감이 더 커졌다며 2024 파리올림픽을 준비하는 선수들인데요. 관중인 우리의 모습은 어떨까요. 메달과 순위, 그리고 종목과 상관없이 모든 선수에게 다시 한번 더 박수갈채를 보낼 준비가 됐을까요.

밀실은 '중앙일보 레니얼 험실'의 줄임말로 중앙일보의 20대 기자들이 도있는 착취재를 하는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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