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가정법 16년 전쟁…"차별적 법령" vs "동성혼 합법화 음모"

중앙일보

입력 2021.08.22 08:18

국회 여성가족위원회는 지난 18일 예정됐던 법안소위를 당일에 급히 취소했다. 더불어민주당 의원(정춘숙·남인순)들이 대표 발의한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안을 논의하려 했지만, 국민의힘이 항의가 거셌던 탓이다.

“동성혼 합법화” vs “오해”…10만 청원, 건강가정법 전쟁

지난 3월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에서 인신매매·착취방지와 피해자보호등에 관한 법률안에 대한 공청회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3월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에서 인신매매·착취방지와 피해자보호등에 관한 법률안에 대한 공청회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여가위에선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안을 둘러싼 조용한 입법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정춘숙·남인순 의원이 지난해 9월과 11월 각각 발의한 개정안이 법안 이름을 ‘가족정책기본법’으로 바꾸는 등 법을 새로 제정하는 수준의 전면 개정안이라서다. ‘혼인·혈연·입양으로 이뤄진 사회 기본단위’라고 한 가족의 정의 규정(3조 1항), ‘가족해체 예방’(9조) 규정 등을 삭제하는 게 핵심이다. ‘건강가정’(정상가정)이란 테두리를 없애, 가족의 형태로 차별받지 않도록 해야한다는 게 취지다.

그러나 보수 기독교계와 학부모 단체를 중심으로 “동성혼 합법화 시도”라는 반대 여론이 거세다. 지난 17일에는 국회 입법반대 청원이 10만 명 이상의 동의를 받아 여가위에 회부됐다. 가족의 법적 정의를 삭제한 걸 두고 “동성커플을 법적 가족으로 인정해주려는 것. 법안에서 ‘양성평등’ 용어를 대거 삭제한 것도 동성커플을 가족으로 인정하려는 목적”이라는 게 청원의 이유였다. 이 때문인지 법안은 1년 넘게 법안소위 문턱도 넘지 못했다.

국민의힘 여가위원들 역시 5월과 6월 열린 두 차례 법안소위에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양금희 국민의힘 의원은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조문에는 나타나있지 않지만 모든 형태의 가정에 대해 지원을 하겠다는 그런 게 이 법안의 취지”라며 “모든 형태의 가정이라는 걸 생각해보면 우리가 동의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다”고 말했다. “법의 목적·정의·용어를 다 바꾸는 것이기 때문에 공청회를 한 번 하는게 어떠냐”(김미애 의원)는 의견도 나왔다. 김 의원은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가족해체 예방규정은 왜 삭제하나. 해체가 예방되도록 노력하는 게 맞지 않나”고도 말했다.

그러나 민주당에선 법안 심사 지연이 임계점에 달했다는 기류가 읽힌다. 당 차원의 중점 법안은 아니라는 게 민주당 원내지도부 설명이지만, 여가위원들의 처리 의지가 강하다. 정춘숙 여가위원장은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논의를 계속 미뤄왔는데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 여가위 관계자는 “9월부터 국정감사가 시작되고, 이후 곧바로 대선 국면”이라며 “그 때부턴 상임위 자체가 제대로 진행 안 될 우려가 있어 빨리 진행해야 한다. 다른 법안도 여기에 막혀 3월 이후 심사를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청원에서 문제 삼는 동성혼 합법화와 관련해선 “동성혼은 민법 개정 사안인데 오해하는 것”이라는 입장이다.

배경엔 16년 논쟁 역사, 2005년부터 대체 입법 시도

지난 2017년 부산 해운대구 해변도로에서 성 소수자 권리향상 문화행사 부산퀴어축제 참가자들이 거리행진하고 있다. 인도에는 동성애와 동성혼의 합법화를 반대하는 단체가 인간띠 잇기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017년 부산 해운대구 해변도로에서 성 소수자 권리향상 문화행사 부산퀴어축제 참가자들이 거리행진하고 있다. 인도에는 동성애와 동성혼의 합법화를 반대하는 단체가 인간띠 잇기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첨예한 갈등의 배경에는 ‘정상가족론자’들과 진보파 여성계의 16년에 걸친 논쟁사(史)가 있다. 건강가정기본법은 노무현 정부였던 2003년 12월 당시 원내 150석 야당이었던 한나라당 주도(박종웅·김홍신 의원 대표발의)로 통과됐다. “건강가정을 육성하기 위해 가정중심의 통합적 복지서비스 체계를 확립할 수 있는 행정적, 제도적 기틀 마련하겠다”는 게 입법 취지였다. 실무적으로는 2005년 6월 여성부에서 명칭을 바꾼 여성가족부가 전담하는 가족 해체 예방 정책 등의 근간이 됐다.

그러나 여성계에선 2005년 법 시행 직후부터 폐지론이 상당했다. ‘동성 가족, 비혼 가족 등에 대한 차별을 방치·묵인한다’는 이유였다. 2005년 장향숙 열린우리당 의원은 대체법인 ‘가족지원기본법’을 발의하기도 했다. 가족 개념을 ‘아동을 위탁받아 양육하고 있는 공동체, 민법상 후견인이 있는 공동체, 미혼부·모와 아동으로 구성된 공동체, 그밖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공동체’ 등으로 대폭 확대한 게 특징이다. 당시 참여연대와 여성단체 등에서 ‘가족지원기본법제정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입법 투쟁에 나서기도 했다.

여성학 박사인 허민숙 입법조사처 조사관은 “법을 두고 여성학계와 가정학계가 오랫동안 대립해온 것으로 알고 있다. 여성학계에선 ‘건강가정이란 말은 건강하지 않은 가정을 반대 급부로 상정한 것’이란 주장을, 가정학계에선 ‘건강·비건강으로 나누려는 게 아니다’란 의견을 내왔다”고 말했다.

학계와 시민사회에서도 전공·정치성향에 따른 찬반 대립이 계속되고 있다. 김선혜 이화여대 여성학과 교수는 “2005년 이미 국가인권위원회가 법안명 변경을 권고했다. 기존 정상가족의 규범을 유지할 게 아니라 시대 상황에 맞게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인정해야 한다. 입법 취지가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반면 정지영 대한가정학회 가정학실천위원장(여주대 교수)은 “성평등 정책, 차별 문제는 다른 정책으로 해결해야지 왜 권력 싸움을 가정 안으로 끌고 들어오느냐. 건강가정이란 단어가 차별이란 주장도, 유지·지원을 위한 측면이 있는데 곡해한 것”이라며 “법안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동성혼 문제를 거론하며 목숨 걸고 반대하는 곳도 있지 않나. 공론화의 계기로 삼는 게 나을 것”이라며 법안에 유보적 입장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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