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떨게한 '하늘 나는 장군'…그의 말년은 극장 경비였다[뉴스원샷]

중앙일보

입력 2021.08.22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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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호 내셔널팀장의 픽: 홍범도 봉환이 남긴 과제 

“나 홍범도, 고국 강토에 돌아왔네. 바람 찬 중앙아시아 빈 들에 잠든 지 78년 만일세.”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8일 홍범도 장군(1868~1943)의 대전현충원 안장식에서 한 말입니다. 이동순 시인의 글귀를 인용한 추모사는 장군의 고단한 생애를 잘 보여줍니다. 카자흐스탄에서 서거 후 고국에서 영면하기까지 78년의 여정을 담고 있습니다.

홍 장군은 항일 무장투쟁의 주역이면서 ‘봉오동 전투’를 승리로 이끈 걸로 명성이 높습니다. 1920년 6월 중국 지린성 봉오동 골짜기에서 일본 정규군을 섬멸한 전투를 통해서 입니다.

같은해 10월에는 김좌진(1889~1930) 장군의 북로군정서군과 함께 만주 청산리에서 일본군 1개 여단을 격퇴했습니다. 일본군이 ‘하늘을 나는 장군’이라며 두려움에 떤 이유입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18일 오전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홍범도 장군 유해 안장식에서 묵념하고 있다. 중앙포토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18일 오전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홍범도 장군 유해 안장식에서 묵념하고 있다. 중앙포토

지난 17일 독립기념관에서는 ‘홍범도 장군 미공개 영상 자료 기증식’이 열렸습니다. 그간 흑백사진으로만 보던 ‘하늘을 나는 장군’이 영상을 통해 최초로 공개된 겁니다. 5분50초 분량의 영상에는 군복을 입은 홍 장군 모습이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해당 영상은 1922년 1월 21일 러시아(당시 소련) 모스크바에서 개막한 국제공산당(코민테른) 국제대회를 촬영한 것입니다. 당시 ‘원동민족혁명단체대표회’ 에 참석한 홍 장군이 꼿꼿한 기개로 환담을 나누는 모습 등이 담겼습니다.

항일독립 투쟁사에서 큰 족적을 남긴 장군의 말년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스탈린 정권의 한인 강제이주정책에 의해 이역만리 타국 땅에서 숨을 거둔 겁니다. 1937년 연해주를 떠나온 장군은 카자흐스탄에서 75세를 일기로 서거했습니다.

지난 14일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 현지에 있는 홍범도 장군 묘역에서 추모식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4일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 현지에 있는 홍범도 장군 묘역에서 추모식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홍 장군이 쓸쓸한 노년을 보낸 흔적은 카자흐스탄 곳곳에 남아있습니다. 카자흐스탄의 옛 수도인 알마티 시내의 ‘고려극장’이 대표적입니다.

홍 장군은 옛 소련에 의해 강제이주된 후 고려극장에서 경비로 일하며 말년을 보냈다고 합니다. 이번 국내 봉환 전까지 그의 무덤은 알마티에서 1100㎞가량 떨어진 크즐오르다에 있었습니다.

홍 장군의 유해 봉환 문제가 풀린 것은 카자흐스탄과 고려인과의 깊은 인연에서 비롯됐습니다. 문 대통령이 2019년 4월 21일 카자흐스탄을 국빈방문할 당시 봉환의 실타래를 푼 게 시작입니다. 당시 양국 정상회담을 통해 홍 장군의 유해를 봉환하는 문제를 논의해 긍정적인 답변을 얻어낸 겁니다.

문 대통령이 당시 정상회담을 앞두고 고려극장을 찾은 것도 현지 고려인들을 들뜨게 했습니다. 한국 대통령이 수도인 누르술탄이 아닌 알마티를 방문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답니다.

당시 문 대통령은 현지 고려인들과의 간담회에서 “많은 동포분들이 카자흐스탄 고려인사회의 자부심이 되고, 한국과 카자흐스탄을 연결하는 황금다리의 역할을 해주시고 계시다”라고 말했습니다.

일제강점기때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를 승리로 이끈 홍범도 장군. 오른쪽은 그가 말년을 보낸 고려극장의 현재 모습. 중앙포토, 알마티=최경호 기자

일제강점기때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를 승리로 이끈 홍범도 장군. 오른쪽은 그가 말년을 보낸 고려극장의 현재 모습. 중앙포토, 알마티=최경호 기자

현재도 카자흐스탄에는 알마티를 비롯한 나라 곳곳에 10만6000여 명의 고려인이 살고 있습니다. 고려인은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에 러시아 연해주로 이주한 한인들을 말합니다. 홍 장군처럼 옛 소련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이주한 후 극심한 차별대우 속에서 궁핍한 삶을 살아야 했답니다.

고국으로 돌아온 홍 장군의 봉환을 놓고 “이제야 시작”이라는 목소리도 높습니다. 일제강점기 당시 조국을 떠나 만주로, 연해주로, 중앙아시아까지 흘러가야 했던 독립운동가들이 여전히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탓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문 대통령이 지난 18일 대전현충원에서 한 추모사는 또다른 숙제를 남기는 듯합니다. “아직도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애국지사들이 많고,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독립운동가들이 많으며, 가려진 독립운동의 역사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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