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오면 상담" 과태료 최대 1억…헬스장 가격표시제 논란

중앙일보

입력 2021.08.22 05:00

서울 마포구의 한 헬스장. 뉴스1

서울 마포구의 한 헬스장. 뉴스1

올 여름 필라테스를 배우기로 마음먹었던 30대 직장인 A씨는 가격을 알아보다 홈 트레이닝으로 노선을 틀었다. 그는 “여기저기 돌아다닐 시간이 없는데, 가격 비교를 해보려고 해도 방문해야만 수강료를 알려준다고 한다”며 “학원 투어를 할 수도 없고, 진입장벽이 높아 결국 포기했다”고 말했다.

9월부터는 체육시설 등록 문의를 할 때 이런 상황을 겪지 않아도 된다. 매장 안이나 밖, 홈페이지 등에 가격을 공개적으로 안내하는 ‘서비스 가격표시제’가 체육시설업에 적용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1년 등록 시 월 3만원’처럼 구체적인 조건을 명시해야 한다. ‘파격 할인, 월 3만원’이라는 광고를 보고 찾아갔더니 1년 회원권 기준이라고 안내하는 등 소비자 피해를 막기 위한 조치다.

이 제도가 적용되는 업소는 헬스장, 요가ㆍ필라테스 학원, 골프연습장, 에어로빅장, 태권도ㆍ유도ㆍ검도 체육도장 등이다. 이를 위반하는 사업장은 표시광고법에 따라 최대 1억원의 과태료를 내야 한다.

소비자들 “진작 적용됐어야…환영”

소비자들은 이 제도가 진작 적용됐어야 했다고 입을 모은다. “등록 여부를 결정짓는 건 결국 가격인데, SNS 메시지나 전화로도 알려주지 않고 방문을 유도하는 건 일종의 갑질”이라면서다.

회원마다 각기 다른 등록 비용을 두고 ‘횟감처럼 시가를 적용하냐’는 비판도 제기돼 왔다. 직장인 최모(31)씨는 “내가 필라테스 학원에 가격을 문의했을 때랑 엄마가 물어봤을 때 가격이 10만원 이상 차이가 난 적도 있다. 사람 봐 가면서 돈을 받더라”며 “이제 여러 업장의 가격 비교가 쉽게 가능해질 테니 체육시설 문턱도 더 낮아지고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업자들은 “가격 경쟁 치열해질 듯”

체육시설 운영자 사이에서도 가격표시제는 뜨거운 감자다. 9월 중 시행될 예정이지만,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정확한 적용 날짜를 공지할 때까지 ‘긴장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요가학원 강사 A씨는 “업장 입장에선 방문을 유도하는 게 비즈니스 마케팅의 하나다. 직접 만나 맞춤형으로 상담해드리면 신뢰도가 높아져서 등록으로 이어져 왔던 것”이라며 아쉬움을 표했다.

가격 경쟁이 심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박주형 필라테스·피트니스사업자연맹 대표는 “그동안은 업장을 방문해 직접 설명을 듣고 시설을 보고 결정하시는 소비자들이 많았다면, 이제 무조건 가격만으로 평가하게 될 것”이라며 “그렇게 되면 가격 경쟁에서 출혈이 생기고 시장은 더 힘들어진다”고 말했다.

그는 “경쟁적으로 가격이 낮아질수록 회원권을 길게 끊도록 해야 수익이 나는데, 순간적으로 돈은 벌 수 있어도 잠재부채를 갖게 된다”며 “수익률을 제대로 따져보지 못해 피해를 보는 초보 사업자나, 이슈가 됐던 ‘먹튀 헬스장’이 발생할 확률이 높아진다”고 지적했다.

파격적인 가격을 내세운 체육시설 광고 전단. 직접 찾아가면 대부분 '12개월 등록 시' 등 조건이 붙는 경우가 많다. 온라인 캡처

파격적인 가격을 내세운 체육시설 광고 전단. 직접 찾아가면 대부분 '12개월 등록 시' 등 조건이 붙는 경우가 많다. 온라인 캡처

추가 옵션ㆍ이벤트로 실효성 없다?

일각에서는 가격표시제의 실효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방문 상담 시 할인’ 조건을 내세우거나 시설 이용료 등 추가 옵션이 붙어 실효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교묘하게 추가금 붙이는 업장이 있으면 당장 신고하겠다”는 등 불신을 표하는 소비자도 있다.

실제로 미용실은 앞서 지난 2012년 업장 앞에 가격정보를 공개하는 ‘옥외가격표시제’를 시행했지만 제도의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 가격표시는 형식적으로만 할 뿐 실제 소비자에게는 기장이나 머릿결 손상도, 두피 케어 등을 이유로 추가 비용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미용실 옥외가격표시 시행 2년 후인 2014년 한국여성소비자연합이 211개 미용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추가요금이 발생하는 곳이 84.7%(179곳)에 달했다.

강정화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물가위원장은 “일부 사업자들이 가격표시제를 실제 소비자에게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주겠다는 의도로 하기보다는 의무니까 한다는 생각으로 소극적으로 하는 것 같다”며 “형식만 맞춰 일부만 보여주기식으로 하게 되면 성공하기가 어려운 제도”라고 꼬집었다.

이어 “모든 서비스의 가격과 조건을 적을 수 없으니 어떤 항목의 가격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공정위의 세심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며 “가격정보를 잘 보이지 않는 곳에 비치하지 않는 사례도 단속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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