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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플] 이것은 배달인가, 수렵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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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플레터 99호, 2021. 05. 28 

팩플레터 9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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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러분! 🙆
오늘은 ‘전 국민 배달시대, 축복 혹은 저주’ 설문 결과를 전해드리러 왔습니다. 이번 레터를 작성한 심서현 기자의 취재후기를 먼저 전해드립니다.

‘배민커넥트’, ‘쿠팡이츠’를 인터넷 검색해보면 수많은 일반인들의 ‘후기’가 나옵니다. 몇 건 해서 얼마를 받았는지, 날마다 일기처럼 쓰는 블로거나 유튜버도 많습니다. 부업 배달 정보가 담긴 콘텐츠를 사람들이 관심 있게 소비하니까요. 긱 워크(gig work)니 크라우드 워크(crowd work)니 말하지만, 어쩌면 이건... 무작정 집을 나와 쓸만한 배달거리를 찾아다니는, 수렵과 채집의 시대로 회귀한 건가 싶기도 합니다.

지금의 부업 배달 전성시대를 불러 온 여러 요소가 있지만, 참여자 편에서 보자면 ‘쉬운 문턱’을 꼽을 수 있습니다. 단기 아르바이트를 구하려 해도 사진, 주소, 학력을 비롯해 각종 개인정보와 이력을 적어내야 하죠. 나이가 적으면 경험 없는데 할 수 있냐, 나이가 많으면 그 나이에 왜 이 일을 하냐...😬 구구절절 설명도 해야 합니다. 오래 거둬줄 것도 아니면서 많은 정보와 대면을 요구하니 구직자로서 피로하기 짝이 없습니다. 배달 부업은 이런 절차 없이 곧바로 할 수 있고, 어디서 구하고 단가는 얼마인지 정보도 공개돼 있습니다. 문턱 낮은 부업이 있다는 건, 일감을 찾는 이에게 다행스러운 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배달 시장 소비자이기도 합니다. 소비자인 나는 안전하게 배달을 받고 싶어합니다. 이 때의 '안전'은 배달기사의 안전도 있지만, 나 자신의 안전을 의미하기도 하죠. 배달받을 때 거주지 주소가 노출되니까요. ‘성범죄자의 배달 기사 취업을 막아달라’는 국민 청원이 있었고, 이를 검토한 국민권익위원회가 지난 3월 국토부에 이를 제도화하라고 권고했습니다. 그러자 여야 국회의원들이 관련 법안을 여러 건 발의했습니다. 배달기사를 모집할 때 배달서비스업체가 지원자의 범죄경력을 조회해서 걸러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택시기사나 택배기사는 국가 자격증이 필요한 직종입니다. 지원자의 강력범죄나 성범죄 전과를 국가가 조회해, 전과자에겐 자격증을 안 줍니다. 회사는 기사에 대해 '자격증 있나'만 확인하면 되겠죠. 하지만 배달기사 국가 자격증은 없잖아요? 만약 법안이 통과된다면, 단 1건을 배달하더라도 지원자 범죄경력 조회를 배달서비스업체가 해야 합니다. 업체 입장에서는 기사 1명을 새로 모집할 때 드는 시간과 비용이 추가되는 거죠. 이게 커지면 회사는 배달료를 올리든지, 많은 이를 모집하는 부업 배달을 포기하든지 하겠지요.

부업으로 쉽게 시작할 수 있는 배달, 검증된(성범죄 전과 확인 등) 사람만 하는 배달, 싸고 빠른 배달. 이 3가지를 동시에 얻을 수 있을까요? 물론 이 외에도 ‘교통 안전을 저해하지 않는 배달’, ‘기사가 다치지 않는 배달’ 등 달성해야 할 목표들이 있습니다. 결국 우리는 어디에 무게를 둘지 선택해야 할 겁니다. 우리는 소비자이기도👛, 노동자이기도💪, 보행자이기도🚶 하니까요. 배달 시장을 취재하며 해본 생각입니다.

자, 이제 설문결과를 보러 가시죠.

부업은 늘었으면, 배달 질은 높았으면?

지난 팩플레터(2021.05.25)에서, 쿠팡이츠나 배달의민족 일감을 수행하는 부업 배달기사가 늘어나는 걸 어떻게 보시는지 여쭤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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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자의 72.1%가 ‘긍정적으로 본다’라고 답하셨어요. 그렇게 답하신 이유,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이번 설문은 이유를 1개씩만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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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3%가 ‘배달되는 곳이 늘면 소비자로서 편해지니까’를 택하셨습니다. 음식배달 주문량이 증가할 뿐 아니라 편의점과 화장품 등 각종 배달 영역도 늘어나기에, 업체들은 부업 기사를 계속 모집합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배달되지 않던 가게, 배달되지 않던 품목이 배달되면 편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어서 32.1%가 ‘실직자 등 당장 소득이 급한 이들이 일할 수 있어서’를 꼽아주셨습니다. 지난해부터 지속된 코로나19 상황에서 많이 실감하신 부분일 겁니다. 그 다음은 ‘자투리 시간에 투잡을 할 수 있어서’가 25.9%의 선택을 받았습니다. 이 둘은 소득이 필요한 노동자로서 긍정적인 면이 되겠네요.

점주 입장에서 본 긍정적 측면인 ‘배달되는 곳이 늘면 판매자의 기회가 늘어나니까’를 택한 분은 상대적으로 적은 7.4% 였습니다.

반대로, 부업 배달기사의 증가를 ‘부정적으로 본다(27.9%)’고 답하신 분들의 이유를 살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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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 응답자의 절반에 가까운 46.9%가 ‘산재 등 보호받기 어려운 일자리가 늘어나는 것이어서’를 택하셨습니다. 부업 배달자도 도보 뿐 아니라 킥보드·오토바이·승용차로 도로를 통한 배달도 하니 위험도가 결코 낮지 않은 업무이니 말이죠.

두번째로는 28.1%가 ‘노동 비용을 아끼려는 플랫폼의 속셈 같아서’라고 답하셨습니다. 회사와 기사가 고용 관계이거나 전속성(한 업체와 주로 일함)이 있다면 회사도 산재보험료를 비롯해 기본적인 비용을 들이지만 부업 배달기사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죠.

부업 기사의 증가로 인한 ‘교통사고나 불법 주정차 같은 안전문제’를 꼽으신 분은 15.6%였고, ‘배달 위주가 되니 자영업자의 배달료 부담이 늘어서’를 택한 분은 3.1%로 가장 적었습니다. 기타 의견도 대개 비슷하게 적어주셨는데, ‘배달 전문성이 없어 실수가 잦다’는 의견이 눈에 띄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제도에 대한 질문을 드렸는데요. ‘배달서비스업을 택배처럼 등록제로 하는 것을 어떻게 보시는지’ 여쭤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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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반에서 각각 두 가지 측면의 이유를 선택지로 드렸는데요, ‘정부의 개입’과 ‘시장의 구조’ 측면에서였습니다.

정부 개입 측면에서의 장점은 안전과 노동조건 같은 기본 관리가 된다는 것이고, 단점은 규제가 늘어 혁신을 막을 수 있다는 거죠. 시장의 측면에서는 등록제가 되면 업체가 우후죽순 난립하지 않고 시장이 정화된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에, 소형 업체보다 행정·법무 여력이 있는 대형 업체에게 유리하다는 점도 있습니다.

위의 네 가지 선택지를 드렸는데. 응답률 순서는 아래와 같았습니다.
찬 : 국가가 관리해야 안전&노동 사각지대가 없어진다 (44.1%)
찬 : 일정 수준 이상 업체만 사업해야 시장이 정화된다 (28.9%)
반 : 영세업체가 불리해, 배민 쿠팡 같은 큰 업체만 남게 된다 (17.1%)
반 : 각종 정부 규제가 늘어나 혁신이 어렵다 (9.1%)

전체적으로, 배달서비스업 등록제에 대한 의견은 찬성 73%반대 26.1%였습니다.



팩플레터는 이렇게 운영되고 있어요.
💌화요일, 이슈견적서 FACTPL_Explain이 담긴 레터를 발송합니다.
💌목요일, 팩플의 인터뷰와 칼럼이 담긴 FACTPL_View를 드립니다.
💌금요일, 화요일 레터의 설문 결과를 공개하는 FACTPL_Unboxing을 보내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