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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플] 전 국민 배달시대, 축복 혹은 저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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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플레터 97호, 2021. 05. 25 

Today's Topic 전 국민 배달 시대

팩플레터 97호

팩플레터 97호

안녕하세요! 여러분, 팩플레터 박수련입니다.
오늘은 배달 플랫폼🚴 얘기를 들고 왔습니다. 음식배달 시장 1위 우아한형제들(배달의민족)이 글로벌 기업 딜리버리히어로(DH)와 합병을 결심한 핵심 이유 중 하나는 ‘쩐의 전쟁’이었습니다. 음식점 사장님과 배달기사가 이탈하지 않을 만큼의 적정 배달료, 손님이 만족할 만큼 다양한 메뉴와 배달속도. 이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게 플랫폼의 경쟁력인데, 나날이 비용 경쟁이 더 치열해졌죠. ‘1주문 1배달’을 들고나온 쿠팡이츠가 여기에 기름을 부었고요.💥

아무리 업계 1위라 해도 배달료나 플랫폼 광고수수료를 묶어둔 채 배달기사 유치 비용만 더 쏟아부어야 한다면 혼자서는 오래 버티기 힘듭니다. 결국, DH의 수혈을 받은 배민도 배민원(1)을 다음달초 출시합니다. 쿠팡이츠가 불붙인 ‘부업배달 시장’에 배민도 뛰어든단 의미죠. 이들의 경쟁이 가져다줄 (더 많은 사람이 일할)기회나 (더 빨라질 음식배달의)편리함 못지 않게, 사회가 부담할 ‘비용’도 늘어나게 됐습니다. 그래서 오늘 심서현 기자가 이 문제를 자세히 정리해봤어요. 전국민 배달원 시대, 여러분은 어떻게 보실까요? 여러분의 설문 답변을 기다리며... 오늘도 감사합니다. 😀


🧾 목차

1. 쿠팡 ‘한 번에 한 집’이 일으킨 파장
2. 여기서 손정의가 왜 나와?
3. 모두의 배달
4. 넘치는 ‘부업’, 긴장한 ‘생업’
5. 계산되지 않은 비용, 누가 내나
6. 법은 지금

1. 쿠팡 ‘한 번에 한 집’이 일으킨 파장

배달 시장과 노동 논의의 방향이 급 전환됐다. 쿠팡이츠 ‘한집 배달’ 효과다.

● 배달 플랫폼의 경쟁력은 식당-기사-소비자 삼각형의 무게중심을 찾는 일. 기사들의 시간당 배달 수입을 늘리기 위해 플랫폼이 찾은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음식을 연달아 픽업해 순차 배달하는 ‘묶음배송’ 허용. 둘째는 AI 추천 배차. AI가 최적의 기사에 콜을 주고, 동선을 고려해 몇 곳을 묶어주기도 한다. ‘배송의 효율’을 지향한다.

● 쿠팡이츠 ‘한집 배달’이 이걸 흔들었다. 소비자는 음식이 빨리 오니 좋은데, 문제는 기사 소득. ‘픽픽픽픽배배배배’ 4~5건 묶어 배송하던 시간에 ‘픽배’ ‘픽배’ 단건배달 2건만 가능하니, 시간당 수입이 줄어든다. 시장 논리로는 점주-손님이 내는 배달료가 올라야 하는데, 쿠팡은 이걸 제 돈으로 메웠다. 건당 많게는 1만원 이상씩 배달료에 얹어 줬다. 적자를 감수하고 ‘내일 배송’에 고객을 길들였던 로켓와우 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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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여기서 손정의가 왜 나와?

쿠팡이츠발(發) 배달전쟁은 글로벌 배달 시장 ‘쩐의 전쟁’의 연장선이다. 막대한 투자로 업계 판도를 뒤집은 사례, 미국에서 이미 있었다. 그때의 자금줄도, 지금 쿠팡의 투자자인 소프트뱅크였다.

● 2018년 초까지, 미국 음식배달 시장점유율은 그럽허브〉 우버이츠 〉 도어대시 순이었다. 그런데 3위였던 도어대시가 치고 올라와 2018년 말에는 2위, 2019년엔 1위에 올랐다. 각종 할인과 배달료 프로모션 비용을 대거 지출하고 직접 배달을 늘린 결과다.

● 도어대시의 도약은 소프트뱅크가 7500억원의 자금을 댔기에 가능했다. 지난해 말 도어대시가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하자, 소프트뱅크의 투자금(지분) 가치는 상장 첫날에 17배로 불어났다. 통 큰 투자로 통 큰 수익을 낸 것. 국내 배달업계에서는 소프트뱅크의 이같은 학습 효과가 쿠팡이츠로 이어졌다고 본다.

● 한국 상황도 마찬가지다. ‘돈싸움’에 참전한 건 현재 업계 1위 배민. 배민은 다음달 단건배달·자체배달 서비스인 ‘배민원’을 내놓는다. 쿠팡이츠 같은 100% 단건배달은 아직 아니다. 요기요는 “현재는 단건배달 도입 계획이 없다”고 했다.

🎇 소프트뱅크 vs 내스퍼스

쿠팡이츠 뒤에는 소프트뱅크가, 배민 뒤에는 내스퍼스가 있다. 소프트뱅크가 알리바바 투자로 명성을 얻었다면, 남아공 투자기업 내스퍼스는 ‘텐센트에 투자해 대박 난 회사’로 유명하다. 글로벌 배달시장에서 소프트뱅크는 도어대시·우버이츠·쿠팡이츠 등에 투자했고, 내스퍼스는 배민을 인수한 독일 딜리버리히어로(DH)를 비롯해 저스트이트테이크어웨이·푸드판다 등에 직간접 투자했다.

3. 모두의 배달

단건배달로 기사의 시간당 배달 건수가 줄었는데, 전체 배달 물량은 늘었다. 이는 ‘부업 배달기사’의 증가로 이어졌다. 배민과 쿠팡은 기존 기사가 친구를 초대하면 돈을 주는 프로모션 경쟁까지 벌였고, 코로나19로 수입이 줄어든 자영업자 등이 빠르게 유입됐다. 그러자 산재보험이 없어 사고 나도 산재보험 적용(치료비, 휴업급여 등) 못 받는 기사도 동시에 늘었다.

배민의 기사 : 크게 3종류다. 전업기사(배민라이더스), 부업기사(배민커넥트), 대행업체 기사. 이중 배민(의 배달 자회사)과 계약한 기사는 라이더스와 커넥트이며, 이들이 배민에 접수된 배달의 5% 정도를 수행한다(나머지 95%는 생각대로 등 배달대행업체 몫). 라이더와 커넥트 모두 산재보험에 가입한다. 회사와 기사가 각각 주당 3200원 정도씩 보험료를 낸다.

쿠팡이츠의 기사 : 모든 배달 일감은 쿠팡과 계약한 ‘배달 파트너’가 수행하며, 전업/부업 구분은 없다. 산재보험은 일정 조건(쿠팡이츠에서 월 118시간 이상 일하거나 124만원 이상 수입 올림)을 충족한 기사가 원할 경우 가입할 수 있다. 부업 기사는 대개 이 조건이 안 된다. 배달기사 단체 라이더유니온은 “쿠팡이 무보험으로 수많은 국민들을 라이더로 만들어 비용을 아낀다”고 주장한다.

● 쿠팡이츠도 할 말은 있다. 회사가 내건 산재가입 조건은 고용노동부가 법에 따라 정한 ‘전속성(한 업체와 주로 일하는가)’ 기준에 따른 것이다. 현행법(산업재해보상보험법)은 한 업체와 주로 일하는 기사에 한해 산재보험을 적용한다. 부업 기사는 어차피 근로복지공단이 산재 승인 안해줄 테니 가입해도 소용 없지 않느냐는 게 쿠팡이츠의 논리인 셈이다.

● 그러나 부업 기사인 배민 커넥트가 전원 산재보험에 가입하면서, 배달 중 다친 부업 배달기사가 산재 승인 받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고용노동부 산재보상정책과는 팩플에 “아직 법의 보호 밖에 있는 플랫폼 노동자들이 많아서, 산재보험 적용 범위를 넓히는 쪽으로 법을 개정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 배달기사의 산재보험

산재보험은 노동자가 업무상 재해를 당한 경우 치료비나 휴업급여 등을 받게 하는 보험이다. 일정 규모(5인) 이상 사업장은 비정규직이나 일용직원도 산재보험에 가입해야 하며, 보험료는 100% 회사가 낸다. 그러나 회사와 ‘위탁용역계약’을 맺은 배달기사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로, 보험 의무가입이 아니며 보험료도 회사와 기사가 50%씩 낸다. 사실상 회사의 협조가 없으면 가입이 어려운 이유다.

법이 개정돼, 오는 7월부터 퀵·배달 기사가 전속성 요건을 충족할 경우 산재보험에 의무가입해야 한다(임신·질병 등의 휴업 제외). 고용노동부는 ‘전속성 관계 없이’ 산재보험 가입하는 법 개정도 고려하고 있다.

4. 넘치는 부업, 긴장한 생업

단건 배달에 찬성하는 전업 기사들도 상당하다. ‘픽픽픽배배배’보다 시간에 덜 쫓겨 상대적으로 사고 위험이 적고, 현재는 프로모션비도 챙길 수 있기 때문. 문제는 앞으로다. 쿠팡-배민의 기사 모시기 경쟁이 일단락 돼 플랫폼이 더이상 돈을 쓰지 않고, 늘어난 부업 기사와 일감 경쟁까지 해야 한다면.

전업/부업 흐려진 경계 : 단건배달에서는 동선 짜기 같은 전업기사의 숙련도는 상대적으로 덜 중요해졌다. 일하는 시간만큼 소득을 올리는 구조다. 더 오래 일하겠다는 기사들의 요구에, 배민은 운행 시간 제한(배민커넥트 주 20시간, 배민라이더 주 60시간)을 풀었다. 쿠팡이츠는 원래 제한이 없었다.

신규 모집 막을 수 있나 : 민주노총 서비스일반노조 배민라이더스지회는 지난달 “단건배달 시행 후 라이더 소득이 줄고 있다”며 회사에 ‘신규입직 중단’을 요구했다. 일감을 나눠야 하니, 신규 라이더 충원을 그만하라는 것. 그러나 업계에서는 현실성이 높지 않다고 본다. 배달 수요가 늘고 있기도 하고, 신규 모집을 막을 법적 근거도 없다는 것.

● 배달 분야 확장 : 이 와중에 비(非)음식 배달도 늘어난다. 지난해 올리브영(CJ)과 아리따움(아모레퍼시픽)이 각각 화장품 당일배송 ‘오늘드림’과 ‘오늘도착’을 시작했다. 편의점 GS25는 일반인 부업 기사를 모집해 ‘우리동네 딜리버리’를 시작했다.

● 뭉칠 수 있나 : 한국고용노동연구원 장지연 박사는 “부업 기사들이 많이 유입되면 배달 기사간 이질성이 커져 조직화가 어렵고 회사를 상대로 협상력이 떨어질 수 있다”고 봤다. 지난해 배민은 민주노총 서비스일반노조 배민라이더스 지회를 협상대상자로 인정하고 라이더 복지 등에 대한 단체협약을 맺었다. 그런데 스스로 노동자라는 인식이 적은 이들이 배달시장에 많이 유입되면 이런 일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 배달 기사의 엘리베이터 사용을 막는 ‘출입 갑질 아파트’ 같은, 공동 대응해야 할 문제도 ‘여러 사람이 1~2시간씩 배달’하는 환경에서는 진지하게 논의되기 어렵다는 얘기다.

5. 계산되지 않은 비용, 누군가 낸다?

도로 안전문제, 주차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는데 다양한 방법으로 배달하는 사람 수가 늘었다. 제도가 뒷받침되지 않는 상태에서 발생하는 각종 불편과 위험비용은 사회가 지불하는 중이다.

킥보드 사고 : 자전거와 전동킥보드를 이용한 부업 배달자가 늘어난다. 활동 반경이 넓어져 배달 플랫폼에서 더 많은 주문을 받을 수 있어서다. 동시에 킥보드 관련 교통사고와 민원도 급증.

'시민의 발'이 '영업의 발'로 : 서울시 ‘따릉이’ 같은 공공자전거 활용 배달도 문제다. 지자체 공유자전거는 공공성을 인정해 세금으로 지원한다. 이용객 당 지원금을 계산하면 버스보다 따릉이가 높다. 지난해 따릉이 요금으로 모자라 시에서 메운 적자(자전거 수리비 등)는 100억원 가량. 배달 이용이 늘수록 이 비용은 늘고, 혜택은 소수가 입는다. 서울시가 2019년 배달 업체들에 ‘따릉이 배달 금지' 공문을 보냈고 업체들도 이를 금하지만, 적발은 어렵다.

보험 사각지대 : 자동차건 오토바이건, 돈 받고 물건 나르다 낸 사고는 ‘유상운송보험’에 가입돼 있어야 보상받는다. 승용차 유상운송 특약 보험료는 일반보다 40% 가량 비싸다(사고율이 높음). 그런데 개인승용차로 배달 부업을 하는 이가 늘지만, 이들의 유상운송 특약 가입률은 1%가 채 안 되는 것으로 조사됐다(2020년 금융감독원 조사). 이런 차들이 배달하다 사고 내면 상대방 신체 부상에만 보험이 적용되고, 남의 차(대물)나 자기 차, 자기 신체에는 적용이 안 된다.

주정차는 어디에 : 택시회사나 렌터카 회사는 차고지나 주차장 공간을 의무적으로 갖춰야 한다(여객자동차법, 화물운송사업법). 그러나 배달 오토바이나 킥보드 관련 규정은 없다. 음식 전달 시 배달기사가 알아서 오토바이와 킥보드를 해결해야 하니 불법 주정차가 잦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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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법은 지금

지난 1월 국회 통과돼 7월부터 시행되는 생활물류서비스법(생물법)이 배달 시장도 다룬다. 그런데 어정쩡한 규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 등록 vs 인증 : 생물법은 물류를 ‘택배’와 ‘소화물배송’(퀵, 음식배달 등 배달서비스업)으로 나눴다. 새 법에 따라 택배사업은 등록제가 됐다. 택배사업자는 국토교통부 심사를 받아 등록하고, 시설·장비에 대한 관리 감독도 받는다. 반면 배달서비스업은 등록제가 아닌 자유업으로, 원하는 업체가 '인증을 신청할 수 있다'는 것이어서, 지금과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다.

● 심상정 안 : 심상정 의원실은 배달서비스업도 등록제로 하는 생물법 개정안을 곧 발의할 예정이다. 배달서비스사업자도 국토부 심사를 거쳐 등록하며, 기사 안전교육과 사고 처리, 보험가입 등을 관리할 의무가 있다는 내용이다.

● 성범죄자 배달업 금지안 : 구자근·홍문표·김승원·오영환 의원이 따로따로 발의한 4건의 개정안도 올라와 있는데, 모두 성범죄 전과자의 배달 취업 금지에 대해서다. 배달서비스사업자에게 배달기사의 범죄경력을 조회할 권한과 걸러낼 의무를 준다는 내용.

● 기대와 우려 : 배달사업 등록제에 대해 라이더유니온 측은 “라이더의 보험이나 자격 확인 같은 기본적인 안전 장치를 갖출 수 있고, 비상식적 업체를 걸러낼 수 있다”며 찬성했다. 반면 익명을 요구한 한 배달대행사 임원은 “라이더는 이직 빈도가 매우 높은 업종인데, 등록제로 가면 각종 행정업무가 많아져 영세업체가 대부분인 배달 지사의 부담이 커진다”며 “자칫 배민·쿠팡이츠 같은 대형업체만 남을 수 있다”고 했다.

팩플서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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