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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보감, 中에 로열티 줄 뻔…"치열한 단어 전쟁, 환경외교" [뉴스원샷]

중앙일보

입력 2021.08.21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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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외교' 책을 낸 김찬우 전 외교부 기후변화 대사. 강찬수 기자

'환경외교' 책을 낸 김찬우 전 외교부 기후변화 대사. 강찬수 기자

지난 2010년 10월 일본 나고야에서 개최된 생물다양성협약(CBD) 제10차 당사국총회.

각국 대표단은 '생물 유전자원과 관련된 전통지식'이란 주제에서 토착 지역 공동체가 보유한 전통지식을 활용해 의약품 등을 개발할 경우 공동체에 혜택을 돌려주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었다.

중국 측이 갑자기 새로운 문제를 들고나왔다.

소수민족 정책 때문에 토착 지역 공동체를 인정하지 않는 중국이 국가가 보유한 전통지식에 대해서도 혜택이 주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이슈가 갑작스럽게 전체 회의에서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고, 한국 대표단에는 비상이 걸렸다.

중국 주장이 받아들여진다면 한국이나 일본 등 동북아 다른 국가들이 공유하고 있는 한의학 지식도 기원이 어디에 있는지 따지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허준의 '동의보감'에 들어있는 내용까지도 중국에서 온 것이라고 주장한다면 그 지식으로 만든 의약품도 중국에 '로열티'를 지불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나고야의정서 협상 때 중국 주장 물리쳐

김찬우 전 외교부 기후변화 대사(오른쪽)가 박영우 전 유엔환경계획(UNEP) 아태지역 사무소장이 얘기를 나누고 있다. 강찬수 기자

김찬우 전 외교부 기후변화 대사(오른쪽)가 박영우 전 유엔환경계획(UNEP) 아태지역 사무소장이 얘기를 나누고 있다. 강찬수 기자

개발도상국의 지지를 바탕으로 목소리가 커진 중국에 대해 위기감을 느낀 한국은 뉴질랜드·호주·캐나다 등과 연대해 강하게 맞섰다.
중국이 '나고야 의정서' 전체의 타결에 어깃장을 놓는 상황에 이르자 유럽연합(EU)도 은근히 중국의 편을 들었다.

결국 계속된 줄다리기 끝에 중국 측 입장을 의정서 서문에 원론적으로 반영하고, 본문에는 중국 측 주장을 삭제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대한민국의 입장을 관철하면서 국익을 지켜낸 셈이다.

당시 협상 현장에서 맹활약했던 김찬우(61) 전 외교부 기후변화 대사가 최근 쓴 책 '사례를 통해 살펴본 한국의 환경외교'에 담겨있는 한 장면이다.

'환경외교' 책 낸 김찬우 전 기후변화 대사

김찬우 전 기후변화대사의 책.

김찬우 전 기후변화대사의 책.

1984년 외교부에 들어가 외교부 환경협력과장과 환경부 국제협력관, 정부 기후변화 대사 등을 역임하면서 외교관 생활의 대부분을 환경 외교에 바친 그의 경험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책이다.

그는 주(駐) 브라질 대사를 마지막으로 30여 년을 훌쩍 넘긴 외교관 생활을 지난달 마감했다.

지난 18일 서울 시내에서 만난 김 전 대사는 "환경외교는 한 마디로 국익을 위한 것이지만, 그 국익도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며 "과거에는 산업발전과 경제성장만에 환경외교의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미래에는 국격(國格)까지도 고려해야 한다"며 입을 열었다.

그는 "'2주일 동안 모여서 회의를 한 결과가 고작 합의문 한 줄 밖이냐'고 하실 수도 있지만, 그 한 줄이 나오기까지 꼼꼼한 사전 준비와 협상 현장에서의 치열한 논쟁이 숨어 있다"며 "국익을 위해 문장 하나, 단어 하나까지 챙기는 게 바로 환경 외교"라고 말했다.

그는 "1980년대 시작할 때부터 한국의 환경외교는 개도국과 선진국 중 어떤 지위를 갖느냐로 많은 고민을 해왔다"고 설명했다.

2008년 경남 창원에서 열린 람사르 협약 당사국 회의에 참석한 김찬우 환경부 국제협력관 [중앙포토]

2008년 경남 창원에서 열린 람사르 협약 당사국 회의에 참석한 김찬우 환경부 국제협력관 [중앙포토]

1996년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고 97년에 개도국 협상그룹인 77그룹(G77)에서 탈퇴하면서 이 문제는 더욱 부각됐다.

국제 사회는 지구 환경보호 등과 관련해 한국에 선진국에 걸맞은 역할을 요구했지만, 한국 정부와 국민은 선진국이 될 마음의 준비가 안 된 상태였다.

선진국의 역사적 책임이 강조되는 기후변화협약 등 환경 외교 현장에서, 선진국과 개도국 중간에 있던 한국은 입자가 좁을 수밖에 없었다.

김 전 대사는 "산업구조 등 전환이 필요했는데 준비가 안 됐고 시간이 필요했다"며 "환경외교가 이처럼 필요한 시간을 벌어주는 역할도 해냈다"고 말했다.

"코펜하겐 밀실 정상회의 가장 기억 남아"

2009년 12월 덴마크 코펜하겐의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장 모습. 강찬수 기자

2009년 12월 덴마크 코펜하겐의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장 모습. 강찬수 기자

2009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에서는 NAMA(Nationally Appropriate Mitigation Actions· 국가별 적합한 감축 행동) 등록부제를 '코펜하겐 합의문'에 반영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온실가스 감축 의무가 없는 한국과 같은 신흥국들이 자발적으로 감축 활동을 한 뒤 그 성과를 유엔기후변화협약 사무국에 등록하는 제도가 NAMA등록부제를 제시해 온실가스 감축 노력에는 적극적으로 동참하면서도 선진국과 같은 의무 감축은 피할 수 있었다.
지구온난화에 대한 역사적 책임 면에서 선진국과 다르다는 점을 강조한 결과였다.

김 전 대사는 "개인적으로도 2009년 12월 코펜하겐에서의 '밀실 정상회의'를 참관할 수 있었던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당시 2주일 동안 진행된 협상의 마지막 날인 12월 18일 회의장 구석방에 한국의 이명박 대통령과 의장국인 덴마크 라스무센 총리, 오바마 미국 대통령, 브라운 영국 총리, 메르켈 독일 총리,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등 25인의 정상들이 비공개회의를 열었다.

교토의정서가 만료되는 2012년 이후의 기후변화체제를 밀도 있게 논의했던 이 회의는 '정상회의 중의 정상회의(The Summit within summit)'로 불렸다.
고든 브라운 총리는 이 회의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중요한 회의'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김 전 대사는 "회의장에 들어가 참관하게 됐는데, 정상들 식사시간에는 회의장에 다시 못 들어올 수도 있겠다 싶어 회의장에서 샌드위치로 때웠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국격까지 고려하는 게 미래의 환경 외교"

김찬우 전 기후변화대사. 강찬수 기자

김찬우 전 기후변화대사. 강찬수 기자

그는 "2015년 파리 기후협정이 체결되면서 선진국과 개도국 사이에 처한 한국의 고민은 자연스럽게 해소됐다"고 설명했다.

선진국과 개도국 구분 없이 모두가 온실가스 감축에 참여하고 신기후체제가 출범했기 때문이다.

그는 "개별 주권 국가들이 자유롭게 역량에 맞게 감축에 기여하면 되는 방식이지만, 이 파리 협정이 약한 듯하면서도 절대 약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후퇴 금지 원칙에 따라 5년 단위로 더 강한 국가 감축 목표(NDC)를 제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선진국들은 최근 국가 위상에 맞게 경쟁적으로 2030년 감축 목표를 제시하고 있고, 2050년 탄소 중립을 선언하고 있다.

김 전 대사는 "온실가스 감축이란 시대 비전에 맞게 우리도 기후변화 대응을 우리 미래의 성장 동력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며 "어차피 해야 한다면 추격하는 국가가 아니라 한 걸음 앞서 나가는 국가가 돼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환경 외교 현장에서 겪은 다양한 경험을 후배들에게도 전해주고 싶은 마음에서 책을 쓰게 됐다"며 "환경 외교 분야 천착해 큰 역할 하는 후배를 보고 싶다"고 말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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