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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분도(分道)론, 29년만에 남북 쪼개나…與 대선 주자들 공방

중앙일보

입력

지난 19일 오후 경기도 연천군 신서면 대광리. 상가 및 주택가는 조용했다. 휴전선과 인접한 접경지역인 이곳에는 빈 상가와 주택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 오가는 주민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이 지역은 군사보호구역으로 묶여 발전이 더딘 데다 주민들은 군부대 동의가 나지 않아 낡은 화장실이나 담장을 제대로 고치지 못한다. 심지어 축사도 마음대로 짓지 못해 생업마저 위협받고 있다. 3번 국도와 인접한 곳인데도 건물 신·증축에 제한을 받으면서 주택가와 상가 지역은 슬럼화돼 가고 있다.

지난 19일 오후 경기도 연천군 신서면 대광리 상가 및 주택가의 낙후한 모습. 이석우 연천지역사랑실천연대 대표

지난 19일 오후 경기도 연천군 신서면 대광리 상가 및 주택가의 낙후한 모습. 이석우 연천지역사랑실천연대 대표

경기북부, 각종 규제로 낙후상 면치 못해  

현장을 안내한 이석우 연천지역사랑실천연대 대표는 “각종 규제로 인해 날로 낙후해 가는 신서면 일대에서는 아기 울음소리가 끊기다시피 한 지 오래됐다”며 “지난해와 올해 신생아가 각각 1명 태어난 게 전부”라고 말했다. 그는 “연천군 내에는 현재 작은 영화관 하나도 없을 정도로 낙후상을 면치 못하고 있다”며 “경기도가 남북으로 분도(分道) 되면 도 차원에서라도 주인 의식을 가지고 낙후 지역에 대한 지원 및 발전 대책을 수립하고 시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9일 오후 경기도 연천군 신서면 대광리 상가 및 주택가의 낙후한 모습. 이석우 연천지역사랑실천연대 대표

지난 19일 오후 경기도 연천군 신서면 대광리 상가 및 주택가의 낙후한 모습. 이석우 연천지역사랑실천연대 대표

20일 연천군에 따르면 연천군 총면적 676.32㎢ 가운데 94.62%인 총 639.95㎢(통제보호 237.45㎢, 제한보호 402.5㎢)가 군사시설 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지역발전에 제약을 받고 있다. 연천군 관계자는 “연천은 군사시설 보호구역 말고도 수도권정비계획법과 문화재 보호법 등의 규제를 받고 있어서 정부의 도로 등 SOC(사회간접자본) 사업투자 우선순위에서 배제되고 민간사업자의 투자가 위축되는 등으로 인해 지역 개발에도 제약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낙후한 경기북부 발전 기틀 마련하자” 분도론 취지

경기도를 남북으로 둘로 나누자는 분도 주장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을 중심으로 이슈로 떠오르면서다. 분도 주장은 1992년 대선 와중에 거론된 후 지난 29년간 선거철을 전후해 이어졌다. 남부보다 낙후된 북부를 분리해 체계적인 지역발전의 기틀을 마련하자는 게 분도론의 핵심이다. 이번 분도 주장에는 여권의 대선 주자들이 불을 지피고 경기북부 지자체장, 국회의원, 시의원 등이 동참하고 있다. 유력한 주자인 이재명 경기지사는 ‘시기상조론’을 고수하며 반대 입장을 보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후보인 이낙연 전 대표가 지난달 30일 경기도 의정부시 경기도청 북부청사 잔디광장에서 국가균형발전 및 경기도 분도 관련 좌담회를 갖고 참석자들과 박수를 치고 있다. 왼쪽부터 김민철 의원, 이낙연 전 대표, 오영환 의원. 뉴스1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후보인 이낙연 전 대표가 지난달 30일 경기도 의정부시 경기도청 북부청사 잔디광장에서 국가균형발전 및 경기도 분도 관련 좌담회를 갖고 참석자들과 박수를 치고 있다. 왼쪽부터 김민철 의원, 이낙연 전 대표, 오영환 의원. 뉴스1

이번 분도론은 더불어민주당 대선 주자인 이낙연 전 대표가 포문을 열었다. 지난달 30일 의정부에 있는 경기도북부청을 찾아 분도를 약속했다. 그는 경기북도 설치가 필요한 이유로 경기 남북부의 균형발전, 주민 편의를 위한 생활권·경제권·행정구역 일치, 안보로 희생한 지역에 대한 보상, 한반도 평화시대를 준비하는 전진기지 등을 제시했다.

더불어민주당 정세균 대선 경선 후보가 지난 16일 경기도 의정부시 신곡동 경기도북부청사 앞 평화광장에서 기자 간담회를 열고 경기북도 설치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정세균 대선 경선 후보가 지난 16일 경기도 의정부시 신곡동 경기도북부청사 앞 평화광장에서 기자 간담회를 열고 경기북도 설치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어 같은 당 대선 주자인 정세균 전 국무총리도 지난 16일 같은 장소에서 분도를 약속했다. 정 전 총리는 “분도는 경기북부 주민의 숙원이다. 경기도는 너무 비대해져 운영의 문제가 있을 수 있고, 남북부의 차이도 커 조화시키는 데도 한계가 있어 분도 해 특성에 맞는 행정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낙연 전 대표·정세균 전 총리, 분도 주장  

이에 경기북부 지자체장도 가세했다. 조광한 남양주시장은 지난 16일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글을 올려 “경기도를 남도와 북도로 나누는 효율적인 방안을 더 미뤄서는 안 된다”며 “경기도는 서울과 한강을 기준으로 도민의 생활권을 비롯해 법원과 경찰도 분리된 지 오래인데 행정구역만 그대로”라며 “작으면 합치는 것이, 너무 커지면 나누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라고 했다. 조 시장은 “역대 도지사들의 반대로 경기북도 설치가 탄력받지 못했다”며 “분도를 선언하는 순간 영향력과 정치권력이 줄어들기 때문에 반대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조광한 경기 남양주시 시장. 오종택 기자

조광한 경기 남양주시 시장. 오종택 기자

더불어민주당 김민철(의정부을) 의원은 지난 13일 경기북도 설치를 위한 온라인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조정되면 길거리 서명운동도 벌일 예정이다. 김 의원은 지난해 관련 법안을 대표 발의한 데 이어 비슷한 법안을 낸 국민의힘 김성원(동두천·연천) 의원과 함께 지난달 19일 ‘경기북도 설치를 위한 국회 추진단’을 출범시켰다.

김민철(더불어민주당ㆍ의정부시을) 국회의원. 김민철 의원실

김민철(더불어민주당ㆍ의정부시을) 국회의원. 김민철 의원실

온라인 서명운동 전개  

김민철 의원은 “지난해 경기북부의 1인당 GRDP(지역내총생산)는 2401만원으로 경기남부(3969만원)의 60% 수준이고, 재정자립도(28.2%)도 남부(42.9%)보다 여러 해 동안 지속해서 14%포인트 정도 낮다”며 “경기 북부지역의 인구는 지난해 391만명을 넘어 서울과 경기남부에 이어 전국 3위인데, 행정서비스와 사회기반시설은 여전히 열악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경기북부를 별도의 광역자치 행정 주체로 만들어 독자적인 개발계획과 효율적인 도정을 추진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대선주자인 이재명 경기지사가 지난 10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의 한 빌딩에서 줌 화상 기자회견을 통해 기본금융 관련 5차 정책발표를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더불어민주당 대선주자인 이재명 경기지사가 지난 10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의 한 빌딩에서 줌 화상 기자회견을 통해 기본금융 관련 5차 정책발표를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이재명 지사 “자립 기반 확보 후 분도 검토해야”

이와 관련, 이재명 경기지사는 지난 2일 충북지역 기자간담회에서 “지금 경기도를 나누면 북도의 경우 지방 재정력이 취약해서 매우 가난한 도가 될 수 있다”며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재차 밝혔다. 이 지사는 “분도로 이익을 보는 쪽은 한 군데로, 정치인들과 고위 공직자의 자리가 늘어난다”며 “자립 기반을 확보한 이후에 분도를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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