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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기자 프리즘] 출판문화 진흥이라는 화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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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0호 31면

신준봉 전문기자/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신준봉 전문기자/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지난 9일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노조는 출판 담당 기자들에게 e메일을 돌렸다. 그 전주에 열린 임원추천위원회(임추위)에서 추천한 두 명의 새 원장 후보 모두에 대해 문화체육관광부가 부적격 판정을 내리자 행동에 나선 것이다. 노조의 비판은 문체부를 겨냥한 게 아니었다. “진흥원 임추위가 특정 출판단체의 목소리가 강하게 반영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 결함을 지녔다”고 지적했다. 그 배경에 진흥원 이사회가 있다고 했다. 9명 정원의 이사회의 절반 이상이 출판계 인사들로 채워져 있는 데다, 그 안에서도 특정 단체의 입김이 세다 보니 진흥원 이사가 5명이나 포함된 전체 7명의 임추위 심사가 왜곡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노조는 이사회, 그러니까 임추위에 포함된 출판계 위원들이 자기들 입맛에 맞는 후보가 원장이 될 수 있도록 점수를 몰아줬다는 일부 언론의 의혹 제기에 대해 해명하고, 이런 사태를 초래한 현 이사회 이사들과 임추위 위원들은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출판계 진흥원장 선정 갈등 #지원 당연시 하면 문제, 자성해야

복잡하다고 느끼실 테니 사태를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다. 우선 진흥원이 올 한해 500억원이 넘는 예산을 전액 정부에서 지원받는 공공기관이라는 점을 추가하자. 하지만 소속원들이 공무원 신분은 아니다. 공무원 연금 대신 국민연금을 납부한다. 이런 기관의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이사회에 출판계 인사가 다수 포진돼 있다. 그리고 이들이 자신들 입맛에 맞는 인사를 원장으로 임명하려 한다. 의혹 제기대로라면 요즘 시대에 이렇게 해도 되나 싶은 무리수를 둬가면서까지 말이다. 그러자 ‘반관반민’ 노조원들이 성명을 발표하기에 이른 것이다. 좀 더 간단히 어쩌면 거칠게 정리한다면, 정부가 세금 들여 도와주겠다는데 민간은 정부는 돈만 대라고 하는 형국이라고 할 수 있다. 정부는 그럴 수 없다는 것이고(500억원은 적은 돈이 아니다), 민간은 출판산업은 우리가 제일 잘 아니까 지원사업에서 일정한 주도권을 직접 행사해야 한다는 거다. 그런 생각들인 것 같다.

이해가 상충하는 사안들이 대개 그렇지만 ‘출판산업 지원 방식’이라는 오늘의 화두도 해법이 쉽지 않아 보인다. 정답이 있을 리 없다.

외국에는 진흥원 같은 기관이 없다고 한다. 출판 선진국뿐 아니라 그렇지 않은 나라에도 없단다. 한 출판계 인사 말대로 그렇다고 우리 정부가 세금 들여 출판 진흥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당장 영화진흥위원회가 생겨난 덕에 K-무비가 급성장하지 않았냐는 지적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한국 영화 산업의 성장 배경에는 성공의 냄새를 맡은 대기업 자본의 유입, 그 돈을 제대로 활용할 줄 알았던 능력 있는 인적 자원의 역할이 더 컸다는 반론에 부딪힐 가능성이 있다. 진흥원을 어쩌자는 게 아니다. 지금처럼 잡음 생산지가 돼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정부 지원을 하나의 디폴트처럼 당연시하는 풍토도 우려스럽다. 진흥원 임추위에서 압축한 두 명 후보에 포함됐던 한 인사는 정부의 부적격 판정으로 진흥원 입성이 좌절된 직후 야당의 한 대선후보 캠프에 가담했다고 한다. 어떤 사람에게 진흥원장 자리는 그저 감투일 뿐이다.

외부 전문가들의 심사를 거친다고는 하지만 출판사 책을 진흥원이 직접 사주는 세종도서 사업은 어쩐지 시대착오적인 것 같다. 국정교과서인가. 양서는 우리가 공급할 테니 도서관은 받기만 하라는 얘기 아닌가. 이 사업에만 진흥원은 한해 90억원 가까운 돈을 쓴다.

화두는 불교의 난제다. 출판 진흥이라는 숙제에 화두를 갖다 붙인 건 그만큼 형식에서나 효율성 면에서나 쉽지 않아 보여서다. 그렇다고 득도와 거리가 먼 공염불만 중얼거릴 건가. 출판계나 진흥원이나 지금 서 있는 자리, 그리고 자기 주변을 다시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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