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환 曰] 각자도생의 배수진 쳐야

중앙선데이

입력 2021.08.21 07:52

업데이트 2021.08.27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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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0호 30면

한경환 총괄 에디터

한경환 총괄 에디터

‘영원한 친구는 없다’는 국제사회의 냉엄한 현실이 이번 아프가니스탄 사태로 다시 한번 확인됐다. 지난 20년 동안 아프간에 주둔해 온 미군이 철수하자마자 탈레반이 수도 카불을 재장악한 것은 상징적 사건의 시작에 불과하다. ‘결국 믿을 건 나 자신뿐’이라는 각자도생의 생존법이 2020년대 새로운 세계질서로 자리 잡을 태세다. 정권의 안보를 그리고 국가의 운명을 누구의 손에도 맡길 수 없다는 것은 이제 너무나 자명해졌다.

아프간과 한국은 다르다지만
언제까지 미국만 믿고 있을 순 없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미국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 전쟁에서 기한 없이 머물며 싸웠던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핵심 이익이 걸려 있지 않은 곳에 더는 개입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

한국과 아프가니스탄을 단순 비교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 있다. 바이든은 A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아프간과) 대만·한국·나토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바이든 대통령이 반복적으로 밝혀왔던 것처럼 한국이나 유럽에서 미군을 감축할 의향이 전혀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런 말을 곧이곧대로 들어선 안 된다. 사드 배치, 방위비 분담금 협상, 연합훈련 실시, 중국을 겨냥한 지역 안보협력체인 쿼드 참여 등을 둘러싼 갈등이 첨예하게 노출된 한미동맹이 언제나 굳건히 순항한다는 법은 없다.

“미군은 아프가니스탄·이라크뿐만 아니라 터키·카타르·독일과 같이 정치적으로 민감한 지역에서도 철수할 게 거의 확실하다. 냉전 시대 잔재로서 미국이 주둔하는 지역-한국·일본·이탈리아 등이 떠오른다-에서의 철수도 그리 머지않았다.” 이는 지난해 출간된 미국판 『각자도생의 세계와 지정학(Disunited Nations)』(피터 자이한 지음, 김앤김북스)이 미리 내다본 그림이다.

피터 자이한은 “한 세대가 지나기 전에 미국은 역사상 가장 폭넓고 가장 심층적이며 가장 많은 나라로 구성된 동맹 체제를 대폭 축소해 손에 꼽을 정도의 나라들로 줄이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물론 이는 한 개인의 의견에 불과할 뿐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백 번 새겨들어야 할 만한 가치는 충분히 있다.

이렇게 세계질서가 급변한 건 아무래도 미국의 위상과 역할의 극적인 변화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냉전 시절 초강대국 미국은 모든 동맹국의 절대적 안보를 보장했고, 압도적인 해상력으로 세계 어디든 화물 운송을 가능케 하고, 만국을 위한 세계시장을 조성하고, 세계 기축통화 역할을 함으로써 누구도 대신하지 못하는 역할을 해 왔다. 물론 지금도 그런 비슷한 역할을 절대적 비중으로 해내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미국은 지금 세계 분쟁지역 곳곳에서 발을 빼고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를 내세우는 나라가 돼 버렸다. 이 구호를 선창한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뿐 아니라 후임인 민주당 바이든도 크게 보면 같은 길을 가고 있다. 미군의 아프간 철수는 각자도생을 부르짖는 현대 미국의 자화상을 생생히 보여 준다.

언제까지 미국만 바라볼 순 없지만 그렇다고 당장 ‘자주’만 외칠 수는 없다. 허겁지겁 도망친 아프간 가니 대통령도 탈레반을 저지할 수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혼자 힘으로 막을 수 없다면 지금은 미국과의 동맹을 더욱 강하게 만드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일 것이다.

하지만 종국엔 각자도생의 배수진을 치지 않으면 안 된다. 급변하는 국제정세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않으면 우리도 아프간처럼 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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