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서 비행기 타고 온다···제주 산부인과 수상한 영업비밀

중앙일보

입력 2021.08.21 05:59

업데이트 2021.09.01 14:37

제주도의 A산부인과에 서울과 부산 등 전국에서 자궁근종 환자가 몰렸다. 고가의 초음파 치료 장비인 하이푸(HIFU)를 이용한 치료를 받기 위해서였다. 게다가 이 병원의 하이푸 시술비용은 다른 병원의 4배인 1300만원이었지만 인기는 식지 않았다.

제주도의 A산부인과는 브로커를 고용해 환자를 유치한 후 허위 서류를 꾸며 보험금을 타낸 혐의로 1심에서 유죄를 선고 받았다. pixabay

제주도의 A산부인과는 브로커를 고용해 환자를 유치한 후 허위 서류를 꾸며 보험금을 타낸 혐의로 1심에서 유죄를 선고 받았다. pixabay

경찰 조사 결과 이 병원의 전국구 인기는 보험사기로 드러났다. 브로커를 이용해 전국에서 환자를 모은 뒤 부풀린 진료비를 보험사에 청구한 것이다. 해당 병원이 2017년 4월부터 2018년 1월까지 9개월간 57명의 환자에게 하이푸 시술을 해 받아 챙긴 실손보험금은 6억4964만원이었다.

[요지경 보험사기]

A병원은 2017년 자궁근종 초음파 치료 장비인 하이푸(HIFU)를 도입했다. MRI(자기공명영상촬영)를 보며, 자궁근종에 초음파를 쏴 치료하는 고가의 의료기기다. 수술 없이 치료해 부작용이 적은 데다, 일상생활에 바로 복귀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당초 A병원이 책정한 하이푸 시술비는 500만원이었다. 보험업계에 따르면 통상적인 하이푸 시술 비용은 300만원 수준으로 다른 병원보다 가격이 비쌌던 셈이다. 그런데 이후 A병원은 평생관리제 등을 도입해 시술비를 1300만원으로 인상했다. 비급여 시술인 만큼 고가의 시술을 받아도 진료비와 무관하게 환자가 실손보험금을 청구할 수 있는 점을 노린 것이다.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진료의 경우 진료비 기준이 정해지지 않아 의사의 재량으로 진료비를 책정하는 탓에 동일한 치료라도 병원마다 가격 차가 심하다.

제주도의 A산부인과는 브로커를 고용해 환자를 유치한 후 허위 서류를 꾸며 보험금을 타낸 혐의로 1심에서 유죄를 선고 받았다. 연합뉴스

제주도의 A산부인과는 브로커를 고용해 환자를 유치한 후 허위 서류를 꾸며 보험금을 타낸 혐의로 1심에서 유죄를 선고 받았다. 연합뉴스

하이푸 시술비를 대폭 인상한 A병원은 보험사기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기 시작했다. 우선 의료계에 종사하던 B씨에게 월 500만원 상당의 월급과 필요한 경비를 주고 환자 유치를 맡겼다. 환자 1명당 수수료로 진료비의 15%를 주기로 했다. B씨는 “하이푸 시술이 고액이지만 실제 병원비를 부담할 필요 없이 실손보험금을 청구하면 된다”며 환자를 끌어들였다.

이 과정에서 병원 측이 환자에게 진료비를 미리 입금해주기도 했다. 환자는 병원에서 받은 돈으로 진료비를 결제하고, 이후 보험사가 보험금을 지급하면 병원에 현금으로 이를 되돌려 줬다.

브로커도 조직화했다. B씨는 동창인 C씨에게 일정한 돈을 나눠주고 환자를 유치하게 했는데, C씨가 다시 동창과 후배 등을 브로커로 끌어들였다. 브로커들은 “하이푸 시술을 하면 평생 애프터서비스와 원하는 경우 질성형과 요실금 수술도 해준다”며 전국에서 환자를 모았다.

서울과 부산 등의 환자를 유치할 때는 항공권과 숙박비 등을 제공해줬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제주도 관광을 시켜준다며 환자를 유치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결국 타 지역 환자를 유치한 게 빌미가 돼 9개월 만에 이들의 보험 사기는 꼬리가 잡혔다. 보험회사가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면서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불과 9개월에 걸쳐 발생한 사건임에도 피해 규모가 상당했다”며 “실손보험을 악용한 허위·과잉진료 보험사기는 의료기관이 비급여 가격을 임의로 결정할 수 있는 것에서 기인한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보험사기 적발금액 및 인원.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보험사기 적발금액 및 인원.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사건은 3년 전에 벌어졌지만 처벌을 둘러싼 과정은 진행 중이다. 1심 재판부는 2019년 12월 A산부인과 원장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하고, 브로커 B씨에게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허위 서류로 보험금을 편취하고 부당하게 환자까지 유치하는 등 범행 횟수와 규모에 비춰 죄질이 매우 불량하다”고 했다. 다만 보험사와 합의했다는 점 등을 들어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현재 A산부인과 원장은 항소한 상태다.

보험사기에 가담한 환자들은 기소유예 처분을 받아 전과자가 될 위기는 모면했다. 보험사기 혐의는 인정되나 큰 이익을 본 적이 없다는 점 등이 고려됐다. 보험사기에 가담한 환자들이 본 이익은 하이푸 수술을 받았을 때 내야 할 자기부담금 30만~50만원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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