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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지 어린이의 “서울엄마”|해마다 민박자청 박평옥 주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방학 때면 「서울 엄마」는 가슴이 설렌다. 외딴 시골마을 어린이들이 서울 나들이를 하기 때문이다. 전국 주부교실 중앙회(회장 이윤자)가 86년부터 벌여온 낙도·벽지어린이 서울 초청견학프로그램에 계속 참가해온 주부 박평옥씨(49·서울 옥수2동 옥수아파트 A동 309호)는 올해도 이들의 민박을 자청, 16일 서울에 온 강원도 정선군 정선읍 봉정리 정선국교 생탄분교 1학년인 윤미선·미향 두 어린이들의 「서울 엄마」가 돼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외딴 마을에 사는 어린이들은 문화적 혜택을 전혀 못 받고 있잖아요.「서울 한번 와 보는 게 소원」인 이들과 피부 적으로 접촉하면서 따뜻한 정을 짧은 기간이나마 나눠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박씨는 『집에 아들만 세 명이라 은근히 여자 어린이를 맡게 되기를 바랐는데 소원처럼 「딸」을 얻게 됐다』며 마냥 즐거운 표정.
이번에 초청 받은 생탄분교는 전교생이 1∼4학년 30명뿐인 미니학교. 이 가운데 서울에 와본 어린이는 단 두 명뿐인데 그나마 한 명은 조치원에서 정선으로 이사가게 되면서 서울을 거쳐간 것이 「서울에 와본 경험」이라는 것.
2박 3일간 KBS·국회의사당·63빌딩·삼성전자·서울대공원·국립중앙박물관 등 주최측이 마련한 일정에 맞춰 미선·미향이를 데리고 다니며 보살펴 주는 것이 그의 임무. 아침 8시에 집을 나서기 시작해 밤 9시가 넘어서야 「딸들」과 함께 집에 돌아오는 빡빡한 일정에 몸은 피곤하면서도 『새 장소에 갈 때마다 신기해 하는 그들을 보면 행복하기만 하다』며 웃는다.
미선·미향이 까지 합치면 그가 얻은 시골자녀는 모두 9명. 「딸이 여덟에 아들이 하나」인 셈이다.
『첫정이어서 그런지 86년에 만났던 전남 진도군 조도면 옥도리 상도국교에서 온 세 명의 여자어린이들이 제일 가슴에 남아 있어요. 고기잡이배를 타고 두 시간 정도 나와야 육지에 도착할 수 있는 낙도 어린이들이었어요. 첫날 저녁 어린이들이 신문을 달라기에 주었더니 세 명 모두 머리맡에 신문을 깔고 운동화를 올려놓은 채 잠을 자더군요.』
평소 맨발로 다니다가 「서울 나들이」로 난생 처음 신발을 신어보게 됐다는 사실을 알고 그는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좌변기를 이용할 줄 몰라 변기 위로 올라가 용변을 보거나 자동판매기를 이용해 콜라·사이다를 사는 것을 보고 놀라워하는 외딴 마을 어린이들을 보며 그가 가장 마음 아파하는 것은 식생활의 격차.
고기음식을 해주어도 「안 먹어봐서」 못 먹는가 하면, 생크림 케이크보다 1백원 짜리 삼립 빵을 더 맛있다고 하는 것을 보고 우리 농어촌의 현실을 뼈저리게 알게됐다고 그는 말한다.
『자기중심적인 도회지 어린이들을 보다 외딴 마을 어린이들을 보면 무척 솔직하고 순박하다는 것을 절감하게 돼요.』 서울 생활이 2∼3일에 불과한데도 처음 올 때에 비해 돌아갈 때는 사고력이나 적응력이 놀랍게 달라지는 것을 보는 것이 그가 느끼는 보람.
『늘 보내고 나면 허전하고, 더 잘해 줄걸 하는 아쉬움이 생긴다』는 「서울 엄마」는 미선·미향이가 돌아갈 때 선물로 주려고 손목시계와 학용품을 챙기면서 『이번만은 눈물 없이 보내야 할텐데….』하고 「이별」을 걱정한다. <홍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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