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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현의새콤달콤책읽기] 이국의 언어에 매달린 소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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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모든 남자들은 한때 소년이었다. 턱 밑에는 가뭇하고 빳빳한 수염이 어설프게 돋아나고, 이유 없이 들끓는 욕망으로 아침마다 왼쪽 젖꼭지가 뻐근히 저려오기도 했을 것이다. 어른도 아이도 아니라는 건 어쩌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뜻이다. 스스로가 무기력하고 하찮은 존재라는 자의식을 떨쳐버리고 싶어 세상의 소년들은 무언가를 맹목적으로 열망하는지도 모른다. 어떤 소년이 깡패를 꿈꾸고 어떤 소년이 사제를 꿈꾸듯이. 그리고 여기, 젠틀맨(gentleman)이 되고 싶어 가슴이 터져버릴 것 같은 녀석이 있다.

중국작가 왕강의 장편 '오, 나의 잉글리쉬 보이'(김양수 옮김, 푸른숲)의 화자 겸 주인공은, '랑리우쳰먼마오(狼立屋前門毛)'를 발음하는 순간 단숨에 영어라는 언어에 매료되어 버린 중학생 류아이다. 그의 곁에는 '롱 리브 체어맨 마오(long live chairman Mao)'라고 자상하게 바로잡아주는 영어교사 왕야쥔이 있다. 교사의 성실한 지도에 따라 영어공부에 매진하는 중학생이라. 자녀 교육 때문에 노심초사하는 전 세계 비영어권 국가의 학부모들께서 입 딱 벌리고 부러워할만한 일이다.

그러나 이 무슨 짓궂은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우리의 잉글리쉬 보이 류아이가 사는 시공간은 1960년대 중국의 변방 우루무치인 것을. 촌구석 우루무치 한 귀퉁이라고 해서 문화혁명의 광풍이 비껴갔을 리 없다. 어른들은 생존을 위해 또는 알량한 권력욕을 위해 우스꽝스러울 만치 경직된 방식으로 이념적 명분을 지키며 살아간다. 권위주의적인 폭력은 일상 속에 깊숙이 침투하여 평범한 이들의 삶을 옥죈다.

이런 상황에서 한 예민한 소년에게 영어는 머나먼 이국땅의 언어, 그 이상의 의미다. 지도자의 초상화를 잘 못 그렸다는 이유로 아버지가 따귀 맞는 장면을 지켜보면서, 이웃의 자살에 공연히 활기차지는 부모의 이중성을 목격하면서, 소년은 '소울(soul)'이라는 단어를 암기한다. '영혼'이라는 말의 외연과 내포에 대하여 처음으로 고뇌하게 되는 것이다. 프리덤(freedom), 러브(love), 프렌드(friend)는 사전 밖으로 척척 걸어 나와 소년에게 악수를 청한다.

시간은 흐르고, 소년은 자란다. 마을에 단 하나 뿐인 선생의 영어사전에 그토록 집착하던 그는 결국 그것을 가지고 나서야, 사람과 사람 사이에 한 마디 워드(word)로 정의하기 어려운 감정이 있음을 알게 된다. 때론 침묵만이 성장의 통증을 견디게 해주는 것처럼.

정이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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