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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파워인맥② 경기고] ‘엘리트 그물망’정·관·법조·재계 포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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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이른바 ‘KS(경기고-서울대)라인’. 한국에서 명문고를 말할 때 경기고를 빼고는 아무런 이야기도 할 수 없다. 재계도 마찬가지다. 한국사회를 그물망처럼 엮는 그들의 인맥-.


지난 8월8일자로 발행된 경기고 동창회보 제116호. 동문 소식란에 제24대 서울대 총장에 취임한 이장무(59회) 교수를 축하하는 글이 사진과 함께 눈에 띄는 자리에 실려 있다. 이번 서울대 총장 경선에서 최종 후보에 오른 5명 중 4명이 경기고 동문이었다는 이야기와 함께 이 총장은 부친(이춘녕 전 서울대 농대 학장, 30회)·백부(이기녕 전 서울대 의대 교수, 28회)·동생(이건무 전 국립박물관장, 61회)·4촌형(이웅무 아주대 교수, 58회)·외조부(임명재 전 서울대 의대 교수, 11회)·외삼촌(임대순 전 대중전기화학 회장, 37회) 등이 모두 경기고 출신인 ‘경기 가족’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아래쪽에는 지난 7월26일 치러진 경남 마산갑 선거구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이주영(66회) 전 경남 정무부지사가 당선돼 17대 국회에서 열린우리당 10명, 한나라당 8명, 민주당 2명, 민주노동당 1명 등 총 21명의 경기고 동문 의원이 활약하게 됐다는 뉴스가 눈에 들어온다.

계속 이어지는 동정란도 보는 이를 주눅 들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권오규 동문(67회),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에” “이홍훈(61회)·김능환(66회)·안대희(69회) 동문 대법관으로 임명돼” 등이 모두 경기고 동창회보 제116호에 실린 동문 소식들이다.

이들 중 권오규 부총리 임명 소식은 특히 재정경제부 내에서 화제가 됐다. 경기고 동창 4명이 재경부의 장·차관과 1급· 2급을 나란히 차지하게 됐기 때문이다. 권 부총리와 박병원 차관, 김경호 열린우리당 수석전문위원(1급), 이승우 정책조정국장은 모두 경기고 67회 동기동창이다.

이들은 1971년 경기고를 졸업하고 서울대에 함께 입학했다. 권 부총리는 상대(경제학과), 나머지 3명은 법대를 다녔다. 특히 권 부총리와 김 수석, 이승우 국장은 경기중학교까지 함께 다녔다. 그런데 이들의 출생지는 권 부총리가 강원도 강릉, 박 차관이 부산, 김 수석이 서울, 이 국장이 강원도 횡성 등으로 모두 다르다. 전국에서 수재들이 모여들던 경기고의 옛 영화를 그대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재경부 최고위직 4인방 경기고 ‘동기동창’

나이는 김 수석만 1953년생이고 권 부총리 등 3명은 1952년생 용띠로 같다. 행정고시는 권 부총리가 15회로 가장 빠르고 박 차관 17회, 김 수석 21회, 이 국장 22회 등이다. 공직생활은 권 부총리와 박 차관이 옛 경제기획원에서, 김 수석과 이 국장은 옛 재무부에서 출발했다. 옛 재무부 이재국에서 오랜 경력을 쌓은 김 수석을 제외하고는 모두 경제정책국장 등 옛 기획원 핵심 라인을 모두 거쳤다는 점도 이들의 공통점.
재경부 관계자는 “고교·대학 동창이 장·차관부터 1·2급으로 함께 근무하게 된 것은 처음일 것”이라며 “개성이 모두 독특해 업무 스타일은 다르지만 동창이기 때문에 호흡은 잘 맞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정부의 경제부처에서 경기고 동문이 마주치는 일은 특별할 것도 없다. 경제 관련 부처뿐 아니라 정부 요직과 각 정당에는 경기고 출신이 어김없이 포진해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친구나 선후배 간의 어색한 만남이 목격되기도 한다.

지난해 8월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는 ‘반도체 신화’로 유명한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과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 소속 진 영 한나라당 국회의원이 창과 방패로 만나 질의응답을 주고받았다. 진 의원은 정보통신업계의 차세대 화두인 유비쿼터스와 관련해 정통부의 준비 현황이 미흡함을 지적하며 날 선 질문을 던졌다. 이어 진 의원은 당시 지방선거를 앞두고 진 장관이 여권의 유력한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되는 것에 대해 “장관으로 재직하고 있는데 휘말리는 것은 본인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우정 어린 충고(?)도 남겼다.

두 사람은 경기고 66회 동기생이다. 그런데 나이는 진 의원이 두 살 많다. 진 전 장관은 생일이 빨라 1년 일찍 입학했고, 진 의원은 재수해 한 해 늦게 입학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두 사람은 학창시절 이과·문과로 나뉘어 공부했던 탓에 각별한 사이라기에는 어딘가 부족한 관계였다. 졸업 후 진 전 장관은 서울대 공대(전자공학과)로, 진 의원은 법대로 진학했다. 진 전 장관이 대학 졸업 후 미국 스탠퍼드대로 유학을 떠나면서 두 사람이 만날 기회는 거의 없어졌다.

진 전 장관은 국내로 돌아와 ‘반도체 신화’를 창조했고, 진 의원은 법조계에서 입지를 다지다 1980년대 중반 동기회에서 재회했다. 역시 고교 동기인 김승연 한화 회장 등이 주선한 자리였다.
진 의원은 “삼성전자에서 승승장구하던 시절이었는데 실력과 겸손을 겸비했다는 느낌을 주었다”고 기억한다. 이에 진 전 장관은 “언제나 신뢰가 절로 가는 친구”라며 “개인적 능력과 온화한 인품이 큰 정치적 자산”이라고 화답한다.

경기고 시절 서로에 대한 기억은 아직도 어렴풋이 남아 있다. 진 전 장관은 진 의원을 “키가 크고 또래 친구들보다 어른스러운 느낌을 주는 친구였다”고 기억했다. 진 의원도 “아주 친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희귀 성인 같은 여양 진씨(매호공파)에 공부를 잘해 얼굴을 알고 지냈다”고 말한다.

그러다 진 전 장관이 2003년 정통부 장관에 부임하고 진 의원은 17대 국회에서 과기정위에서 활동하면서 ‘외나무 다리’에서 만나는 격이 됐다. 정통부는 과기정위의 주요 감사기관이기에 ‘질의와 답변’ 등 두 사람의 공방은 불가피했다.

당시 국정감사에서 진 의원은 입맛이 씁쓸한 경험을 했다. 친구가 동료 의원에게 ‘호되게’ 당하는 것을 지켜보기가 쉽지 않았던 것. 당시 진 의원은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울 정도였다는 후문이다.

처음으로 국감을 맞았던 당시 상황에 대해 진 전 장관은 “여야 의원들의 질의가 속사포처럼 쏟아져 당황했기 때문에 질의 주체가 친구인지 일반 의원인지 구분할 겨를도 없었다”면서도 “그런 가운데 진 의원이 답변이 잘 나올 수 있도록 배려해 준다는 느낌은 들었다”고 말한다. 어려운 질의에 당황해 쩔쩔매는 진 장관을 보고 진 의원이 “어떤 분야든 모르는 것이 없는 줄 알았던 진 장관도 막히는 것이 있더구먼”이라며 격려성 농담을 건넸다는 이야기도 있다.

진 전 장관은 “진 의원의 중후한 인품은 ‘부전자전’인데, 이 자산을 바탕으로 존경받는 정치인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라며 기대감을 표시했다. 그러면서 진 의원 부친인 진기홍 옹과 얽힌 미담을 소개했다. 진 전 장관은 “진 옹은 광주체신청장을 지낸 분인데, 사재를 털어 ‘대조선국우정규칙’ 등 172점의 정보통신 관련 자료를 평생 모아 우정박물관에 기증해 감격한 적이 있다”고 토로했다

66회 동기생 중에는 진 전 장관을 ‘잘 노는 천재’로 기억하는 기업인이 많다. 특히 진 전 장관과 경북중·경기고 동기동창인 김용완 한화증권 고문은 그를 못하는 것이 없는 ‘팔방미인’이었다고 회고한다. 김 고문은 진 전 장관과 학생회 활동을 같이 하며 우정을 쌓은 인물.

당시 자신의 별명이 ‘완두콩’이었다는 김 고문은 “진 전 장관은 공부는 물론 다재다능한 문학·예술적 기질을 타고났으며, 흔히 공부벌레의 특징인 자기만의 세계에 고립된 전형적 모범생 스타일이 아니라 누구와도 잘 어울리며 리더십을 발휘했다. 성을 따서 붙인 별명 ‘진기스칸’이 딱 어울렸다”고 말했다.

동문간 어색한 만남도 잦아

경기고 66회를 말할 때 김승연 한화 회장을 빼놓을 수 없다. 비록 2학년 때인 1967년 미국유학길에 오른 탓에 다른 졸업생들과 다소 다른 추억을 갖고 있지만 학교에 대한 애정만은 다른 사람에게 뒤지지 않는다. 김승연 회장의 최측근 중 한 사람으로 분류되는 진영욱 신동아화재 부회장도 경기고 66회 동기동창. 그는 한화가 대한생명을 인수하는 작업을 진행할 당시 정부와의 대화 창구로 많은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한다. 행정고시를 거쳐 재무부에서 오랜 경력을 쌓은 뒤 1995년 한화증권 사장으로 변신해 ‘친구’와 거사를 도모했다.

김 회장과 비슷한 경우로는 김희철 벽산건설 회장을 들 수 있다. 고 김인득 창업주의 3남2녀 중 장남인 김 회장은 경기고 3학년이던 16세 때 미국 캘리포니아로 건너가 15년간 유학생활을 했다. 그는 유학시절 한 달에 2∼3통씩 집으로 편지를 썼는데, 아버지인 고 김인득 창업주는 틀린 한자를 교정해 보내는 등 자식교육에 애착을 보였다고 한다.

▶3만평에 이르는 넓은 부지에 자리 잡은 경기고는 대학 캠퍼스를 연상케 하는 시설에 수목이 우거져 조용하고 우수한 교육환경을 자랑한다.

김희철 회장도 기대에 부응해 미국 퍼듀대 기계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경영학 석사, MIT대와 퍼듀대에서 각각 원자력공학 석·박사학위를 땄다. 이어 미주리주 롤라대에서 조교수를 역임하다 1969년 정부의 해외 우수 인재 유치계획에 따라 과학기술처 1급 연구관으로 초빙돼 귀국했다.

김희철 회장은 1965년 김인득 창업주의 3남이자 김 회장의 동생인 김희근 벽산엔지니어링 명예회장과 김 명예회장의 경기고 동창인 허광수 삼양인터내셔널 회장의 제의로 삼양통상 고 허정구 회장의 장녀 허영자 씨를 만났다. 허광수 씨의 누나인 영자 씨는 이화여대 불문과를 졸업한 뒤 미 노스웨스턴대 불문학과에서 석사 과정을 밟다 다음해 시카고에서 김 회장과 결혼했다.

이처럼 경기고 출신 기업인 중에는 유독 오너 집안이 많다. 오랜 역사 덕분에 가업을 일으킨 동문이 다른 학교보다 많고, 이들은 자신의 후손 역시 경기고에 다니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경기고 출신 오너 집안 ‘수두룩’

동부그룹 김준기 회장 일가가 대표적이다. 광복후 청년운동을 펼쳤던 그의 숙부 고 김진팔 씨가 경기고 27회, 김 회장이 60회, 그의 아들 김남호 씨가 90회 졸업생으로 3대가 경기고를 졸업했다. 지난해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아들 남호 씨의 결혼식에는 김 회장 재학 당시 화학 선생님이자 남호 씨의 교장 선생님으로 재직했던 송길상 씨가 주례를 맡기도 했다.

고등학교 동창 중 사업을 가장 크게 하는 사람 역시 김준기 회장이다. 동창들은 김 회장에 대해 “고등학교 시절 공부도 잘했지만 술·담배도 잘하고 주먹도 센 친구였다”고 회고한다. 김 회장의 경기고 동기동창 중에는 어윤대 고려대 총장, 이구택 포스코 회장, 최창영 고려아연 회장, 최경원 전 법무장관, 원정일 전 법무차관, 송옥환 전 과학기술부 차관, 양수길 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사, 손 욱 전 삼성SDI 사장, 이연수 전 외환은행 부행장 등 쟁쟁한 유명인사가 많다.

▶지난해 서울 잠실 올림픽경기장 일대에서 열린 '경기가족 걷기대회'에 참가한 동문들.

두산그룹도 경기고와 인연이 깊은 집안이다. 3세들 가운데 박용오·용성·용현·용만 4형제가 모두 경기고를 나왔다. 특히 대외활동이 활발했던 박용성 전 회장 주변에는 경기고 동문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지난 2월 서울 시내 한 고깃집에 모인 경기고 동기생들의 모임도 그 한 예다. 공식적인 자리가 아닌 경우 ‘동네 아저씨’ 같은 차림으로도 자주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는 박 전 회장은 이날 저녁 넥타이도 매지 않은 점퍼 차림으로 들어섰다. 당시는 두산그룹의 경영권 분쟁이 한창이던 터여서 손님들 중 일부가 비교적 얼굴이 알려진 박 전 회장을 알아보자 종업원이 얼른 그를 방으로 안내했다.

문이 열리자 머리에 하얀 서리가 앉은 지인들이 그를 반갑게 맞았다. 이날 회식 자리에는 박 전 회장 외에 이일규 호텔 홀리데이인서울 회장 등 10여 명의 기업 오너가 둘러앉아 술잔을 기울였다. 문틈 사이로 흘러나오는 웃음 사이로 박 전 회장의 활기찬 목소리가 간간이 들려왔다.

“야, 나 요새 회사 안 나가. 그냥 이러고 살아….”

명문가가 많고 친분이 두터운 경기고 동문 사이에는 혼사를 통해 사돈을 맺는 경우도 흔하다. 지난해 두산그룹 박용만 부회장의 장남 서원 씨와 건설회사인 (주)한성 구자철 회장의 장녀 원희 씨가 서울 하얏트호텔 그랜드볼룸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박 부회장은 고 박두병 두산 회장의 5남이자 박용오 두산그룹 회장의 동생. 구 회장은 LS전선 구태회 명예회장의 4남으로 구자홍 LS그룹 회장의 막내동생이다. 박 부회장과 구 회장은 경기고 동창으로 오랫동안 양가가 친분을 쌓아 왔으며, 서원 씨와 원희 씨도 이 같은 인연으로 어려서부터 알고 지내다 미국 유학시절 장래를 약속한 것으로 전해졌다.

보광그룹의 홍석규 회장 형제들도 경기고와 인연이 깊다. 부친인 고 홍진기 명예회장의 네 아들인 홍석현 전 주미대사, 홍석조 전 광주고검장, 홍석준 삼성SDI 부사장, 홍석규 보광 회장 등이 차례로 경기고를 졸업했다.

재계에서 경기고 인맥을 찾다 보면 유독 ‘대우’라는 두 글자가 자주 눈에 띄는 것을 알 수 있다. 창업자인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경기고 출신이어서 요직에 동문을 중용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룹 해체 이전을 포함해 경기고 출신으로 대우그룹에 몸담았던 인물은 임원급 이상만 추려 봐도 대략 100여 명에 이른다.

대우엔지니어링을 맡았던 장유태 전 사장과 이석희 전 (주)대우 상담역은 김우중 회장보다 선배며 나머지 대부분은 김 회장의 경기고 후배들이다. 대표이사 이상의 직급을 맡았던 사장단만 해도 허 준·정철조 전 대우증권 회장, 김창희 전 대우증권 사장, 서재필·장병주 전 (주)대우 사장, 박성학 전 대우자동차판매 사장, 장기일 전 대우캐리어 사장, 강병호 전 대우통신 사장,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 권호택 전 대우전자부품 사장, 전주범 전 대우전자 사장 등 셀 수 없이 많다.

한화·대우·효성그룹 전·현직 임원만 150여 명

그룹이 산산조각 난 지금도 정성립 대우정보시스템 회장, 이상일 대우자동차 사장(공동 법정관리인), 김경수 대우시멘트 사장, 전준수 대우엔지니어링 부회장, 이동수 대우엔지니어링 사장, 유춘희·윤계섭·정 관 대우엔지니어링 부사장, 류철호·정태화 대우건설 부사장, 이인성 대우조선해양 부사장, 강영원 대우인터내셔널 부사장, 이동호 대우자동차판매 사장 등 경기고 출신 CEO들이 옛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 땀을 흘리고 있다.

▶자유인·문화인·평화인을 지향한다는 경기고의 교훈

경기고 선후배이기도 한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과 조양래 한국타이어 회장 형제 주변에도 많은 동문이 포진해 있다. 우선 효성그룹에는 배 도 고문을 필두로 이동호·문도상·김진현·원무현·김기수 고문 등이 효성그룹의 전·현직 고문으로 활동하며 회장 자문 등 그룹 원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또 효성에서 CEO급 고위직에 올랐던 경기고 출신 인물들만 해도 박상천 전 효성물산 사장, 전완수 전 효성그룹 사장, 이가현·이중성 전 (주)효성 부사장, 이돈영·송형진·김재학·이상운 (주)효성 사장 등 20여 명에 이른다. 한국타이어 역시 마찬가지. 조양래 회장을 보좌하는 조충환 사장과 박기헌 부사장 등이 모두 경기고 동문이다.

두 회사는 사외이사 역시 대거 경기고 인맥들로 채워져 있다. 효성은 사외이사 6명 중 5명이 경기고 출신이며, 한국타이어는 3명의 사외이사가 경기고 동기다. 또 한국타이어 자회사인 아트라스비엑스 역시 효성그룹 출신의 경기고 동문 2명이 사외이사를 맡고 있다.

김승연 회장 역시 동문을 적극 중용하는 편에 속한다. 최상순 그룹 구조조정본부장, 이순종 (주)한화 부회장, 김연배 한화증권 부회장, 양 욱 한화유통 사장, 조창호 한화종합화학 사장, 김관수 한화국토개발 사장 등 한화에는 40여 명의 경기고 출신 전·현직 CEO들이 김 회장을 보좌하고 있다.

지난해 대한상의 회장에 취임한 손경식 CJ 회장은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재계의 손꼽히는 마당발이다. 재계는 물론 정계와 관계, 금융계, 외국인까지 평소에도 연락하며 가깝게 지내는 지인이 1.000명을 훌쩍 넘는다. 각계에서 활약하는 경기고 선·후배가 많다는 이유도 있지만 겸손한 성격으로 상대방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세심한 부분까지 배려하는 스타일이 사람을 끌어 모은다는 것이 지인들의 설명이다. 특히 약속은 절대 어기지 않고 자신을 먼저 희생하는 대인관계 철학은 그만의 매력 포인트로 꼽힌다.

경기고 후배인 어윤대 고려대 총장은 각종 강연 때 손 회장의 성격과 철학을 그대로 보여 주는 일화를 자주 언급한다.

“몇 해 전 저희 부부를 포함해 4쌍의 부부가 제주도 CJ나인브리지 골프장에서 라운드를 하기로 했지요. 그런데 손 회장님이 갑자기 미얀마 출장을 가셨다 약속한 날 새벽 인천공항에 도착하게 됐습니다. 아무래도 우리끼리 라운드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글쎄 회장님께서 집에도 들르지 않고 바로 제주도로 오셨지 뭡니까?”

어 총장은 고교 후배이기도 하지만 과거 손 회장이 삼성화재 부회장으로 근무할 때 함께 금융발전심의위원을 하면서 가까워졌다. 그는 손 회장이 경제 전문가들을 만나 토론하기를 좋아한다고 덧붙였다.

경기고 54회 동기 중 가깝게 지내는 인사로는 황주명 법무법인 충정 대표변호사, 오 명 과학기술부총리, 유흥수 전 한나라당 의원, 방송인 김동건 씨 등이 있다. 이들 중에서도 ‘베스트 프렌드’로 꼽히는 황주명 변호사는 “대한상의 회장이 된 손 회장에게 거는 동창들의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황 변호사는 “손 회장은 고교시절부터 침착하고 사려 깊은 스타일이었지요. 정부와의 관계에서도 무조건 무엇인가를 요구하기보다 사안을 철저히 연구해 이론적으로 무장한 후 설득해 나갈 것입니다. 손 회장은 A+급 회장이라고 할 수 있지요”라고 말했다.

걸출한 인물이 많다 보니 동문 간에 원치 않은 경쟁이 펼쳐지는 경우도 많다. 구자명 LS니꼬동제련 부회장과 김영훈 대성그룹 회장은 구 부회장이 동종업체인 극동도시가스를 맡고 있을 때 보이지 않는 경쟁을 벌였다. 하지만 두 사람은 경쟁자라기보다 자칫 인간적 관계를 맺기가 상대적으로 쉽지 않은 오너들의 세계에서 끈끈한 우정으로 이어져 있다는 것이 주변의 평가다.

특이한 것은 두 사람의 경영 스타일이 매우 상반된다는 점이다. 구 부회장은 특유의 온화함을 무기로 한 가지 분야의 사업에 매진하는 스타일인 반면 김 회장은 에너지·소재·엔터테인먼트 등 다방면에 두루 관심을 쏟는 편이다. 어쩌면 그래서 구 부회장과 김 회장이 더욱 가깝게 지내며 우애를 유지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구 부회장은 “가끔 김 회장과 만나 식사를 하거나 골프를 치며 사업 전반에 대해 솔직한 이야기를 나눈다”며 “경영 스타일은 달라도 서로 직언을 해 주는 점은 비슷하다”고 해석했다

경기고 70회 동기인 남중수 KT 사장과 김신배 SKT 사장도 ‘유선이냐, 무선이냐’의 통신업계 주도권을 놓고 피할 수 없는 대결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 KT 대표이사로 공식 취임한 남 사장의 홈페이지에는 취임 축하 동영상이 있다. 이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SK텔레콤 김신배 사장의 축하 동영상. 김 사장은 이렇게 영상 메시지를 전했다.

“취임을 축하 드립니다. KT는 대한민국 대표기업으로서 통신산업 발전을 리드해 왔습니다. 새로운 도약을 위해 업계가 함께 상생을 위해 머리를 맞대고, 글로벌 시장의 블루오션 창출에 역량을 집중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KT가 새로운 CEO의 취임과 더불어 성장해 나가기를 기원합니다.”

내용의 대부분은 같은 통신산업에 몸담은 CEO이자 친구로서의 축하로 채워져 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적수로 맞서야 하는 이들의 경쟁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두 사람의 경쟁은 남 사장이 KTF 사장으로 재임하던 시절부터 잘 알려져 있다. 지난해 3월 남 사장이 휴대전화시장의 “800㎒ 주파수를 재분배하자”고 이슈를 만들자 김 사장이 ‘독도는 우리 땅’이라며 ‘절대 내줄 수 없다’는 말로 받아쳤다.

두 사람은 e스포츠협회장 자리를 두고 자존심 대결을 펼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외부에는 이동통신업체의 맞대결에다 동창생끼리의 자리다툼 양상으로까지 비치기도 했다. 결국 남 사장이 양보 의사를 밝히면서 김 사장이 협회장에 취임했다. 또 최근에는 김 사장이 PCS 재판매(KT가 KTF의 가입자를 대신 모집하는 사업)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남 사장이 이끄는 KT에 강공을 펼치기도 했다.

남중수 KT 사장 vs 김신배 SKT 사장

경기고의 인맥지도는 재계에만 뻗어 있는 것이 아니다. 금융계 인맥지도에서도 한 축을 형성한다. 106년에 달하는 학교 역사만큼이나 은행권의 경기고 인맥은 깊은 뿌리를 자랑한다. 김영휘 전 산업은행 총재(28회·별세), 민병도 전 한국은행 총재(29회), 임석춘 전 상업은행장(31회), 이태호 전 수출입은행장(36회), 조 순 전 한국은행 총재(45회), 주인기 전 상업은행장(45회), 정인용 전 외환은행장(49회·별세), 주병국 전 외환은행장(49회), 허 준 전 외환은행장(51회), 이용성 전 중소기업은행장(52회), 김영태 전 산업은행 총재(56회), 김영빈 전 수출입은행장(57회·별세), 양만기 전 수출입은행장(60회) 등 수많은 수장을 배출했다. 류시열 전 은행연합회장도 경기고 1학년을 마치고 검정고시로 서울대 법대에 합격해 경기고 인맥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현직으로 뛰는 인맥도 화려하다. 최근 발탁된 양천식 수출입은행장, 외국계인 한국HSBC 신명호 회장과 한국씨티은행 하영구 행장, 김국주 제주은행장, 장병구 수협은행장에 고교 2학년 때 해외유학길에 올랐던 강정원 국민은행장까지 합치면 6명이 활약 중이다. 강 행장은 당시 한국은행에 근무하다 외환은행 홍콩지점으로 자리를 옮긴 부친을 따라 전학 간 뒤 미국 다트머스대 경제학과와 플레처대학원을 졸업했다. 그래서인지 강 행장은 동문 모임에 적극 참석하는 편은 아니었다.

최근에는 외환은행 인수전을 둘러싸고 하나금융의 김 회장과 강 행장의 선후배 간 대결도 펼쳐졌다. 강 행장의 고교동기인 은행권 친구들로는 김규복 신용보증기금 이사장, 김인철 산업은행 이사, 김두경 한국은행 발권국장, 오성균 한국은행 강남본부장, 유회원 론스타어드바이저코리아 사장(외환은행 사외이사) 등이 있다.

하영구 행장은 은행권 최초의 40대 행장이자 대표적인 경기고 인맥이다. 그는 서울대 무역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노스웨스턴대 경영대학원에서 유학한 뒤 1981년 씨티은행 서울지점에 입행했다. 이어 2001년 48세의 나이로 한미은행장에 선임된 뒤 씨티그룹이 한미은행을 인수하자 합병은행 초대 행장으로 선임됐다. 김석동 재정경제부 차관보와 이길영 한국씨티은행 감사 등이 동기생이다.

동종업계서 동문 간 대결 펼쳐지기도

최근 한국HSBC 회장으로 선임된 신명호 씨는 경기고 출신 현직 뱅커 중 최고참에 속한다. 재무부 국제금융국장과 재정경제원 제2차관보 등을 거친 관료 출신으로 주택은행장과 아시아개발은행(ADB) 부총재를 역임한 뒤 한국 HSBC의 성장전략을 도맡아 공격적인 영업 확장에 나서고 있다. 금융구조조정의 대명사로 통하는 이헌재 전 부총리와는 경기고 및 행시 6회 동기로 막역한 사이로 알려져 있다.

▶1998년 경기고 동창회는 개교 100주년을 준비하기 위해 결성한 100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의 현판 제막식을 가졌다. 당시 총동창회장은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맡고 있었다.

한덕수 전 경제부총리를 필두로 한 63회 인맥도 은행권의 중심 축으로 활약 중이다. 63회 졸업생 중 금융인으로는 이영균 한국은행 부총재보와 손승태 기업은행 감사가 있다. 이 밖에 정현진 우리은행 부행장(66회), 이순철 하나은행 감사(61회), 서충석 외환은행 상무(67회), 박진회 한국씨티은행 수석부행장(72회) 등도 은행권에서 활약하는 경기고 인맥이다.

금융계 관계자는 “1974년 고교 평준화 이전까지 경기고는 전국에서 공부 잘하는 수재들이 모이는 최고 명문고였던 만큼 정·관계는 물론 금융권에서도 잘나가는 인사가 많은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그러나 다른 명문고에 비해 응집력이나 선후배 간 밀어주는 분위기는 상대적으로 약한 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동기 간 사적인 만남을 제외하고는 금융권에 변변한 경기고 동창모임도 없는 형편이다. 오히려 일부 인사들은 경기고 출신임을 밝히는 것조차 꺼릴 정도다. 경기고 출신의 한 관계자는 “학연이나 지연으로 대표되는 연줄문화가 타파되는 마당에 경기고 출신이라는 사실이 때로는 핸디캡으로 작용하기도 한다”고 들려줬다.

경기고등학교는 어떤 학교?

“김옥균·서재필 집터서 출발… 삼성동서 새 전성기”

경기고는 개천절인 오는 10월3일로 개교 106주년을 맞는다. 경기고 동문들은 “경기고 100년 역사에는 한국 중등교육의 전부가 들어 있다”고 자부한다.

1900년 9월3일 대한제국 정부는 학부령 제12호를 통해 ‘중학교 규칙’을 공포했다. 중학교에서 가르칠 학과목이 정해지고 입학 연령이 결정되는 등 제반 규칙이 결정된 때였다. 하지만 이때 공·사립 중학교는 하나도 개교하지 못하고, 관립 중학교 하나만 서울에 문을 열었다. 이때 이 학교의 이름이 ‘관립중학교’, 줄여서 그냥 ‘중학교’였다. 최초의 신문이 ‘더 타임스’이듯, 최초의 중학교인 경기고등학교는 그냥 ‘중학교’로 출발했다.

이 중학교가 자리 잡은 곳은 서울 종로구 화동. 공교롭게도 갑신정변을 일으켰다 비극적으로 세상을 떠난 김옥균의 집터였다. 김옥균의 집터가 왜 경기고 자리가 됐는지 분명하게 설명해 주는 자료는 없다. 다만 ‘김옥균이 역적으로 몰려 비극적 최후를 맞았으니, 대한제국 정부는 주인 없는 그의 집터를 징발해 학교 터로 삼은 것 아니겠는가’ 하는 것이 동문들의 추정이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된 다음해 ‘중학교’에 변화가 생겼다. 중학교 앞에 ‘한성’이라는 지명이 붙고 ‘고등학교’로 개칭된 것이다. 한성이라는 지명이 붙게 된 것은 일제 통감부의 통제를 받던 대한제국 정부가 한성에 관립 고등여학교를, 그리고 평양에 두 번째 관립 고등학교를 개설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이름인 경기고등학교라는 명칭은 일제 강점기 경기도지사를 지낸 간자(甘蔗義邦)에 의해 붙여졌다. 당시 간자 도지사는 일본인들이 다니던 경성중학교의 이름은 그대로 놔두고, 조선인들이 다니던 학교를 경기고·경복중 등으로 이름을 바꿨다.

이후 경기고는 개화파 거두로 당시 외국에 쫓겨가 있던 서재필의 집터도 교사 터로 흡수했다. 비좁았던 교정을 넓힌 것은 좋았지만 이 때문에 경기고는 소송에 휘말려 학교를 통째로 옮기는 사건을 겪게 된다. 대가 끊긴 김옥균과 달리 후손이 살아남은 서재필 가문은 1970년대 경기고 터 중 2,000여 평은 서재필이 역적으로 몰렸을 때 강제로 빼앗긴 것이라며 정부를 상대로 반환소송을 제기했다. 재판은 서재필 가문의 승리로 끝났다.

이로 인해 경기고는 당시 ‘영동’으로 불리던 서울시 강남구 삼성동 지금의 경기고 자리로 옮기게 됐다. 당시 문교부 장관은 경기고 동문인 민관식 씨였는데, 그는 봉은사로부터 지금의 경기고 터를 사들여 학교를 옮기게 했다.

비록 원하지 않은 이전이었지만 경기고는 터를 옮기면서 전성기를 구가하게 된다. 3만 평에 이르는 삼성동 교사는 대학 캠퍼스 못지않을 정도로 넓고 수목이 울창해 교육환경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경기고 이전을 전후해 삼성동 일대는 새로운 도심이 되고 부촌을 형성했다. 이렇게 되자 대부분의 경기고 동문은 “이전하기를 잘했다”고 평가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월간중앙 10월호)

정일환_월간중앙 기자 (wha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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