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연구원 "요즘 연구원 의욕 잃어 … 낮잠만 잔다"

중앙일보

입력 2006.09.26 04:50

업데이트 2006.09.26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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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25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한국 정책지식생태계 활성화 전략 심포지엄에서 참석자들이 토론하고 있다. 최승식 기자
"부처의 입장만을 대변하는 정책연구는 국가적 낭비다."(유일호 교수.KDI 국제정책대학원)

"편 가르기 식의 이분법이 연구주체 간의 정책지식 공유를 가로막고 있다."(이종훈 시민사회포럼 회장)

25일 삼성경제연구소와 본사가 함께 마련한 심포지엄에선 생명력을 잃은 한국의 정책지식 생태계를 향한 다양한 비판과 제언이 터져나왔다. 윤순봉 삼성경제연구소 부사장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왕성한 개혁논의가 있었지만 생산적 결론 없이 대립만 하다 정치적으로 해결되는 양상"이라며 "'글로벌 스탠더드'와 함께 외국계 컨설팅사나 국제기구의 영향이 확대된 반면 국내 연구진의 지식생산은 제자리에 머물고 있다"고 말했다.

◆ "지식 없는 '코드'정책 이젠 그만"=참가자들은 정부.대학.비정부기구(NGO) 등에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했다. 권기붕 경희대 교수는 "지식이 생산.유통.소비되는 모든 과정에 다양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이를 위해 ▶정부는 정보공개를 확대해 지식을 공유하고 민간 연구기관과의 교류를 강화하고 ▶대학은 현장과 긴밀하게 연결된 전문대학원을 육성하고 ▶NGO는 기존의 투쟁 중심에서 대안 제시 중심 활동으로 전환해 현장 밀착형 지식을 생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정책 입안자의 인식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김용학 연세대 교수는 "미리 정책결정을 내린 후 뒷받침할 연구만 시키거나 검증된 지식 없이 감(感)이나 코드에 의해 정책 선택을 하는 게 문제"라고 밝혔다. 박종구 국무조정실 정책차장은 "정부 고위공무원단을 활성화하면 다양한 시각과 인식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정책 결정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언론 역시 지식생태계의 매개체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수길 중앙일보 편집인은 "사실보도는 언론의 기본 책임"이라며 "대립구도를 버리고 건강한 지식생태계를 위해 공론장 기능을 회복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 "연구해도 정책 반영 안 돼"=각종 연구기관에 몸담은 전.현직 연구원들도 이런 제안에 공감했다. 전직 국책연구원장인 A씨는 "얼마 전 '요즘 연구원 박사들은 낮잠만 잔다'는 동료의 한탄을 들었다"며 "'정부가 연구 결과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데 의욕이 나겠느냐'고 되묻자 할 말이 없었다"고 말했다. 박사급 인력 1000여 명이 모인 50여 개 국책연구기관의 정부 출연금은 한 해 약 1조원이다.

정부.연구자 모두 단편적인 정책해법에만 몰두하다 보니 정책 전체를 조망하는 힘이 없다는 비판도 나온다. 좌승희 경기개발연구원장(전 한국개발연구원장)은 "정책에는 일관된 이념이 있어야 하는데도 우리 학계는 괜한 이념논쟁으로 치부해버리기 일쑤"라며 "중용만 강조하는 학계 분위기가 통합적 문제 해결을 오히려 어렵게 만든다"고 밝혔다.

김은하.강승민 기자<insight@joongang.co.kr>
사진=최승식 기자 <choiss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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