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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허황된 미래상으로 국민을 현혹하려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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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발표되기 전부터 말이 많던 '비전 2030'이란 장밋빛 재정계획을 기획예산처가 기어코 발표했다. 2030년에 1인당 국민소득 4만9000달러를 달성하고, 전 국민이 집 걱정, 병원비 걱정, 먹거리 걱정이 없는 사회를 건설하겠다는 청사진이다. 이 보고서대로라면 지상낙원이 한국이다. 그러나 무려 1100조원이 들어간다는 이 거창한 복지 프로젝트에는 재원을 어떻게 마련한다는 계획은 없다. 그저 휘황찬란한 미래상이 아무런 근거 없이 제시됐을 뿐이다.

예산처 관계자조차 "단지 방향 제시일 뿐 소요 재원을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말할 정도다. 재원 조달 방안도 없고, 구체적인 정책 대안도 없는 미래 구상을 덜컥 내놨다는 얘기다. 도대체 이런 허황된 보고서를 레임덕 소리를 듣는 정권 말기에 불쑥 발표한 의도가 의심스럽다.

20일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 간의 청와대 간담회에서 이 계획이 보고됐을 때 강봉균 열린우리당 정책위의장조차 "이번 정부에선 할 게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현 정부에서 실행할 능력도, 시간도 없는 황당한 계획을 정부 예산을 짜는 예산처라는 곳에서 만들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이 정부는 출범 이후 3년 내리 잠재성장률을 밑돌았다. 경기는 기지개를 켜보기도 전에 가라앉고 있다. 그 바람에 생활은 갈수록 찌들고, 심성은 더 각박해졌다. 현실은 힘들고, 미래는 불안하다. 이런 판에 25년 후에는 삶의 질이 미국보다 나아진다는 뜬금없는 계획을 내놓아 어쩌자는 것인가. 장밋빛 환상을 붙들고 위안이라도 삼으란 말인가. 아니면 국민을 착시적인 미래상으로 현혹하겠다는 것인가.

이 정부는 그동안 수많은 로드맵과 중장기 계획을 짜느라 세월을 허송했다. 문제는 돈 생길 구멍은 없는데 나눠 쓰자는 항목만 많은 데 있다. 이런 게 바로 분배에 매달린 대통령에 대한 관료들의 아첨이다. 지금은 어떻게 하면 성장의 동력을 다시 회복하느냐가 절대 과제다. 허튼 수작으로 국민을 기만하려 하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