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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하는 동구|열기의 현장을 가다<15>|폴란드 개혁기수 게레메크전사 인터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7면

폴란드 개혁기수 3인 가운데 한 사람인 브로니슬라브 게레메크박사(57)를 취재진이 폴란드 국회의사당 내 그의 집무실로 찾았다.
검은 수염이 인상적인 게레메크박사는 담배파이프를 손에서 떼지 않은 채 책상 앞 의자에서 일어나 취재진을 맞았다. 그는 방금 손님을 내보내고 숨돌릴 여유도 없이 자리를 옮기며『이야기를 시작합시다』고 먼저 말을 꺼냈다.

<총리 물망에 올라>
학술원 회원인 역사학자로서 1980년 폴란드 자유노조가 창설되면서 바웬사의 자문 역을 맡아온 게레메크박사는 노조가 탄압 받으며 1년간 구금생활을 겪기도 했다.
지난해 6월 총선에서 자유노조를 중심으로 한 시민의원회가 승리하면서 바웬사의 강력한 추천으로 원내 총무직을 맡고 있는 그는 한때 총리물망에 오르기도 했었다.
게레메크박사는 폴란드 자유노조 지도자인 바웬사와 현 총리 마조비에츠키와 함께 폴란드개혁을 주도하는 3대 인물가운데 한 사람으로 역사학자다.
게레메크총무는 자유노조의 실질적 이론가로 바웬사의 자유노조운동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하는 한편 의회에서 자유노조의 정책을 실질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지난해 1월 하순 바르샤바 중심부에서 15분 거리에 있는 폴란드 의회건물로 그를 찾았다.
게레메크박사는 폴란드의 개혁은 무엇보다도 경제난 타개에 있다고 거듭 강조하고 서방의 지원만이 개혁성공의 열쇠라고 결론을 지었다.
그는 폴란드가 당면한 현재의 갖가지 과제는「공산주의 포기」에 있다고 말하고 그러나 폴란드의 중립화나 바르샤바조약기구 탈퇴에는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폴란드 자유노조는 지난해6월 선거를 거쳐 8월17일 야루첼스키 대통령의 공산당과 연립정부를 구성, 사실상 폴란드정치를 주도하고 있다.
자유노조의 핵심인사 게레메크 박사로부터 직접 폴란드의 오늘의 문제와 장래 전망을 들어 보았다.

<공산주의의 위기>
-역사학자로서 현재의 동구, 특히 폴란드의 개혁을 어떻게 보는가.
『폴란드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는 폴란드만의 일이 아니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현존하는 공산주의의 위기와 관련이 있다. 이 위기는 각국의 경제 및 정치의 위기다.
공산주의는 수 십 년간 위기를 맞아 왔었으나 폴란드에서는 특히 커다란 위기를 맞았다.
과거의 공산주의 위기는 항상 경제구조개편에서 나타났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것은 전혀 다른 것이다. 특히 정치와 경제가 함께 크게 연관돼 있다.
이번의 공산주의 위기는 시장경제도입과 정치적 민주화의 필요로 야기된 것이다. 이는 소련과 중부유럽 모두에 공통되고있다.

<중국혼란서 교훈>
중부유럽의 문제는 또한 소련과의 관계청산 욕구에서 나타나고 있지만 이 같은 변화는 이제 되 돌이킬 수 없는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취약한 경제와 이의 개혁에 있다.
폴란드의 문제는 중앙 집중식 계획경제에서 시장자유화에 있다. 이것을 어떻게 달성하느냐가 우리 정부의 과제다.
우리는 중국사태에서 보듯 정치와 경제의 개혁에서 나타난 혼란으로부터 교훈을 얻고 있다.
폴란드에서는 개혁이 경제위기로 인해 위협을 받고 있다.
경제위기가 민중의 불만폭발로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이것은 폴란드·헝가리뿐만 아니라 전체 중 유럽국가들이 공유하고 있는 문제점이다.』
-자유노조가 정권 참여 후 안고 있는 문제점은 무엇인가.
『자유노조는 공산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하고 있다. 이것은 역사에 새로운 장을 연 것이다. 민주화는 한 두 해에 달성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자유노조는 이를 단지 몇 주안에 달성했다. 자유노조는 국가경제파탄의 위기 속에서 정권을 인수했다.
자유노조정부가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경제안정, 특히 인플레억제와 화폐가치안정과 동시에 산업구조, 특히 경영체제의 개혁에 있다.
이 개혁은 국가독점경제를 시장경제로, 바꾸고 이를 위해서는 소유제도도 바꿔야 한다는 어려운 문제를 안고있다.
산업 및 무역에서는 특히 정부통제는 발전의 장애가 된다.

<정부통제는 금물>
소유제도의 개혁은 그러나 국민이 자본을 갖고 있지 않아 매우 어려운 문제가 되고있다.
이 같은 경제난국을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자유노조가 앞으로 사회불만 폭발을 겪게될 것인가, 아니면 폴란드 역사상 처음으로 정부가 국민의 사회적 지지를 받게될 것인가의 기로에 놓여있는 것이다.』
-귀하는 공산주의 포기가 가능하다고 보는가.
『공산주의 포기는 불가피하다. 공산주의 이론은 이미 그 생명을 다했다. 공산주의는 이론적으로 사회정의를 갖고 있으나 지난 40년간의 실험으로 실현되지 않았다.
폴란드는 현재 사회주의냐, 자본주의냐를 선택해야 하는 입장에 있지 않고 특히 자본주의로의 복귀단계는 더욱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미래는 우리 스스로 건설하는 것이다. 즉 국가 경제를 정상화시키고 시장경제를 어떻게 도입하느냐는 것과 인권과 자유 헌법주의를 회복하는 우리 자신의 미래 건설이 자유노조 정부의 주된 장래 목표다.』

<노동자 변화해야>
-폴란드 경제위기 해소 책은.
『모든 개혁에는 사회적 대가를 요구한다. 특히 개혁은 인플레의 고통과 함께 폴란드 노동자들의 일에 대한 자세 변화를 요구한다.
노동자의 생산·경영 참여방안을 확립하는 것은 노동자세를 바꾸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
개혁은 또 실업증가의 문제를 가져올 것이다. 그러나 외국자본의 참여는 이 같은 폴란
드 경제개혁을 가속화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외국자본도입은 외채부담의 가중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폴란드에서 외채가 커다란 부담이 되고있는 것은 사실이다. 1970년대 폴란드의 전 정권은 외채를 낭비, 잘못을 저질렀다.
그러나 앞으로 폴란드는 외채를 이용, 경제활성화를 위해 집중 투자할 것이다.
즉 경제위기를 치유하는데 사용될 것이다. 폴란드의 외채대비 무역수지는 1달러 수출에 35∼40센트에 달한다. 그러나 외채를 경제활성화에 집중 투자할 경우 단순한 부담으로만 남아 있지는 않을 것이다.
폴란드의 경제가 안고 있는 문제는 외채의 규모보다 생산량의 부족, 특히 수출용 생산품의 생산 부족에 있기 때문이다.
수출상품을 많이 생산, 국제경쟁력을 가질 경우 외채부담은 감소될 것이다.』

<시민위원회 주도>
-현재 폴란드 시민위원회의 역할과 장래….
『폴란드의 개혁은 현재 시민의원회의 주도로 추진되고 있다. 개혁은 시민위원회의 힘 에 크게 의존하고 있으며 이 위원회는 전적으로 내부의 다원주의에 입각해 있어 민주적이다. 폴란드의 개혁은 시민 운동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 같은 시민운동은 자유노조가 물려준 유산이나 다름없다. 90년 봄 지방자치정부 선거가 실시된다. 이 선거 역시 시민위원회가 존재할 것이다.
시민위원회가 주도한 지방자치정부구성은 지방 경제·문화개혁의 핵심이 될 것이다. 그러나 현재 폴란드에서는 정치구조가 앞으로는 자유노조와 분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으며 이 같은 분리운동이 전개되고 있기도 하다.
4년 후로 예정된 총선에서는 시민위원회가 아닌 정당들이 주도해야할 것이다.』
-현재의 폴란드의 개혁과 헝가리의 개혁을 비교한다면.

<특수사정 인정을>
『폴란드·헝가리뿐만 아니라 중부유럽 전체가 비슷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각국은 각국 나름대로 특수한 입장과 사정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특히 나라마다 소련의 대 중구전략에서 각각 특수한 입장의 차이가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따라서 각국의 정치·경제개혁은 무엇보다도 소련정치지도자의 동의를 얻는데 있다.
그러나 폴란드와 헝가리의 진로는 입지는 다르지만 방향은 같다.』
-소련의 개혁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가.
『소련은 글라스노스트(개방)에서는 성공을 거두고 있으나 페레스트로이카(개혁)에는 커다란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이 같은 페레스트로이카의 성과부족은 소련의 사태진전에 장애물이 되고 있다.
그러나 폴란드와 헝가리에서의 개혁은 안정돼 있으며 우리의 민주화는 결코 과거로 퇴행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가 당면한 문제는 개혁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개혁의 전체 과정과 달성의 진도에 있는 것이다.』
-폴란드도 헝가리와 같이 바르샤바 조약기구에서 탈퇴할 것인가.
『유럽의 장래는 군사적인 데 있지 않다. 바르샤바조약기구나 나토(부대서양조약기구)는 현재 점진적이긴 하지만 성격이 변화하고 있다. 이들 양 기구는 성격이 바뀌어져야 하며 일정 기간이 지나면 개편될 것으로 기대된다.』
-폴란드의 중립화 가능성은.
『폴란드의 전 정권이「유럽의 한 부분」은 중립화돼야 한다고 내세운 적이 있다. 이것은 해결의 한 방법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폴란드의 입장은 EC(유럽공동체)와의 관계강화를 원하고 있다. 왜냐하면 유럽의 통합은 중립화보다 먼저 달성될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폴란드의 관계에 대해서는 어떻게 전망하는가.

<한국에 흥미있어>
『폴란드의 개혁이 성공하느냐 못하느냐는 서방의 폴란드 참여에 있다. 이 같은 참여는 민주주의에의 투자라고 생각한다.
폴란드는 소련과 마찬가지로 서방세계에는 좋은 시장으로 간주되고 있다. 특히 미국의 폴란드 경제 참여는 강화되고 있다.
폴란드에 대한 한국의 참여문제도 진지하게 논의하고 있다. 한국은 경제침체에서 벗어나 경제대국으로 도약하고 있는 나라로 폴란드 국민들도 높이 평가하고 있다.
폴란드 국민들의 여론은 한국이 달성한 경제적 성과를 생각할 때마다 스스로 희망을 품게됨에 따라 한국은 폴란드 국민에게는 경제적·심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폴란드는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에도 흥미 있는 나라임을 인식해주길 바란다.』
글 김동수 부국장 진창욱 차장
사진 주기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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