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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 지능의 자폐아는 ‘교실 내 순경’…사회성 훈련해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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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0호 27면

[아이 마음 다이어리] 자폐스펙트럼장애 <3>

아이 마음 다이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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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이미 두 차례 ‘자폐스펙트럼장애’에 대해 썼다. 민규(2020년 5월 23~24일자)와 영진(2020년 11월 21~22일자) 사례다. 이번 칼럼에서는 자폐스펙트럼장애의 청소년기 동반문제와 그 개입방법에 대해 다루려고 한다.

학칙 고지식하게 준수, 어기면 경고 #사고 유연성 떨어져 스트레스 받아 #상대 말 오해 일쑤, 버럭 화내기도 #대인관계 원활하게 의사소통치료 #분노 다스리는 약물치료 병행해야

올해 중 3인 준혁이가 4년 만에 어머니와 함께 병원을 찾았다. 의무기록 차트를 열어 보니 초등학교 5학년 여름 방학 진료가 마지막이었다. 훌쩍 커버린 체격과 많이 변한 얼굴에 진료 기록 내용을 보기 전까지 준혁이라는 것을 즉각 인지하지 못했다.

준혁이는 36개월 무렵 자폐스펙트럼장애를 진단받고 9년 동안 외래와 치료실을 다니며 다양한 교육과 치료를 받아오던 아이다. 초등학교 5학년 이후부터는 6개월에 한 번씩 방학 때만 만나 점검받기로 했으나 그 이후 병원에 오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준혁이가 그동안 특별히 상담할 문제들이 없어서 병원을 찾지 않았던 것이길 내심 기대하며 반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욕하고 규칙 안 지키는 친구, 요괴 같아”

“우와! 준혁이 정말 오랜만이구나. 그동안 별일 없이 잘 지냈어?”

“에휴, 잘 지냈을 리가 있나요. 여러 사건들이 있었지만 그냥저냥 넘어가고 지금까지 버텨왔죠. 이젠 더는 안될 것 같아 결국 다시 선생님을 찾았습니다.”

준혁이에게 던진 안부 인사에 엄마가 낚아채듯 대신 대답했다. 엄마는 조급해 보였고 한숨을 쉬며 준혁이를 쳐다봤다. 준혁이는 무심하게 앉아 있었다.

“아, 네. 그랬군요. 어떻게 지냈는지 아이에게도 직접 듣고 싶네요. 준혁아, 중학교 생활 어때?”

준혁이를 향해 다시 물었다.

“잘 모르겠어요. 애들이 다 싫어요.”

준혁이는 높은 억양으로 빠르게 말했다. 변성기가 와서 약간 굵어진 목소리 이외에 말하는 스타일은 예전과 그대로였다.

“애들이 싫다는 게 무슨 뜻이야?”

“다 이상해요. 음담패설이나 하고 욕도 많이 하고. 규칙도 하나도 안 지키고…. 싫은 게 너무 많아요. 요괴들 같아요.”

“아, 요괴…. 그럼 학교생활이 재미없겠구나.”

아이 마음 다이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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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죠. 학교 가기 싫어요. 요새 코로나라서 학교 안 가고 집에서 온라인 수업만 해서 그나마 나아요. 그래도 가끔은 가야 하니 괴로워요. 계속 온라인으로만 수업하면 좋겠어요.”

“친구들은 어때? 너를 괴롭히는 친구도 있니?”

“애들 말하는 거 듣고 있으면 지저분하고 화가 나요. 선생님들은 대체 뭐하시는지 모르겠어요. 혼내시지도 않고 답답해 죽겠어요.”

준혁이는 친구들에 대한 말을 하면 할수록 말투가 거칠어지고 격앙됐다.

“어머님, 아까 사건들이 있었다고 하셨잖아요? 어떤 일들이 있었던 건가요?”

나는 좀 더 객관적인 정보를 듣고자 어머님께 물었다.

“지금 들으셨듯이 준혁이는 아이들이 자기들끼리 놀면서 할 수 있는 음담패설이나 농담을 다 더럽다고 여기고 욕한다고 생각해요. 작년에는 반 친구가 자기에게 ‘쭈녁이’이라는 별명으로 불렀는데 그것을 욕한 것으로 받아들여 실내화를 그 아이 얼굴에 던져서 코피가 나게 했어요. 학교폭력위원회까지 올라갈 뻔했는데 다행히 담임선생님께서 잘 해결해 주셨어요. 이런 비슷한 일들이 소소하게 너무 많았습니다.”

엄마는 결국 말하다 울음을 터뜨렸다. 준혁이는 13개월 무렵부터 자폐스펙트럼장애의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걸어 다니는 아이의 이름을 불러도 돌아보지 않고 엄마 눈을 거의 쳐다보지 않았다. 두 돌이 넘어도 말을 하지 않았고 원하는 것이 있으면 사물 쪽을 향해 엄마 손이나 팔을 잡아끌고 가는 식으로 표현했다고 한다.

36개월 정도에 말이 트였다. “엄마 초코 우유 주세요” 정도의 문장을 구사했다. 게다가 길을 지나가면서 입간판의 글씨를 읽고, 버스나 자동차 번호판을 다 외워서 집에 와서 말하는 모습에 무척 신기했다고 한다. 부모는 말이 트이고 글과 숫자를 줄줄 읽는 아이의 모습에 기뻤지만 여전히 일상 대화는 원활하지 않았다. 엄마가 물어본 질문에 대답이 아닌 질문을 그대로 따라 했고, 혼잣말로 어른들의 말이나 대사를 반복해 읊조리는 모습을 보였던 것이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준혁이의 관심사는 오로지 숫자, 알파벳, 글씨였다. 엄마는 아이가 어린이집 아이들과 놀지 않고 책만 보려 한다는 선생님 피드백에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그 무렵 내 외래를 방문했고 진단을 받게 된 것이다. 나는 준혁이를 처음 만났을 때 정도가 심하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다. 준혁이는 부자연스러운 억양이나 말투를 개선하기 위해 화용언어치료(실제 상황에 맞게 적절히 언어를 구사하고 원활하게 대화하는 훈련)와 사회성 그룹훈련을 집중적으로 받았다.

예상대로 초등학교 입학 전 평가한 지능과 언어 수준은 정상 범주였다. 준혁이는 학교 입학 후 일반 학급에서 무난하게 적응하며 생활했다. 외래에 올 때마다 자신이 친구들과 어떤 놀이를 했는지,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떻게 해결했는지 스스로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그러던 중 준혁이가 문제행동을 처음 보인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무렵이었다. 과학 시간에 친구들이 시끄럽게 떠들면서 실험을 하자 선생님이 아이들을 향해 엄한 표정을 지었다. 다른 아이들이 선생님의 얼굴 표정을 살피고 다들 순식간에 조용해진 반면, 준혁이만 그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말을 멈추지 않았던 것이다. 표정이나 몸짓 언어와 같은 비언어적인 표현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여 생긴 문제였다.

초등학교 5학년이 되어서도 교실 내의 규칙을 지키지 않는 다른 학생들에게 직접 지적을 하고 선생님께 이르는 일이 잦아 친구들 사이에서 고자질쟁이라고 여겨져 따돌림을 당하게 되었다.

정상적인 지적 수준을 가진 자폐스펙트럼장애 아이들은 종종 ‘교실 내 순경(classroom policeman)’이라고 불린다. 한번 정해진 규칙을 불변의 규칙으로 받아들이고 본인은 매우 고지식하게 열심히 지키려 하는 반면 그 규칙을 위반한 아이를 보면 스트레스를 받아 즉시 경고를 주기 때문이다. 그래도 자신의 말을 듣지 않으면 화가 나서 선생님께도 알린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친구들이 자기에게 잔소리하고 고자질하는 아이를 좋아할 리가 없다. 이는 사고의 유연성이 떨어져서 규칙이 상황에 따라 변할 수도 있고 규칙에도 예외가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그러다 보니 준혁이와 같은 아이들은 억울한 일들이 늘어나고 가끔씩 분노 폭발을 하는 일들이 생긴다.

일반적으로 사춘기 청소년기 아이들은 친구들 간에 짓궂은 별명도 부르고 반어법으로 농담도 많이 한다. 그러면서 친해지기도 한다. 준혁이는 그런 아이들의 대화가 이해되지 않았고 화가 났다.

자폐스펙트럼장애는 중증도에 따라 동반되는 문제행동의 종류가 다르고 나타나는 연령도 다양하다. 중증도가 심각하고 언어지연과 지능저하가 동반된 경우에는 만 4~5세 무렵부터 문제행동이 시작될 수 있다. 다양한 감각에 예민하여 생활 소음에도 자극을 받아 귀를 막고 소리를 지르고 짜증을 낸다. 본인이 원치 않는 상황이나 감각을 피하기 위해 심하게 저항을 하는 도중 타인을 공격하거나 자신을 때리기도 한다.

잘하는 건 제대로 할 수 있게 도와야

이런 경우 행동수정요법과 함께 약물치료를 즉시 시작해야 한다. 자폐스펙트럼장애에 동반된 자극과민성과 문제행동을 개선하기 위해 효능과 안전성이 입증된 승인 약물들이 있다. 초등학교 이후에는 과잉행동이나 산만성, 부주의성 그리고 틱이 동반되는 경우도 흔하다.〈그래픽 참조〉

중증도가 심하지 않은 아이들은 감각적인 예민성이나 문제행동이 상대적으로 적게 나타나다가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차 두드러질 수 있다. 그 이유는 자신이 속한 사회적 환경이 보다 은유적이고 관습적 이해를 요구하므로 자폐스펙트럼 아이들 입장에서는 혼란스러운 일들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풍자와 유머를 이해하지 못해 상대방의 말의 의도를 오해하여 불쑥 화를 내기도 한다. 준혁이가 중학생이 되어 문제들이 자주 발생한 것이 그런 이유에서이다.

준혁이는 사회성 기술 훈련과 의사소통치료를 다시 시작했다. 부모에게 준혁이가 농담, 유머, 풍자와 같은 은유적 표현을 이해하지 못할 때, 직접적 의미와 의도를 그때그때 알려줘 아이가 학습할 수 있도록 했다. 피해의식과 분노를 줄이는 약물치료도 병행했다.

준혁이는 숫자에 강하고 코딩을 무척 잘해서 간단한 게임을 프로그래밍하기도 한다. 준혁이의 치료 목표는 모든 영역을 다 잘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아이가 잘하고 좋아하는 것을 제대로 할 수 있게 만들고 대인관계 문제는 최소화시키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

※개인 정보 보호를 위해 등장인물을 가명으로 처리했고, 전체 흐름을 왜곡하지 않는 범위에서 일부 내용을 각색했음을 알려드립니다.

천근아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소아정신과 교수. 연세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 영국 국제인명센터(IBC)가 ‘세계 100대 의학자’로 선정. 저서로는 『아이는 언제나 옳다』, 『엄마 나는 똑똑해지고 있어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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