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철, 탄소중립 핵심 소재…세계 각국 ‘보물’ 확보 총력전

중앙선데이

입력 2021.08.21 00:24

업데이트 2021.08.27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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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0호 14면

막 오른 ‘제2의 고철 전쟁’

1941년 12월 7일 일본은 선전포고도 없이 하와이 진주만 미군 기지를 기습 공격했다. 일본의 공습 배경으로 꼽히는 것이 일본의 중국 침략과 인도차이나 반도 진주를 계기로 미국이 취한 석유와 고철 수출 금지 등 경제제재 조치다. 석유야 그렇다 치고, 고철이 전쟁의 이유였다니? 그러나 철강산업이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았던 당시만 해도 고철은 전투기와 대포 등 무기 생산의 핵심 물자였다. 일제 말기 조선 땅에서 무자비한 쇠붙이 강탈이 진행됐던 것도 그 여파였다. 당시 일본은 하와이의 미군 기지를 무력화시켜서 필리핀에 주둔한 미군을 고립시키고 동남아시아의 자원을 활용할 계획으로 기습 공격을 감행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를 계기로 미국은 중립을 깨고 태평양 전쟁에 참전하게 되었고, 결국 일본은 패망의 길을 걷게 된다.

고철 투입 늘수록 탄소 배출 적어
포스코·현대제철 등 비중 확대 나서
t당 가격 1년 만에 140%나 폭등

고철 발생·유통·소비 시스템 구축
민·관 머리 맞대고 적극 대처해야

2030년 온실가스 감축목표 높아져

그로부터 80여 년이 지난 지금 ‘제2의 고철 전쟁’의 전운이 감돌고 있다. 이번에는 총성 없는 전쟁인데 그 배경은 ‘2050 탄소중립’이다. 2050년 실질적 탄소배출량 제로를 달성하기 위해선 지금부터 탄소배출을 줄여나야가 한다.

최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문턱을 넘은 탄소중립기본법에 따르면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가 2017년 대비 24.4%에서 2018년 대비 35% 이상으로 대폭 상향됐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많은 철강산업에 이 문제는 발등의 불이다. 현재까지 철강 생산의 주된 공법인 용광로 공법은 원료로 철광석과 함께 석탄을 구운 코크스를 사용하기 때문에 막대한 양의 이산화탄소가 발생하게 된다. 고철을 사용하는 전기로 공법은 전기의 아크열로 고철을 녹이므로 이산화탄소 발생을 최소화할 수 있다. 전기로로 철강을 생산할 때 발생하는 이산화탄소 비중은 용광로 공법의 20% 수준에 불과하다. 지난해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철강 생산량은 용광로 공법이 68.2%인 4900백만 톤(t), 전기로 공법이 31.8%인 2300백만t이었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철강 생산 과정에서 이산화탄소 발생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용광로 공법의 원료이자 환원제인 코크스를 수소로 전환하는 수소환원제철 공법이다. 그러나 상용화까지는 거리가 멀다. 당장은 용광로에 고철 투입량을 늘려 이산화탄소를 줄이는 방법이 동원되고 있다. 포스코는 이미 용광로에 고철 투입 비중을 15%에서 20%까지 올려 조업을 하고 있고, 2025년까지 30%로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현대제철 또한 고철 사용량을 지속적으로 높이는 방법을 검토하고 있다.

용광로 공법 생산량 4900만t에는 고철이 740만t(15%) 포함되어 있는데 10%를 증가시키면 연 490만t의 고철이 추가로 필요해진다. 이렇게 될 경우 철근과 형강을 생산하는 전기로에 필요한 고철은 또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이래저래 고철 가격이 급등할 것이 뻔하다. 실제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작년 7월말 t당 25만원이던 고철 가격은 올해 7월말 현재 60만원으로 140%나 폭등했다.

고철 가격 상승은 철근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고 결국 아파트 분양 가격 인상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 자동차, 조선, 발전설비 등에 들어가는 강판과 후판 가격 상승도 불가피하다. 경제 전반의 물가를 끌어올리게 된다는 얘기다.

보다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현상이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전 세계 철강 생산량의 57%(11억t)를 차지하는 중국이 탄소중립을 위해 현재 약 10%인 전기로 생산 비중을 2025년까지 20%, 2030년까지는 40% 수준까지 늘리고, 용광로에 투입하는 고철량도 30%까지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이렇게 되면 연간 6억 t의 고철이 필요하게 된다. 중국은 현재 연간 2억t에 달하는 고철 수요도 자국 내에서 조달하지 못해 수입을 하고 있다. 오래 전부터 고철 수출관세를 40% 부과하며 사실상 수출을 금지하고 있고, 최근엔 수입관세 2% 마저 폐지하며 물량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러시아는 수시로 고철 수출을 중단해왔는데, 지난 6월 수출관세를 t당 15유로에서 70유로로 370% 인상했다. 말레이시아도 수출관세 15% 부과에 들어갔다. 유럽 일부 국가와 아랍에미레이트(UAE)는 고철 수출을 중단했다. 그나마 미국과 일본이 수출 규제를 하지 않고 있는데, 이들 나라 역시 2050 탄소중립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에 자국내 고철 소비를 늘리면서 수출 물량을 감축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 고율 관세 부과, 사실상 수출 금지

혹자는 고철(古鐵)을 입(口)이 열 개(十)인 철, 즉 말이 많은 철이라고도 한다. 일반 재화와 다른 점이 많고 유통과정도 특이하다. 고철은 용도가 다한 철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쇠로 된 생활 용품도 버려지면 고철이 되고, 건축물을 철거할 때 나오는 철, 자동차나 배를 만들 때 나오는 자투리 철도 고철이다.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멀쩡한 기계도 용도 폐기되면 고철이 된다.

하지만 고물 취급을 받던 고철이 이제 시대가 바뀌어 탄소중립 시대를 달성하는 핵심 소재(자원)인 귀중한 몸이 되었다. 한번 버려진 고철은 전기로에서 90%가 철로 재탄생된다. 1t의 고철이 40회를 반복해서 재탄생하면 그 누적 사용량이 10t이 된다. 이산화탄소도 발생하지 않는다. 세계적인 환경생태학자인 레스터 브라운은 『에코이코노미』에서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해서는 새로운 자원을 훼손하는 것보다 이미 개발된 자원을 재활용하는 것이 지름길이고 고철 재활용이 가장 모범 사례라고 소개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정부에서 발표한 ‘대한민국 2050 탄소중립 전략’ 5대 기본방향 중 하나인 ‘순환경제 확대’에 딱 맞아 떨어지는 것도 고철 재활용이다. 다행인 것은 이 중요한 자원의 국내 자급률이 2019년 기준 80% 정도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용광로의 고철 투입 비중이 확대됨에 따라 자급률 하락은 불가피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고철 전쟁’ 시대에 걸맞는 대비를 하고 있는가. 불행하게도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우선 고철은 아직 법률상 ‘자원’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폐기물로 취급당하고 있다. 생활용품이나 산업 현장의 금속류에서 해체 및 선별 과정을 거쳐 고철을 확보하는 과정은 제조업이 아니라 폐기물 처리업으로 분류된다. 고철 해체, 절단, 압축 시설은 공장으로 등록되지 못해 금융상으로 불합리한 대우를 받는다.

정부 차원의 고철 전담 조직도 분명치 않다. 환경부 자원순환국 자원재활용과에서 폐기물 이슈 발생시 관여하고 있고, 철강산업을 담당하는 산업통상자원부의 철강세라믹과가 원료 수급동향을 점검하고 있는 정도다.

철강업계가 탄소중립을 실현할 수 있는 궁극의 목표로 그리고 있는 것이 수소환원제철이다. 수소환원제철이 상용화되더라도 ‘경쟁력 있는 그린수소’를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철광석은 없고 ‘탈원전’에 발묶여 있는 우리로선 첩첩산중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양질의 철광석 광산을 가진 호주가 그 옆 사막에서 태양광 전기로 그린수소를 생산해 슬라브(열연이나 후판의 소재)를 만들어 수출할 경우를 상상하면 아찔하기만 하다. 수소환원 공법의 상용화 경쟁에서 우위에 설 때까지 탄소 중립 궤도에서 산업 경쟁력을 유지해가는 것이 우리 철강업의 과제일 텐데, 결국 답은 고철이다.

고철은 생산을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수거를 하는 것이고 발생원은 노폐고철(70%)과 산업고철(30%)이다.

폐기물 취급하지 말고 ‘자원’으로 인정해야

이제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 고철은 대도시에서 발생되므로 유통 원가를 최소화하기 위해 대도시 주변에 고철 가공단지를 조성하는 한편 각종 설비를 지원해 규격화된 품질의 고철을 만들도록 산업으로 육성시켜나가야 한다. 산업분류도 ‘폐기물 처리업’에서 ‘제조업’으로 변경시켜야 한다. 이렇게 하여 약 7억 5천만t으로 추정되는 국내 철강축적량의 연간 수거율을 지난해 기준 2.1% 수준(1600만t)에서 선진국 수준인 3%(2300만t)로 높여야 한다.

정부와 기업, 국책연구소 등이 머리를 맞대고 국내 고철의 발생부터 유통, 소비까지 정확하게 관리할 수 있는 데이터 확보와 시스템 구축에 나서야 한다.

국내 고철이 무분별하게 해외로 나가지 않도록 수출 관리 대책도 필요하다. 이미 중국으로의 수출은 전년대비 100% 이상 증가했다. 중국 등으로 고철 수출이 급증하자 2004년에 한시적으로 도입했던 ‘수출 승인제’를 언제라도 꺼내들 수 있도록 준비해둬야 한다. 고철 수출국인 미국, 일본, 러시아와의 자원외교에도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시간이 없다. 탄소중립의 시대, 고철 전쟁이 눈앞에 다가와 있다.

노폐고철=고철은 크게 세가지로 구분된다. 자동차·조선·기계 등의 생산현장에서 나오는 A급을 생철이라 하고, 건축물 해체에서 나오는 철근·형광 등을 B급, 생활용품 해체에서 얻는 것을 C급이라 한다. B급과 C급을 노폐고철이라 한다.

철강축적량=한 나라에 축적된 철강의 총량. 생산량+수입량-수출량-시중 구입 고철량으로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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