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전 공시의 세계
사조그룹 주진우 회장이 10일 사조산업 지분에 변동이 있다는 공시를 냈습니다. 본인 소유 보통주 71만2046주 가운데 총 30만 주를 두 사람에게 15만 주씩 대여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지분율은 14.24%에서 8.24%로, 6%포인트 하락했습니다. 대기업 회장이 수수료를 챙기기 위해 주식을 대여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대여기간은 이달 말까지, 한 달도 안 됩니다. 지분율을 딱 3%씩 잘라서 두 사람에게 대여한 것도 독특해 보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소액주주 감사위원 선임 차단 목적 #주주가치 제고나 개선 기대 어려워
사조산업은 다음달 14일 임시 주주총회를 열 예정입니다. 소액주주들이 법원에 낸 주주총회 소집 가처분 신청이 받여들여진 결과입니다. 소액주주들은 주주가치를 훼손하는 경영행태 때문에 회사가 저평가 받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들은 ‘이사회 감사위원 분리선출’을 주총 안건으로 내세웠습니다. 주 회장의 지분 대여는 바로 이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자산 2조원 이상 대기업은 이사회 내에 감사위원회를 설치해야 합니다. 감사위원회 위원(감사위원)은 총 3명 이상의 이사로 구성해야 하며, 3분의 2 이상을 사외이사로 채워야 합니다. 올해부터 시행되는 개정 상법은 감사위원 중 1명은 다른 이사의 선임 절차와는 달리 분리해 선출해야 한다고 규정합니다.
사외이사 겸 감사위원을 선출할 때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과거 상법에 따른다면 일단 사외이사를 먼저 선출합니다. 다음으로, 이렇게 뽑힌 사외이사를 감사위원으로 선임하는 데 대한 찬반 표결을 진행합니다. 이 때 대량의 지분을 보유한 주주들의 의결권은 3%까지로 제한됩니다. 이른바 ‘3%룰’입니다.
이렇게 하면 감사위원이 될 사외이사는 대주주 입맛에 따라 정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사 선임 단계에서는 의결권 제한을 적용받지 않으니까요. 개정 상법은 사외이사 겸 감사위원 중 1명은 다른 이사 선임 절차와는 달리 처음부터 3%룰을 적용하라고 합니다. 이것이 ‘분리선출’ 제도입니다.
대주주 A의 지분율이 30%, 특수관계인 B와 C의 지분율이 각각 20%, 10%, 소액주주는 40%라고 해보겠습니다. 사외이사 겸 감사위원을 분리선출한다면 A, B, C 세 사람의 의결권 행사는 각각 3%까지만 가능합니다. 다 합쳐도 9% 밖에 안 됩니다. 반면 소액주주 지분율은 40%가 유지됩니다. 만약 사외이사가 아니라 ‘사내이사’나 ‘기타비상무이사’를 감사위원으로 분리선출한다면 3%룰은 더 엄격하게 적용됩니다. 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지분을 한데 묶어서 3%까지만 의결권 행사가 가능합니다.
소액주주들은 경영전횡을 제대로 감시하고 견제할 독립적 이사를 감사위원으로 선임하겠다며, ‘사외이사 겸 감사위원’뿐 아니라 ‘기타비상무이사 겸 감사위원’ 분리선출 안건까지 모두 주주제안 해 놓은 상태입니다. 둘 중 어느 것 하나라도 주총에서 통과시키겠다는 전략입니다. 주 회장은 지분 6%를 3%씩 잘라 지인에게 대여한 것 외에도 사조산업 지분을 보유한 계열사 가운데 3%룰에 걸리는 회사들은 다른 계열사에게 지분 일부 또는 전부를 넘기게 했습니다. 모두가 소액주주와의 주총 표 대결을 염두에 둔 조치입니다.
주 회장 측의 행동을 바라보는 시장의 눈총은 따가운 것 같습니다. 소액주주 측 이사 1명의 이사회 진입조차 차단하기 위해 지분 대여와 계열사 간 지분 거래까지 동원하는 회사에 앞으로 주주가치 제고나 개선을 기대할 수 있겠느냐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