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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 듣는 무용, 시각장애인도 함께 춤춘다고 느꼈으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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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0호 18면

[유주현의 비욘드 스테이지] 무용 음성해설 나서는 이경구·김동규

‘맙’으로 국내 첫 무용음성해설 공연에 나서는 현대무용가 이경구(오른쪽)와 LDP무용단의 안무가 김동규 대표. 신인섭 기자

‘맙’으로 국내 첫 무용음성해설 공연에 나서는 현대무용가 이경구(오른쪽)와 LDP무용단의 안무가 김동규 대표. 신인섭 기자

시각장애인들에게 춤을 말로 전달하는 무대가 국내 최초로 시도된다. 전문무용수지원센터와 성남문화재단이 공동주최하는 ‘2021무용인 한마음축제’에서다. 9월 1일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에서 열리는 갈라 공연 중 부산시립무용단의 ‘운무’, LDP무용단의 ‘맙(MOB)’, 국립발레단의 ‘탈리스만 파드되’,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의 ‘피버(FEVER)’ 등 4편에 무용 음성해설이 제공된다.

“몸 안에서 뭔가 끓어오르는 듯…” #객관적 정보 넘는 시적 표현도 #과하지 않고 여백 있어야 큰 울림 #춤은 또 다른 세상서 느끼는 자유 #쓰는 만큼 움직이는 몸 아름다워

2000년대 초반부터 스코틀랜드 국립발레단을 비롯해 영국 노던발레단, 미국 피츠버그발레단 등이 지속적으로 운영해 오고 있는 무용 음성해설은 한국에선 아직 개발 단계다. 이번 공연은 지난해 전문무용수지원센터 등이 마련한 ‘무용 음성해설가 양성을 위한 워크숍’의 첫 결과물이다. 성남시각장애인협회에서 20여 명의 시각장애인을 초청한다.

춤을 말로 설명한다는 건 어떤 일일까. 이번에 해설에 나서는 4명 중 현대무용가 이경구(29)는 LDP무용단의 안무가인 김동규(41) 대표를 인터뷰하고 ‘맙’의 리허설 참관은 물론 춤을 직접 춰가면서 해설 대본을 쓰고 있다. 김 대표에게는 자신의 안무를 낯설게 바라보는 계기가 됐다.

“2019년 국립현대무용단의 어린이무용 ‘루돌프’를 만들며 시각 장애가 있는 어린이는 무대를 즐길 수 없겠구나 하는 자책감이 든 적이 있어요. 그런 고민을 해결할 기회라고 생각해 참여하게 됐는데, 창작자로서의 호기심도 컸죠. 움직임과 이미지 중심인 무용 공연이 시각 아닌 다른 감각을 통해 감상될 수 있을까. 움직임이 언어로 설명될 수 있을까 하는.”(이) “인터뷰 과정이 흥미로웠어요. 제 작품을 안무자 관점에서 상상해 다 분석해 왔더라고요. 작업 과정을 돌이켜 보게 됐고, 이 작품이 왜 만들어졌는지 새삼 피드백되는 느낌이 좋았어요. 어릴 때 힙합을 했다는 개인적인 스토리까지 꺼내게 되더군요.(웃음)”(김)

‘맙’은 인간의 양면성에 대한 이야기다. 비슷한 패턴이 반복되는 질서 속에서 즉흥적 자유를 줄 때 느끼는 주체성과 종속성 사이의 이중적인 군중 심리를 그린, 나름 심오한 철학을 담고 있다. 현대무용은 그런 추상적 성격이 강하기에 음성해설이 더 어렵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LDP무용단 ‘맙’. [사진 LDP무용단]

LDP무용단 ‘맙’. [사진 LDP무용단]

“저도 그럴 줄 알았는데, 전문 용어가 많은 발레나 한국무용에 비해 현대무용은 일상적인 단어들이 어쨌든 안무가의 의도와 작품 안에서 나오니까요. 발레는 이야기가 명확하지만 이야기 때문에 무용을 보는 건 아니잖아요. 이야기를 몸으로 표현하고 있는 걸 해설해야 하니까 어렵죠. 현대무용은 표현하고자 하는 출발점이 있지만 작업하면서 가지처럼 뻗어나가서 결국 안무자 의도보다 보여지는 상태가 더 중요해지거든요. 공연 10분 전 사전해설 방송에서 그런 현대무용의 특징을 설명할 거예요. 기승전결이 아니라 몸이 일으키고 있는 무대 에너지의 흐름을 느껴달라고요.”(이)

사실 무용은 잘 보여도 지루해지기 쉽다. 하물며 말로 설명하는 일임에랴. 움직임 안팎으로 절묘한 균형을 맞춰야 하는 이유다. “움직임을 단순히 묘사하는 건 지루해서 못 듣겠더라고요. ‘몸 안에서 무언가 끓어오르는 듯 들숨을 깊게, 더 깊게 마시며 팔을 위로 높이, 더 높이 뻗는다’는 식으로, 객관적 정보를 넘어 이 동작이 어디서 출발했는지, 주제에 걸맞는 예술적 경험을 할 수 있는 시적 언어도 적시에 들어가야죠. ‘무용수가 어깨를 들썩입니다’ 보다는 ‘무용수가 어깨를 둠칫둠칫 둠칫둠칫’ 하는 식으로 리듬과 질감을 잘 선택해서 전달하는 게 좋겠죠.”(이) “해설이 과하지 않고 부족한 편이 더 많은 걸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요. 사운드가 과한 부분이 있어서 내레이션에 여백이 있으면 외려 하모니가 생기겠죠.”(김) “사실 LDP 작품은 순식간에 무대가 지나가 지루할 틈이 없어요.(웃음) 강렬한 음악이 나오는 순간엔 잠시 헤드셋을 벗고 음악에 빠져보라고 해도 좋다고 배웠어요.”(이) “무용수들이 기합 넣으며 사운드 낼 때 그렇게 하면 좋겠네요. 군중심리를 유발하도록 기합을 넣는 순간들이 있는데, 사운드를 뚫고 나올 정도라 헤드셋을 벗어야 더 잘 느껴질 것 같아요.”(김)

무용 공연이 궁극적으로 같이 춤추고 싶게 만드는 데 의미가 있다고 할 때, 무용해설은 어떤 작용을 할까. 무용을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도 같이 춤추고 싶게 할 수 있을까. “누구나 몸이라는 ‘도구’를 갖고 있다는 믿음으로 해요. 제가 무용을 시작한 것도 내 몸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는 소박한 확신 때문이거든요. 대단한 메시지를 주려는 게 아니라, 내 몸이 내가 쓰는 만큼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이 너무 좋아서요. 우리 몸은 늘 같은 일을 반복하는데, 무대에 선 순간은 몸이 굉장히 자유롭게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 아름답지 않나요. 시각장애인도 몸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상상하며 스스로 춤추고 있다는 느낌을 받으면 좋겠어요. 저는 춤출 때 제가 창조한 다른 세상에 와 있다는 느낌을 받고 극한의 자유를 느끼는데, 같이 움직이면서 모든 걸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해설해 보겠습니다.(웃음)”(이)

“무대에 서면서 관객을 움직이게 하는 힘은 어디서 나올까 늘 생각해요. 앉아있는 관객을 일으켜 세우는 힘에 대한 생각인데, 시각장애를 가진 분들까지 일으켜 세울 수 있는 작품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무엇보다 저는 이 갈라 형태의 공연이 너무 좋아요. 유튜브에서도 짧은 영상에서 원하는 정보만 얻다가 더 궁금증이 생기면 긴 영상을 보게 되듯, 모든 장르의 유명 단체를 모아놓은 갈라 공연이 파급력이 있거든요. 골고루 즐기다 보면 어느 한 단체의 깊은 이야기를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이 들겠죠.”(김)

무용 공연은 살아 움직이는 그림이라 생각한다. 비시각장애인들이 단순히 그림을 보면 된다면, 시각장애인 입장에선 상상력을 발휘해 직접 그림을 그리는 일이 될 터다. 어떤 마음의 준비가 필요할까.

“비장애인도 무용을 잘 모르면서 보잖아요. 의상이나 세트를 만져보는 터치투어와 사전해설로 미리 워밍업을 해드리니까, 두려움 없이 편하게 즐기시면 좋겠어요.”(이) “오히려 다른 감각을 통해서 더 많은 걸 느낄 수도 있잖아요. 무대 위에서 이뤄지는 예술을 한 번 체험한다고 생각하면 어떨까요. ‘음악에 어떻게 몸을 맡기는 걸까’라는 궁금증만 갖고 오시면 좋을 듯 해요. 비장애인 관객들에게도 좋은 자극이 되겠죠.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걸  찾게 되지 않을까요.”(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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