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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자유롭기 전에는 아무도 자유롭지 않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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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0호 20면

마이너 필링스

마이너 필링스

마이너 필링스
캐시 박 홍 지음
노시내 옮김
마티

한국계 미국 여성시인 산문집 #아시아계 차별 날카롭게 비판 #“미국 사회의 보편성 찢고 싶다 #한국 남성, 여성 견제는 잘못”

지난해 봄 유럽의 아시아인들에게 코로나 불똥이 튀었다. 팬데믹 확산의 주범으로 지목돼 발생한 혐오범죄 말이다. 지난 봄 이번에는 미국 조지아주의 마사지숍에서 한국인 넷을 포함한 아시아 여성 여섯이 백인 남성의 총격에 희생됐다. 아시아인 혐오를 중단하라는 항의 시위가 잇따랐다.

한국계 미국인 여성 시인 캐시 박 홍(45·럿거스대 교수)의 산문집 『마이너 필링스(Minor Feelings)』는 그런 와중에 주목받은 책이다. 아시아인 차별 문제를 건드리는 마땅한 언어가 없던 차에 맞춤하게 나와 있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책은 차별을 폭로할 길 없던 아시아인들에게 단순히 ‘재현의 언어’만 찾아준 게 아니다. 불쾌하고 짜증나지만 마땅한 이름이 없다 보니 하소연할 데 없던 아시아인들의 억하심정에 이름을 찾아줬다. 그게 마이너 필링스, 그러니까 소수적 감정이다.

저자에 따르면 소수적 감정은 차별로 인한 감정 앙금이 일상적으로 쌓이는데도 그런 현실을 끊임없이 부정당하다 보니 생긴다. 내가 틀렸나, 스스로를 의심한 끝에 빠지는 피해의식, 수치심, 짜증, 우울감이 바로 소수적 감정이다.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다 보니 이 감정은 카타르시스를 통해 해소되지 않는다. 오래 간다.

책은 소수적 감정 배후의 차별 현실을 에누리 없이 폭로한다. 으레 그렇겠거니 예상하고 읽어도 충격적인 내용이 많다. 인종주의는 공기처럼 미량으로도, 벌거벗은 욕설 공방 형태로도 표출된다. 저자는 그런 차별 이면에 자본주의 경제 체제가 웅크리고 있다고 본다. 가령 이 세계에서 아시아계 미국인들은 모호한 연옥 상태에 놓여 있다. 백인에게 무시당하고, 흑인에게 불신받다 보니 존재감이라고는 없다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존재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아시아인들이 백인들의 혐오 시선을 스스로 내면화한다는 점이다. 결과는 자기 혐오다. 백인들은 아시아인들에게 “다음은 너희가 백인이 될 차례”라고 강변하지만 실제로는 그럴 수 없는 현실에서 아시아인들에게 남은 길은 충분히 잘하지 못했다고 스스로를 다그치는 일뿐이다. 저자는 말을 아끼지 않는다. 이렇게 쓴다. 미국 사회의 보편성을 갈가리 찢어버리고 싶다고. 여기서 보편성은 백인성이 아니다. 백인 아닌 사람들이 차단돼 있는 상태다. 차별이 그만큼 보편적이라는 얘기다. 그런데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차별 철폐 말이다. 결국 아시아인들 사이의 연대밖에 없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마이너 필링스』로 주목받은 한국계 미국 시인 캐시 박 홍. [사진 Beowulf Sheehan]

『마이너 필링스』로 주목받은 한국계 미국 시인 캐시 박 홍. [사진 Beowulf Sheehan]

LA에서 태어난 캐시 박 홍은 시인으로 잘 나간다. 세 권 시집이 모두 주목받았다. 『마이너 필링스』로 전국구 반열에 올라선 느낌이다.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을 받았고, 수상하진 못했으나 퓰리처상 논픽션 부문 본선에 진출했다. 서면으로 몇 가지를 물었다.

책에 그려진 인종 차별 현실이 워낙 완강해 보여 개선이 불가능하게 느껴질 정도다.
“미국의 인종 차별은 노예제와 5000만 명에 이르는 원주민 학살로 시작됐다. 노예해방·투표권 등 진전이 있었지만 미국은 실제 현실과 달리 다문화주의 전도사 행세를 해왔다. 아시아계 미국인에 대한 차별 역사도 뿌리 깊다. 그렇다고 싸움을 하지 말아야 할까. 아무런 희망이 없어도, 공감 능력 있는 사람들에게 정의를 위한 투쟁은 타고나는 것이다. 민주화 투쟁을 경험한 한국인들이 잘 알 거라고 생각한다.”
영화 ‘미나리’는 어떻게 봤나. 책에 따르면, 이민자들의 고통을 강도 높게 보여주는 전형적인 서사에서 벗어나 있는 듯한데.
“한국 이민자 가정의 구체적인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잘 만든 영화다. 오히려 이민자 이야기의 전형성에서 벗어나 있어 미국인들의 사랑을 받은 것 같다. ‘미나리’의 성공으로 봉준호 감독의 영화처럼 대담하고 독창적인 아시아 영화가 더 많이 소개되기를 바란다.”
할리우드 영화는 인구 비율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는다고 비판받는다. 정치적 올바름을 너무 강조하면 예술을 해치지 않나.
“할리우드 영화가 능력주의, 상업적 성공을 잣대로 만들어진다고 보는 건 문화·엔터테인먼트 영역에서 권력이 어떻게 작동하느냐에 대해 순진한 것이다. 인종 구성에 대한 고정 관념 때문에 할리우드 영화는 지루하고 뻔하다.”
미국을 비판하면서도 미국 사회에 부채의식이 있다고 썼다.
“부채의식은 비백인들이 백인들에게 항상 감사해 할 것을, 백인들이 기대하는 현실과 관련 있다. 실제로는 아무리 오래 살아도 외국인 대접인데 말이다. 나는 내가 미국에서 받은 교육, 미국의 페미니즘적 가치, 뉴욕 같은 곳의 다양성에 감사해 한다. 내가 미국에 속해 있다고 느껴 비판하는 거다. 나는 한국의 문화적 생산, 경제 성장에도 자부심을 느낀다. 그렇다고 재벌 같은 한국의 문제에 눈감아야 하나. 한국의 미투 운동을 환영한다. 평등을 주장하는 여성들에게 자기 몫을 빼앗긴다는 한국 남성들의 주장은, 비백인들의 평등 요구를 백인들이 대하는 방식과 똑같다. 모두가 자유롭기 전에는 아무도 자유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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