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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는 시간 측정술 발달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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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0호 21면

시간을 길들이다

시간을 길들이다

시간을 길들이다
니컬러스 포크스 지음
조현욱 옮김
까치

인류 문명의 발생과 발전을 이야기할 때 흔히 강·농업·도시·전쟁·교역·산업을 입에 올린다. 하지만 영국 저술가인 지은이는 인간이 ‘시간’ 개념을 인지하면서 문명 발전의 기회를 잡았다고 강조한다. 인류는 역사 발전에 따라 달력과 시간을 파악하고 표시하는 도전을 해왔으며 그 흔적을 유물로 남겼다고 지적한다.

가장 오래된 인류의 시간 인지능력 증거는 아프리카에서 나왔다. 1950년 벨기에의 장 드 하인젤린 드 브로쿠르는 콩고(현재 콩고민주공화국) 이샹고에서 찾은 개코원숭이의 종아리뼈에서 세 개의 열을 지어 새겨진 작은 홈들을 발견했다. 2만~2만5000년 전의 것으로 나타났지만, 용도는 계속 미궁에 빠졌다. 라이프지 기고자인 알렉산더 마섀크가 홈의 위치와 달의 2개월 주기가 일치함을 밝히면서 원시 달력으로 드러났다. 이 뼈는 인류가 시간 인지를 통해 비로소 호미니드(사람과의 대형유인원)와 분리돼 문명을 개척하기 시작한 근거로 제시됐다. 시간 인지는 도구 제작과 언어 사용으로 이어졌다고 마섀크는 주장한다.

문명 발상지인 메소포타미아에선 76년 항공 촬영에서 진흙 구덩이 12곳이 발견됐다. 중석기 시대인 기원전 4000년 무렵 만들어져 신석기 초기까지 약 4000년간 사용됐다. 용도는 오리무중이었다. 영국 버밍엄대 빈센트 개프니 교수는 2013년 원격 탐지기술, 과거 일출·일몰 표시 소프트웨어를 활용해 이들이 음력으로 12개 달을 가리키는 것으로 판단했다. 구덩이는 달의 형태가 조잡하게 표시된 거친 형태의 원시 달력이었다. 스코틀랜드 워런 평야의 구덩이들은 1만 년 전부터 6000년간 이 용도로 쓰였다. 독일에도 비슷한 유적이 있다.

콩코 이샹고에서 발견된 동물뼈. 가장 오래된 시간 계산 장치일 수 있다. [사진 까치]

콩코 이샹고에서 발견된 동물뼈. 가장 오래된 시간 계산 장치일 수 있다. [사진 까치]

달력 기술은 문명 발아의 원동력이 됐다. 19세기 말 프랑스의 이집트학자 조르주 르그랭은 고대 파라오 아멘호테프 3세의 사후 세계를 축복하는 장제전에서 화분 모양의 석제 유물을 발견했다. 연구 결과 기원전 1415~1380년에 제작된 이 유물은 물이 일정하게 한 방울씩 떨어지게 고안한 물시계였다. 바깥에는 밤에 차례로 떠오르는 별을 새겨 밤낮을 가리지 않고 시간을 알 수 있게 했다. 바닥에는 달을 나타내는 달력을 새겼다. 고대 이집트의 시간 능력이다.

인간 중심의 과학기술로 본격적인 문명 개척에 나선 근대 이후 그 능력은 도약했다. 수학과 천문학이 발달한 중국 송나라의 관료인 소송(蘇頌)은 1090년 물을 동력으로 톱니바퀴 물레를 움직이는 기계식 시계를 만들었다. 물시계와 기계식 시계를 이어주는 고리였다.

유럽에선 기계식 공공 시계가 중세의 어둠을 뚫고 르네상스의 여명을 열었다.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대성당엔 1350년 한 장인이 나무와 쇠로 만든 천문시계가 있다. 장식용 기계 수탉은 시간에 맞춰 울음 시간을 냈다. 이처럼 르네상스를 주도했던 도시들은 경쟁적으로 기계식 공공 시계를 설치했다. 도시의 부와 특권, 그리고 기술력의 산물이었다. 같은 시계 종소리를 듣고 자란 사람들은 동질감을 느꼈다. 시간 인지와 공유가 기술 문명의 상징이 됐다.

1550년 무렵 독일에서 최초의 개인용 휴대 시계인 뉘른베르크의 달걀이 나오면서 시계는 부와 권력의 상징이 됐다. 1859년 완공된 영국 런던의 빅벤은 과학기술과 실용주의를 상징하는 대영제국의 상징이 됐다. 이제 시계는 대중의 공예품으로 자리 잡았다.

시간을 장악하려는 인간 의지가 문명 발전을 이끌었다는 지은이의 주장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시간을 장악한 것인지, 시간에 포획된 건지에 대한 의문은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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