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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인 거래소, 보안성·실명계좌 확보 못해 줄폐업 우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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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0호 10면

암호화폐 시장 먹구름

20일 서울 용산구 코인원 고객센터 모니터에 암호화폐 시세가 표시되고 있다. [뉴시스]

20일 서울 용산구 코인원 고객센터 모니터에 암호화폐 시세가 표시되고 있다. [뉴시스]

국내 암호화폐 시장이 ‘운명의 한 달’을 남겨뒀다. 약 660만 명으로 추산되는 투자자, 그리고 새로 투자를 준비 중인 경우라면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국내 모든 암호화폐 거래소는 다음달 24일까지 금융위원회 금융정보분석원(FIU)에 사업자 신고를 하고 영업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날까지 보안성을 입증하는 정보보호관리체계(ISMS) 인증의 획득, 투명성을 입증하는 은행권 실명 계좌 확보 등의 요건을 갖춘 경우에만 사업자로 인정받는다. 자금세탁 범죄 방지 등을 목표로 지난 3월 시행된 특정금융거래정보법(특금법) 개정안의 적용 유예기간이 이날까지인 데 따른 절차다.

운명 가를 ‘특금법’ 적용 한 달 앞 #79곳 중 ISMS 획득 19곳 불과 #실명 계좌 확보는 4대 거래소뿐 #금융위 “요건 모두 충족한 곳 없어” #투자자들 돈 빼지도 못해 진퇴양난 #세계 최대 바이낸스, 사실상 철수

허가받지 못한 경우 다음달 25일부터는 영업을 할 수 없다. 한 달 남짓 남았지만 상황은 좋지 못하다. 금융위는 6~7월 현장 컨설팅을 실시한 결과 신고 수리 요건을 모두 충족한 사업자가 한 곳도 없었다고 지난 16일 밝혔다. 이용자가 많아 국내 4대 거래소로 통하는 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도 그렇다는 게 금융위 측의 설명이다. 이들은 ISMS 인증 획득과 은행권 실명 계좌 확보 요건을 충족해 투자자 사이에선 ‘안정권’으로 분류된 바 있다. 업계 관계자는 “금융위가 공식 요건과는 별개로 전문인력 충원 등 자금세탁 범죄 방지 의무 이행의 준비성을 점검한 걸로 안다”며 “여기서 미흡한 부분이 있다고 봤을 것”이라고 전했다.

내달 24일까지 신고, 영업허가 받아야  

이달 현재 영업 중인 국내 거래소는 총 79곳(금융위 추산치)인데 그중 ISMS 인증을 획득한 곳은 19곳, 은행권 실명 계좌를 확보한 곳은 4대 거래소 4곳뿐이다. ISMS 인증을 받는 데는 일회성 비용 수천만원이 들며, 사후 유지·관리 비용도 필요하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거래소가 자의(自意)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이지만 은행권 실명 계좌 확보는 얘기가 다르다. 현재 시중은행들은 거래소에 실명 계좌를 발급했다가 문제가 생길 경우 법적 제재에 휘말릴 수 있다고 보면서 여기에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에 거래소들이 은행권 실명 계좌 확보 요건을 갖추기가 한층 까다로워졌다.

또 금융위의 컨설팅 결과에서 보듯 4대 거래소라도 향후 일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들은 6개월 단위로 각 은행과 재계약을 해, 은행이 언제든 돌아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서다. 이 때문에 앞으로 사업 유지가 어렵다고 본 거래소의 잇단 폐업과 일부 횡령 등 이른바 특금법 리스크가 현실로 나타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로 최근 거래소들의 움직임이 심상찮다. 중소 규모 거래소 비트소닉은 11월까지 모든 서비스를 일시 중단한다고 선언했다. 이곳은 지난 5월 대표이사가 이용자 39명으로부터 약 61억원 규모의 횡령과 사기 등 혐의로 제소된 터라 사실상 폐업 수순이라는 분석이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블록체인 전문업체 코인플러그가 운영하는 CDPAX도 다음달부터 가상자산 보관 및 온라인 출금 서비스를 중단한다고 밝힌 상태다. 이곳은 비트소닉과 달리 잡음이 없던 거래소라 ‘먹튀’ 우려보다는 특금법 여파로 불투명해진 미래에 대한 우려가 투자자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이외에 달빗과 데이빗 등 다른 중소 규모 거래소는 아예 운영을 전면 중단하면서 사실상 시장에서 철수했다. 심상찮은 기류는 국내에서 영업 중이던 해외 유명 거래소의 최근 행보에서도 감지된다. 세계 최대 규모 거래소로 통하는 바이낸스는 한국어 지원과 원화 현물거래 서비스를 중단한다고 지난 13일 공지했다. 사실상의 국내 철수 선언이다.

바이낸스 측은 “현지 규제에 부합하고자 지속해서 내부 평가한 결과 한국에서 (일부) 서비스를 중단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곳은 국내 4대 거래소 못잖게 국내 이용자가 많았던 만큼 파장이 클 전망이다. 다른 해외 거래소 비트프런트도 다음달 14일부터 한국 신용카드 결제 서비스를 중단한다고 공지했다. 앞서 금융당국은 해외 거래소가 신고 없이 국내 영업을 계속하는 데 대해서도 특금법에 따라 대응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해외 거래소의 경우 아무리 돈이 많아도 ISMS 인증부터 쉽지 않아 특금법이 정한 요건을 갖추기가 어렵다는 분석이다. 개인정보 보관 장소가 국내에 있어야 한다는 게 ISMS 인증 조건이어서다.

문제는 거래소의 이 같은 줄폐업이나 서비스 외연 축소로 인한 투자자들의 피해다. 한 투자자는 “투자한 돈을 미리 빼면 될 일 아니냐고들 하는데 수익률이 크게 마이너스인 상황에서 지금 뺄 수도 없고, 다음달에 뺀다 해도 회복이 얼마나 돼 있을지 불확실하다”며 “그렇다고 거래소만 믿고 기다리기도 어려운 진퇴양난의 상황”이라고 하소연했다. 이에 업계 안팎에선 현재 특금법이 투자자 보호보다 자금세탁 범죄 방지에 초점을 맞춘 규제라 외려 투자자 피해를 유발하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거래소의 철퇴보다 건전성 강화 유도를 통한 합법·양성화에 초점을 맞춰야 자금세탁 범죄 방지뿐 아니라 투자자 보호까지 가능하다는 얘기다. 하지만 정부와 금융당국은 투자자들이 각 거래소의 신고 현황을 확인, 주의해야 한다는 원론적인 입장만 유지하면서 예정대로 법적 절차를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안 맞는 조항 있어”

조원희 법무법인 디라이트 대표변호사는 “현 특금법은 가상자산 산업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입법·시행돼 정작 투자자 보호를 위해 암호화폐의 시세 조작이나 불투명한 상장 등을 규제하는 역할은 못한다”고 말했다. 여기에 은행권의 소극적 태도와 중소 규모 거래소의 줄폐업을 유발하는 세부 조항을 재검토할 필요성도 있다는 지적이다. 정지열 한국자금세탁방지전문가협회장은 “은행권 실명 계좌 확보라는 (금융위의) 신고 수리 요건은 거래소들에 고객 확인 및 관리 능력이 없던 수년전 상황에나 맞는 조항”이라며 “최근의 글로벌 스탠더드에도 안 맞는 만큼 굳이 이를 둘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설명했다.

익명을 원한 블록체인 전문가 역시 “ISMS 인증 획득 요건은 비용 부담이 큰 중소 규모 거래소엔 ‘사업 관두고 철수하라’는 강요나 다름없다”며 “일부 대형 거래소에만 특혜를 주는 조항이라 시장이 이들만 살아남는 구조로 재편되면 장기적으로 투자자 피해가 더 커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시장 상황을 좀 더 고려한 추가 입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조명희·윤창현 의원 등 12명은 거래소 등 가상자산 사업자의 신고 기한을 연장하고, 거래소가 은행으로부터 실명 계좌 발급 심사를 공정하게 받을 수 있는 전문은행 제도를 도입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특금법 일부 개정안을 최근 발의했다. 그러나 아직 여야 간에 본격적인 협의는 진행되지 않고 있다.

국내 알트코인 무더기 상장폐지…“유동성 떨어져 시세 조작 쉬워”

특정금융거래정보법(특금법) 개정안 적용 시점이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그간 국내에 난립했던 알트코인(비트코인을 제외한 모든 암호화폐)의 상장폐지도 잇따르고 있다. 국내 최대 거래소 업비트는 지난 6월에 하루 동안 2017년 출범 후 최다 규모인 24종의 코인을 상장폐지했다. 빗썸과 코인빗, 포블게이트 등 거래소도 6월에만 총 15종의 코인을 상장폐지했다. 이들은 부실 코인을 솎아냄으로써 투자자를 보호한다는 것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특금법과 무관하지 않은 ‘사전 작업’이라는 것이 업계 안팎의 시각이다. 은행권의 실명 계좌 발급이나 재계약 심사에 걸림돌이 될 수 있는 요소를 제거하는 차원의 조치라는 것이다.

국내 거래소들은 상품이 많을수록 투자자가 몰리고 거래 건수가 늘어 수수료 수익이 많아진다는 판단 하에 지금껏 충분한 검증 없이 많은 코인을 상장했다.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4대 거래소에 신규 상장된 코인만 지난해 총 230개로 2년 전인 2018년(116개) 2배였다. 같은 기간 상장폐지된 코인은 97개로 11개에서 9배가 됐다. 부실 코인의 ‘묻지마 상장’이 그만큼 많았다는 얘기다. 이는 은행권 심사에서 자금세탁 범죄 방지의 저해 요인으로 비칠 수 있다. 현재 업비트는 케이뱅크, 빗썸과 코인원은 NH농협은행, 코빗은 신한은행과 각각 실명 계좌 발급에 대해 제휴한 상태다. 나머지 거래소는 아직 실명 계좌를 확보하지 못했다.

박선영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특히 국내 거래소에만 상장된 코인은 유동성이 떨어져 해외 거래소에도 상장된 코인보다 시세 조작이 상대적으로 수월하다”며 “투자자 손실을 부추기는 리스크가 컸던 만큼 특금법 적용이 이를 덜어주는 순기능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해석했다. 해외 주요국의 경우 이미 정부와 규제당국이 철저한 관리·감독으로 부실 코인 유통을 최소화하고 있다. 미국은 2018년부터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연방법에 따라 코인 발행사를 규제, 법 위반 소지가 있는 코인이 발견되면 미리 상장을 막는다. 일본은 2017년 거래소 등록제를 도입해 정부가 승인한 코인만 각 거래소가 상장할 수 있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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