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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 또 나홀로 독주…'집토끼' 잡느라 4·7 참패 교훈 잊었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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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20일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는 전날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의 언론중재법(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 강행 처리를 입법 성과로 포장했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가짜·조작 뉴스에 대한 국민 피해구제법이 어제 통과된 것”이라면서 국민의힘을 향해 “야당은 무턱대고 반대할 게 아니다. 평생 야당만 할 생각이냐”라고 비난했다.

정의당이 “언론중재법 아닌 ‘언론중죄법’”이라고 공개 지적하고, 친여 성향 시민단체(민언련)가 “언론의 비판적 역할을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는 입장문을 냈는데도 민주당이 나홀로 자화자찬에 나선 형국이다. 윤호중 원내대표는 한술 더 떠 “언론 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한 건 우리 민주주의를 성숙한 민주주의로 한 단계 높이는 희망 사다리를 놓은 것”이라고 자평했다.

넉 달 만에 다시 ‘독주’

지난 19일 하루 민주당은 문체위를 포함해 3개 상임위(환경노동위원회·교육위원회)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강행 처리를 감행했다. 언론중재법 개정안 외에 야당과 선명성 경쟁이 붙은 탄소중립 기본법(환노위), 진영 이해관계가 뚜렷한 사립학교법 개정안(교육위) 등을 목표로 삼아 처리했다. 특히 사립학교 교원 채용 시험을 시·도 교육감에 위탁하도록 하는 내용의 사립학교법 개정안은 사학 운영의 최소한의 자율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위헌 논란이 제기된 법안이다.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오른쪽)가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스1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오른쪽)가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스1

민주당이 기습처리를 기도한 3개 상임위는 모두 오는 25일로 예정된 본회의에서 국민의힘에 상임위원장 자리를 내주기로 한 곳들이다. 지난달 23일 국회 상임위원장 재배분에 합의한 뒤 “이제 일하는 국회의 틀이 마련됐다”고 생색냈던 윤 원내대표가 지휘자였다. 익명을 요구한 민주당 원내 관계자는 “상임위원장이 한 번 넘어가고 나면 야당 발목잡기로 처리 기약을 하기 힘든 법안들이 있다”면서“시기를 놓치지 전에 꼭 해야 하는 일들을 하고 가야 한다는 판단이 선 것”이라고 말했다.

사라진 “쇄신”“협치”“중도 확장”

4·7 재·보선 참패 이후 송영길 대표 체제를 출범시키며 “협치”, “쇄신”에 방점을 찍는 듯했던 민주당은 다시 입법 독주를 통한 힘의 정지로 회귀하는 모습이다. 검수완박·임대차3법 강행처리로 ‘집토끼’ 공략을 위해 입법 독주에 나섰던 전철을 그대로 답습 중인 셈이다. 민주당의 한 전략통 의원은 “당내 경선 국면에서는 캠프 뿐 아니라 당 전체가 지지층을 바라보고 움직이는 게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송영길 대표가 중도층 확장에 마이너스가 될 것을 알면서도 ‘이 정도는 감당 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입법을 감행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익명을 원한 여권 핵심 인사는 “당 차원의 선명성 과시는 명·낙 대전으로 내부 균열 양상을 보이는 지지층을 원팀 기조로 다시 추스르는 효과도 있다”고 말했다. 언론과 야당 등 외부의 적을 만들어야 내부 단결을 도모할 수 있다는 말이다.

지난 4월 8일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대표 직무대행과 최고위원들이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4.7 재보궐 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지도부 사퇴를 발표한 후 인사하고 있다. 재보선 직후 비대위원장을 맡았던 도종환 의원은 지난 19일 문체위원장으로 언론중재법을 단독 강행 처리했다.뉴스1

지난 4월 8일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대표 직무대행과 최고위원들이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4.7 재보궐 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지도부 사퇴를 발표한 후 인사하고 있다. 재보선 직후 비대위원장을 맡았던 도종환 의원은 지난 19일 문체위원장으로 언론중재법을 단독 강행 처리했다.뉴스1

그러나 당내에서도 부메랑 효과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대선 주자인 박용진 민주당 의원은 이날 통화에서 “개혁의 부메랑이 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20년 동안 오매불망하던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도 좋은 의지로 법안을 통과시켰는데 부메랑으로 돌아왔다”고 지적했다. 박 의원은 “처리된 법안의 취지엔 동의하지만, 지금처럼 일정을 잡아놓고 밀어붙이는 것에 대해서는 우려가 있다”면서 “막 밀어붙이는 방식으로는 보이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당 밖에선 그런 전망이 더 뚜렷하다. 윤태곤 실장은 “언론중재법은 향후 대출 규제 등 별도의 민생 사안과 결합할 경우 민주당에 대한 부정 여론을 촉발하는 도화선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여론조사기관 에스티아이 이준호 대표도 “아직 언론중재법 개정 이슈에 대한 대중적 이해가 깊진 않지만 떠들썩한 입법 독주로 관심이 커지고 있다”며 “소통과 설득없이 또 쟁점 입법들을 몰아쳐 검수완박 역풍을 재연할 가능성이 커졌다”고 진단했다.

이날 민주당은 오히려 국민의힘을 향해 “동물 국회를 보인 데 대한 법적·정치적·도의적 책임을 지라”(윤 원내대표)고 엄포까지 놓았다. 오는 25일 본회의에서 언론중재법 등 자체 설정한 ‘개혁 법안’ 처리를 또 한차례 강행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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