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 암살 시도도 못 꺾은 그녀 “끝까지 아프간과 함께 한다”

중앙일보

입력 2021.08.20 16:04

업데이트 2021.08.20 16:27

지난해 10월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탈레반과의 협상장에 나선 파지아 쿠피(가운데). 아프간 정부 대표단 21명 중 4명이 여성이었다. EPA=연합뉴스

지난해 10월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탈레반과의 협상장에 나선 파지아 쿠피(가운데). 아프간 정부 대표단 21명 중 4명이 여성이었다. EPA=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조금만 늦게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을 철수시켰더라면 아프간은 지금과는 달랐을까. 아프간의 대표적인 여성 정치인 파지아 쿠피(46)는 “바이든 행정부가 정치적 해결을 위해 한 달만 늦게 철수했더라면 (탈레반과의) 합의가 이뤄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이 갑자기 철수해 카타르에서 탈레반과 진행했던 모든 협상이 무력화되고 사람들이 위험해졌다”면서다.

아프간 첫 여성 국회 부의장 지낸 쿠피
무장괴한 총격 이어 두 딸도 공격 받아
"이곳서 내 나라 지키기 위해 싸울 것"

“갑작스런 철수에 협상 무력화”  

아프간 최초의 여성 국회 부의장을 지낸 쿠피는 지난해 아프간 정부 대표단 일원으로 카타르 도하에서 탈레반 지도부와 협상에 나섰던 인물이다. 그는 19일(현지시간)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외국 군대가 (아프간에서) 떠나길 바란다. 국가를 지키기 위해 외국 세력에 의존한다는 건 어떤 관점에서든 지속할 수 있거나 논리적이지 않다”면서도 “협상이 한창일 때 갑자기 (철수를) 결정한 것은 시기적으로 부적절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탈레반 지도부에 대한 유엔의 여행 금지조치 해제도 우려했다. 탈레반 지도부와 카타르에서 평화협정을 진행하기 위한 조치였지만, 이를 통해 탈레반이 주변국의 지지를 얻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쿠피는 “탈레반은 주변국의 지지를 받기 위해 중국과 러시아, 이런, 터키까지 갔다”며 “국제사회가 이 상황을 매우 신중하게 지켜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노벨평화상 후보자에 오른 2019년 당시 파지아 쿠피. AP=연합뉴스

노벨평화상 후보자에 오른 2019년 당시 파지아 쿠피. AP=연합뉴스

쿠피는 태어나자마자 딸이라는 이유로 버려졌다. 거의 죽기 직전 마음을 바꾼 어머니의 헌신적인 사랑으로 90년대 초 내전이 한창일 때도 자매 중 유일하게 학교에 다닐 수 있었다. 의사를 꿈꿨지만, 탈레반이 집권한 후 학교에 다닐 수 없게 되자 정략결혼을 택했다. 그러나 남편은 결혼 10일 만에 국회의원 딸과 결혼했다는 이유로 탈레반에게 붙잡혔다. 이후 석방됐지만, 2003년 결핵으로 숨졌다.

탈레반 공개 비판, 피격 당해 

2001년 탈레반이 물러난 뒤 사회 활동에 나섰다. 2004년까지 유니세프에서 아동 보호 책임자로 일했고, 2005년 의회에 입성한 후 아프간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국회 부의장을 지냈다. 2014년 대선에 출마하려고 했지만, 갑작스러운 후보 등록일 변경으로 최소 연령(40세)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불발됐다. 여성과 아동 인권 증진에 앞장서 2009년 세계경제포럼에서 ‘젊은 글로벌 리더’로 선정됐고, 지난해엔 노벨평화상 후보에도 올랐다.

쿠피는 탈레반을 공개 비판해왔다. 이번 인터뷰에서도 “탈레반의 이슬람교는 이슬람이 아니다”라며 “탈레반은 이슬람적이지 않은 다른 전통과 혼합돼 매우 보수적이고, 어린 탈레반은 교육을 받지도 않는다”라고 비판했다. 젊은 탈레반 대원과 나눈 대화도 소개했다. “그에게 왜 탈레반에 합류했느냐 물었더니 ‘종교가 나를 불렀다’고 답했다. 교육도 받지 않은 젊은이가 종교에 대해 무엇을 아는지 모르겠다”면서다.

탈레반과의 협상장에 나선 파지아 쿠피. EPA=연합뉴스

탈레반과의 협상장에 나선 파지아 쿠피. EPA=연합뉴스

그렇다 보니 쿠피를 향한 위협은 끊이지 않는다. 2010년 몇 차례의 암살 시도에 살아남은 그는 지난해 8월에도 무장괴한들이 쏜 총에 맞았다. 두 딸뿐 아니라, 그의 언니와 조카도 이미 공격을 받았다. 그런데도 그는 “(아프간에 남는 일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아프간을 끝까지 지키겠다”고 한다. 그는 “아프간은 내 나라이고, 나는 평생 아프간의 흥망과 함께했다”면서 “많은 이들이 내가 하는 일에 아프간의 희망을 건다”고 말했다.

아프간 여성들에 대한 희망도 놓지 않고 있다. 그는 “여성은 아프간을 변화시킬 주체가 될 수 있다”며 “최근 탈레반의 총부리 앞에서 시위에 나선 여성은 소수였지만, (그런 방식으로) 우리가 처한 상황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을 촉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우리가 원하는 건 (이전과) 똑같은 권리와 존중입니다. 저는 이곳에서 내 나라, 여성과 남성을 위해 싸우겠습니다.”

 그가 인터뷰에서 내놨던 다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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