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국기 시위대에 탈레반 발포…피로 물든 독립기념일 [영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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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간 전국에서 지난 19일 독립기념일 102주년을 맞아 탈레반에 대항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트위터 캡처]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서 200여 명의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국기를 흔들고 구호를 외치는 등 전국에서 이슬람 무장단체 탈레반에 반대하는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탈레반이 국기를 흔드는 비무장 시위대를 향해 발포하고 무력으로 진압하면서 곳곳에서 사망자가 속출했다.

카불 등 아프간 전역 대규모 시위 #탈레반기→아프간 국기로 교체도 #발포, 무력진압으로 사상자 발생

19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과 미국 뉴욕타임스, 영국 가디언 등에 따르면 탈레반이 수도 카불을 함락한 지난 15일 이후 가장 큰 규모의 저항 시위가 아프간 전역에서 일어났다. 시위가 벌어진 19일은 아프간 독립기념일 102주년이었다. 1919년 8월 19일은 아프간이 영국의 통치에서 독립한 날이다.

시민들, 게양대 올라가 탈레반기→국기로 교체

이날 시위대는 카불 시내의 압둘 하크 광장에 게양된 탈레반 기를 내리고 아프간 국기를 내걸었다. 탈레반은 아프간 지역을 점령할 때마다 관공서나 광장 등에 탈레반 기를 꽂아왔는데, 이에 반발한 시위대가 게양대에 기어올라 아프간 국기로 교체한 것이다. 국기를 게양한 시민 타지불라는 현지 매체 톨로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광장 중앙에 국기를 게양했다"며 "국기는 우리의 정체성"이라고 말했다. 시위에 참석한 아마드도 “이 깃발에 내 목숨을 바치겠다”고 톨로뉴스에 말했다.

동부 아사다바드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 아프간 국기를 흔들었다. 목격자인 모하마드 살림은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수백명의 사람들이 거리로 나왔다. 처음에는 주저하던 이들도 이웃들이 합류하는 걸 보고 집에 있던 국기를 꺼내들고 거리로 나갔다"며 "탈레반이 총을 쏘고 시위대를 구타해 여러 명이 사망하고 다쳤다"고 말했다.

아프간 전국에서 지난 19일 독립기념일 102주년을 맞아 탈레반에 대항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트위터 캡처]

잘랄라바드 최소 4명, 아사다바드 3명 사망

동부의 잘랄라바드에서도 아프간 국기를 흔드는 시위대에게 탈레반 무장대원이 발포했다. 러시아 스푸트니크통신은 이날 잘랄라바드에서 시민 최소 4명이 탈레반이 쏜 총에 맞고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아사다바드에서는 탈레반 대원이 국기를 덮은 차량에 총을 쏴 시민 3명이 사망했다고 전해졌다. 앞서 18일에는 코스트시에서 시위 도중 일부 시위대가 탈레반 깃발을 찢어버렸다. 이후 탈레반은 이곳에서 통행을 금지시켰다.

여성들도 시위에 적극 참여했다. 트위터에 올라온 카불과 잘랄라바드 등의 시위 영상에는 얼굴을 드러낸 여성들이 다수 눈에 띈다. 지난 16일에는 탈레반의 경계가 가장 삼엄한 카불에서 여성단체가 탈레반을 향해 "우리도 직장과 학교에 다닐 수 있게 허용해달라"고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아프간의 부통령 암룰라 살레의 트위터. 국기 게양에 나선 용감한 시민들에 대한 감사와 경의를 표했다. [트위터 캡처'

아프간의 부통령인 암룰라 살레는 자신의 트위터에 "탈레반에 맞서 국기를 게양하기 위해 나선 국민들의 용감하고 애국적인 움직임에 존경과 지지, 감사를 보낸다. 많은 분들이 숭고하게 순교하신 데 대해 경의를 표한다"고 적었다. 살레 부통령은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이 국가를 떠난 뒤 자신이 "합법적인 대통령 대행"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외신 "탈레반 약속과 행동 달라" 우려

이같은 아프간 국민들의 시위는 온·오프라인을 통해 세계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소셜 미디어에는 '#SAVE AFGHAN(아프간을 구하라)' '#SAVE AFGHAN WOMEN(아프간 여성을 구하라)' 등의 해시태그 달기가 퍼지고 있다. 세계 각지에서는 동조 시위가 열렸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시청 앞에는 19일 "아프간 난민을 데려와야 한다"고 주장하는 철야시위가 진행됐다. 영국·벨기에·그리스·스페인에서도 반(反) 탈레반 시위가 잇따랐다.

외신들도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다. 뉴욕타임스는 "탈레반 지도부가 '20년 전의 잔혹함은 과거의 일'이라면서 포용적 정부를 구성하겠고 전향적인 약속을 내놨지만, 실제 아프간 시내에서 벌어지는 탈레반의 행동과는 전혀 일치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영국 인디펜턴트 역시 "탈레반 대변인은 '세계 여러 나라와 평화로운 관계를 원한다. 아프간 정부 및 미국에 협력한 사람들을 사면하겠다'고 하지만, 아프간 전국 각지에서 벌어지는 교전은 이런 탈레반의 약속에 의문을 제기하게 만든다"고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