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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재갈법 침묵의 동조자들…"文·靑 침묵은 OK 사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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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은 19일 언론에 징벌적 손해배상(최대 5배) 책임을 묻는 소위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강행 처리했다. '언론재갈법','언론징벌법'으로 불리는 법안이다. 지난달 27일 문체위 소위 강행 처리, 18일 안건조정위 졸속 심의와 강행 처리에 이은 '입법 폭주'다.

19일 오전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회의실에서 국민의힘 김기현 원내대표 등 의원들이 '징벌적 손해배상' 언론중재법 개정안 통과에 반대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임현동 기자

19일 오전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회의실에서 국민의힘 김기현 원내대표 등 의원들이 '징벌적 손해배상' 언론중재법 개정안 통과에 반대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임현동 기자

과거 여권 내부에서도 언론 자유 침해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던 이 법안이 일사천리로 상임위의 벽을 뛰어넘은 데엔 윤호중(사령탑)ㆍ김용민(행동대장)ㆍ박정(현장지휘)ㆍ김승원(코디네이터) 민주당 의원과 김의겸(바람잡이) 열린민주당 의원 등 '언론재갈법 5인방'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하지만 당ㆍ정ㆍ청 내부의 동조자들이 침묵으로 이들에게 프리 패스의 길을 열어줬다는 평가가 나온다. 친여 시민단체와 정의당까지 등을 돌리고, 내용적으로나 절차적으로나 "최하품질의 악법"(이달곤 국민의힘 의원)이란 비판이 빗발쳤지만, 강경파들의 폭주에 제동을 거는 사람은 여권 내부에 없었다.

①文의 침묵=청와대의 침묵이 대표적이다. 대선 후보 시절인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은 언론들의 '최순실 게이트' 보도에 "언론의 침묵은 국민의 신음"이라 말했다. 하지만 이번 논란에 청와대는 침묵에 침묵만 거듭했다. 해당 법안이 문체위를 통과한 19일에도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국회에서 논의하고 의결하는 사안"이라고만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19일 전북 군산형 일자리 에디슨모터스 공장 준공식 축사를 영상으로 전하고 있다. 청와대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19일 전북 군산형 일자리 에디슨모터스 공장 준공식 축사를 영상으로 전하고 있다. 청와대제공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이번 건은 민주당이 처음부터 전체를 주도했다. 청와대가 개입하거나 의견을 제시한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앞으로도 청와대에서 언급할 일은 없을 것 같다”며 "None of my business(우리와 무관한 일)"란 표현까지 동원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과 청와대의 이런 태도에 대해선 "강성 친문이나 당내 주도 세력에게 사실상의 'OK'사인을 주는 무책임한 행동"이란 비판이 쏟아진다. 야권에선 "여당보다 더 비겁한 것은 침묵하는 문 대통령"(하태경 국민의힘 의원),"(민주당의 강행 처리는) 대통령의 심중을 정확히 꿰뚫고 있는 것"(윤석열 캠프 김기흥 부대변인)이란 반응이 나왔다.

②방관한 문체부=언론 주무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 역시 철저히 방관자적 태도였다. 법안이 문체위를 통과한 뒤 황희 장관은 “의결해주신 데 대해서 깊은 감사를 드린다. 입법 목적이 달성될 수 있도록 집행에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말했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 전체회의가 17일 국회에서 열린 가운데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오영우 제1차관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날 회의에서는 언론사의 고의와 중과실에 따른 허위 조작 보도에 최대 5배까지 손해배상 청구를 허용하도록 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 심의가 진행됐다. 임현동 기자

국회 문화체육관광위 전체회의가 17일 국회에서 열린 가운데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오영우 제1차관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날 회의에서는 언론사의 고의와 중과실에 따른 허위 조작 보도에 최대 5배까지 손해배상 청구를 허용하도록 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 심의가 진행됐다. 임현동 기자

지난해 11월 소위가 열렸을 때만 해도 문체부의 입장은 달랐다. 당시 오영우 1차관은 정정보도 청구 기한을 4배로 늘리는 법안 등 여러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해 “언론 자유 침해의 우려가 있다”, “수용하기 어렵다”, “적절치 않다” 는 태도를 보였다. “언론사를 대변하러 왔느냐”(이상직 민주당 의원)란 말을 들을 정도였다.

하지만 강경파들이 '언론재갈법'의 페달을 밟기 시작한 뒤엔 태도가 달라졌다. 지난달 27일 소위에서 야당 의원이 "민주주의 국가에서 언론의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규정한 입법례가 있나"라고 묻자 오 차관은 “있더라도 많지 않을 것”이라고만 했다. 지난해와 같은 소신 발언은 찾기 힘들었다.

③판 깔아주고 입 닫은 당 대표=징벌적 언론중재법의 생산 기지이자 컨트롤타워는 지난 5월 출범한 민주당 미디어혁신특위다. 이 특위를 출범시키고 '행동대장'인 김용민 최고위원을 위원장에 앉힌 건 송영길 대표다.

송 대표는 각계에서 이 법안에 비판이 쏟아지는 상황에서도 “언론 환경 개선은 필요하다”는 식의 원론적인 답변으로 피해 다녔다. 소위에서 법안이 강행 처리된 뒤인, 지난 10일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에서도 “문체위에서 야당 의견을 수렴해 조정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만 했다.

10일 오전 국회 더불어민주당 대표실에서 송영길 당대표가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10일 오전 국회 더불어민주당 대표실에서 송영길 당대표가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조국 사태에 대해 사과하고, 강성 친문을 '대깨문'으로 부르며 '민생'과 '중도확장'에 방점을 찍었던 송 대표의 모습과는 거리가 크다.

송 대표가 '김용민 미디어특위'를 출범시키고 '언론재갈법'을 수수방관한 걸 두고 야당 내부에선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무산 등으로 불만이 큰 강성 지지층의 총구를 언론개혁으로 돌리겠다는 꼼수"라는 지적이 나온다.

④우물에 침 뱉는 전직 기자들= 기자 출신 민주당 의원들 역시 침묵으로 일관했다. 이달곤 국민의힘 의원은 19일 문체위 회의에서 “기자 생활을 한 사람이 기사를 삭제하고 차단하는 데 동의한다면, 나는 그 사람이 우물에 침 뱉고 가는 사람이라고 본다.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민주당 내 언론인 출신들을 겨냥한 것이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가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중소?벤처기업 성장 전략 공약 발표를 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가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중소?벤처기업 성장 전략 공약 발표를 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대선 주자 중엔 동아일보에서 21년간 기자 생활을 한 이낙연 전 대표가 있다. 그는 이날 취재진이 ‘기자 출신으로서 언론중재법 통과를 어떻게 보시나’라고 묻자 “언론이 산업으로서 지속 가능성 가져야 하는 동시에 신뢰를 회복해 국민의 사랑을 받길 원한다”는 애매한 태도를 견지했다.

다른 이들도 모두 “의견이 없다”는 말만 했다. 방송사 기자 출신의 한 의원은 ‘진보 언론계에서도 비판이 많은데, 어떻게 생각하느냐’, ‘향후 법안이 미칠 영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모두 “의견이 없다”고 답했다. 또 다른 방송사 출신 의원도 “말씀드리기 곤란하다”고 말했다.

野 “민주당엔 의인 10명이 없는가”

이런 당·정·청의 의도된 침묵에 국민의힘은 “언론 자유 파괴의 공범”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김승수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문체위 회의에서 구약성경 내용을 인용해 “‘의인 10명만 있으면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지 않겠다’는 말이 있는데, 민주당에는 그런 의인이 정말 없는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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