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 사냥개 풀어 송로버섯 찾았다, 어느 화장품 덕후 집념

중앙일보

입력 2021.08.20 05:00

업데이트 2021.08.20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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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1991년, 화장품 ‘덕후’이자 향기에 민감한 남자와 디자인 하는 여자가 만나 비누를 만들었다. 첫 비누의 생산 수량은 800개. 고급스러운 질감과 향을 지닌 비누는 깐깐한 미국 보스턴의 소비자들을 녹이기 충분했다. 사흘만에 800개 비누는 모두 팔렸고, 이는 화장품 브랜드 ‘프레쉬(fresh)’의 서막이 됐다.

프레쉬 창립자·CMO 단독 인터뷰

이후 프레쉬는 설탕·콩·우유·쌀 등 식재료를 원료로 각 나라의 민간 미용법을 더해 제품을 만들어 여러 히트 상품을 냈다. 어린 시절 할머니가 상처에 발라주던 갈색 설탕에서 착안해 ‘브라운 슈가’ 화장품을 만들고, 일본 게이샤들이 목욕물에 사케(일본 술)를 넣는 것에서 영감을 받은 ‘사케’ 화장품을 냈다. 현재 프레쉬는 미국 뉴욕에 본사를 두고 전 세계 33개국에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 2000년 프랑스 명품 기업 LVMH(루이비통 모에 헤네시)에 인수됐다.

1991년 미국 뉴욕 기반으로 탄생한 화장품 브랜드 프레쉬가 설립 30주년을 맞았다. 사진 프레쉬

1991년 미국 뉴욕 기반으로 탄생한 화장품 브랜드 프레쉬가 설립 30주년을 맞았다. 사진 프레쉬

올해로 설립 30주년을 맞아 프레쉬의 공동 창립자 레브 글레이즈먼과 알리나 로이트버그 LVMH 소속 프레쉬 최고 마케팅 책임자(CMO) 트닐 코피아즈를 지난 16일 화상으로 인터뷰했다.

프레쉬 공동 창립자 알리나 로이트버그(왼쪽)와 레브 글레이즈먼. 지난 17일 미국 뉴욕 본사에 있는 그들과 화상으로 만나 인터뷰 했다. 사진 프레쉬

프레쉬 공동 창립자 알리나 로이트버그(왼쪽)와 레브 글레이즈먼. 지난 17일 미국 뉴욕 본사에 있는 그들과 화상으로 만나 인터뷰 했다. 사진 프레쉬

지난 7월 발표한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30계명’에 대한 질문이 주를 이뤘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한 프레쉬의 목표와 행동 계획을 담은 일종의 선언서다. 지역사회 책임 및 기후 행동, 환경친화적 활동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 코로나19 이후 뷰티 산업 트렌드에 대한 이야기도 나눴다.

프레쉬는 지난 2000년 프랑스 명품 기업 LVMH에 인수됐다. LVMH 소속 프레쉬 최고 마케팅 책임자 트닐 코피아즈. 16일, 미국 뉴욕에 있는 코피아즈도 화상 인터뷰에 함께 했다. 사진 프레쉬

프레쉬는 지난 2000년 프랑스 명품 기업 LVMH에 인수됐다. LVMH 소속 프레쉬 최고 마케팅 책임자 트닐 코피아즈. 16일, 미국 뉴욕에 있는 코피아즈도 화상 인터뷰에 함께 했다. 사진 프레쉬

프레쉬는 항상 원료를 중시한다. 이번 30계명에도 원료 얘기가 빠지지 않았다.  
글레이즈먼_원산지에서부터 완전히 투명하게 추적이 가능한 원료를 사용하고자 한다. 예를 들어 우리 제품 중에 로투스(연꽃) 크림이 있는데, 미국 알라바마에 있는 농장에서 우리만을 위해 만든 연꽃을 사용하고 있다. 이번에 나오는 ‘화이트 트러플 마스크’에 들어가는 화이트 트러플(송로버섯)은 이탈리아 북부 알바 지역에서 자생하는 재료다. 재배가 안 되고 채취만 가능한데, 밤에 후각이 발달한 사냥개를 풀어 위치를 파악한 다음 트러플 사냥꾼들이 흙을 파내 채취하는 전통 방식을 그대로 따랐다.

자연에서 채쥐한 화이트 트러플. 후각이 발달한 사냥개가 장소를 특정하면 손으로 파내 채취한다. 사진 프레쉬

자연에서 채쥐한 화이트 트러플. 후각이 발달한 사냥개가 장소를 특정하면 손으로 파내 채취한다. 사진 프레쉬

다음엔 어떤 재료를 담을지 항상 연구하고 있을 것 같다.  
글레이즈먼_귀한 재료라고 해서 모두 피부에 좋은 효과를 주지 않기 때문에 원료 하나를 발견해 제품화하기까지는 정말 오랜 시간이 걸린다. 화이트 트러플 같은 경우 아이디어 검증까지 5년이 걸렸고, 이를 제품화해 안정적으로 피부에 적용하기까지 4년이 걸렸다. 또한 원료가 어떤 이점이 있는지, 어떻게 제품화할지 못지않게 생태계를 해지지 않는지도 고려해야 한다.

코피아즈_단순하게 좋은 재료를 찾기보다 생태계적으로 개입을 최소화하려 한다. 화이트 트러플을 채취할 때도 트러플 생태계를 보호하는 조직인 ‘세이브 더 트러플’ 단체와 파트너십을 맺고 채취할 때 땅에 약 10%는 남겨두는 방식을 따랐다. 프레쉬는 비영리 단체 UEBT(윤리적 생물거래를 위한 조합) 회원이기도 하다.

사냥개와 함께 화이트 트러플을 채취하러 가는 트러플 헌터(사냥꾼). 사진 프레쉬

사냥개와 함께 화이트 트러플을 채취하러 가는 트러플 헌터(사냥꾼). 사진 프레쉬

보통 화장품 회사의 ESG 경영 얘기에는 ‘포장’이 빠지지 않는다.
코피아즈_물론 친환경적 포장에 대한 부분이 있다. 2025년까지 모든 포장재를 재활용된 소재 또는 재활용 가능한 소재로 만들 것이다. 외부 컨설팅 업체와 함께 프레쉬가 전 세계에서 만들어내는 탄소발자국을 측정하고 2030년까지 순 탄소배출 제로 기업이 될 것이다.

글레이즈먼_친환경 포장재는 단순하지 않다. 환경에 좋으면서도 동시에 제품의 품질도 높여야 한다. 내용물과 포장재가 조화를 이뤄야한다는 의미다. 쉽지 않은 작업이다. 다만 3년 전보다 설탕·옥수수·버섯 포장재 등 새로운 친환경 포장재가 많이 나왔다. 하지만 섣불리 접근하지 않을 생각이다. “우린 이런 포장재를 사용하고 있습니다”라고 홍보하는 게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린워싱’에 대한 얘긴가? 마케팅 수단으로서 환경 이슈를 이용하는 것 말이다.  
글레이즈먼_정직한 활동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우리 제품이 정말 좋다고 생각한다. 이런 제품을 담는 포장재기 때문에 신중해야 하는데, 단지 친환경이라고 해서 채택하지 않을 것이다.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한다. 단순히 한 각도로 우리를 마케팅하고 싶지 않다. 친환경 포장재가 우리 DNA의 일부가 되면, 그때 진짜 변화가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ESG 활동을 한다고 소비자들이 알아줄까.  
글레이즈먼_뷰티 산업은 소비자들과 직접 만나는 산업이다.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사람들이 환경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다. 일상이 멈췄고, 한 걸음 물러나서 볼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사람들이 우리가 소비하는 것에 질문하기 시작했다. 앞으로는 철학이 있는 제품을 만들어야 사람들이 봐줄 것이다.

코로나19 이후 뷰티 산업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까.
로이트버그_팬데믹으로 우리는 고립을 겪었다. 화장품의 ‘리추얼(의례) 효과’에 대해 새로운 관점이 생긴 것 같다. 프레쉬 설립부터 효과만 있는 제품보다는 화장품을 쓰면서 향이나 질감을 좋게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에 초점을 뒀다. 장미 마스크 같은 경우에도 단 몇 분 동안사용하지만, 얼굴에서 장미 잎이 녹아내리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이런 좋은 제품 경험은 피부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정신적인 부분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알리나 로이트 버그는 코로나19 이후로의 화장품 트렌드에 대해 "고립된 사람들에게 마스크 하나가 위안 될 수 있음을 알게 됐다"며 "마치 친구처럼, 곁에 두고 좋은 경험할 수 있는 제품을 찾게 될 것"이라고 했다. 사진 프레쉬

알리나 로이트 버그는 코로나19 이후로의 화장품 트렌드에 대해 "고립된 사람들에게 마스크 하나가 위안 될 수 있음을 알게 됐다"며 "마치 친구처럼, 곁에 두고 좋은 경험할 수 있는 제품을 찾게 될 것"이라고 했다. 사진 프레쉬

그런 면에서 코로나19 시대에 잘 맞는 브랜드인 것 같다.
로이트버그_트렌드를 이끌어가는 브랜드는 아닌데, 결과적으로 우리 DNA가 시대에 맞아 떨어졌다. 화장품으로 위로를 받는다는 생각을 예전에는 사람들이 그리 깊이 해보지 않았던 것 같다. 좁은 세계에 갇히게 되니까 작은 소중함을 더 느끼게 된다. 눈을 감고 가장 좋아하는 페이스 오일을 사용하면서 에너지를 충전하는 식이다. 요즘엔 남자들도 마스크를 많이 쓴다. 특히 한국 남자들이 관심이 많다고 들었다. 긍정적 변화로 보고 싶다. 아침에 일어나 커피를 마시며 감각을 깨우듯, 바르는 마스크 하나로도 행복한 감각을 느낄 수 있다.

한국 남성들도 꽤 섬세해졌다.
글레이즈먼_K-뷰티의 저변에는 한국인들의 뷰티에 대한 관심이 깔려있다고 생각한다. 지난 2018년을 포함해 한국에 여러 번 방문했었는데, 다들 좋은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또 화장품을 굉장히 진지하게 바르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뷰티 산업은 논리가 아니라 감성이 이끌어가는 산업이다. 제품이 논리적으로 좋다가 아니라, 실제로 내가 좋다고 느끼는 게 매우 중요하다는 의미다. K-뷰티 제품들을 보면 즉각적 만족감을 주는 제품이 참 많다. 한국은 이미 전체 뷰티 산업군에서 선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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