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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최상연의 시시각각

딱한 야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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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최상연
최상연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운데)가 19일 곤혹스런 표정으로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했다. 대선 예비후보토론회를 정책비전발표회로 바꿔 당내 갈등이 봉합 되는 듯 보였지만 '저거 곧 정리된다'는 내용의 이 대표 통화 녹취록이 나오며 국민의힘은 '사분오열'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임현동 기자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운데)가 19일 곤혹스런 표정으로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했다. 대선 예비후보토론회를 정책비전발표회로 바꿔 당내 갈등이 봉합 되는 듯 보였지만 '저거 곧 정리된다'는 내용의 이 대표 통화 녹취록이 나오며 국민의힘은 '사분오열'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임현동 기자

‘코로나발 가택 연금’을 에어컨 없이 버텨보려 했지만 어림도 없는 여름이었다. 매시간 찬물 샤워를 하고도 밀려드는 열기에 집중이 어려웠다. ‘에어컨 없던 옛날엔 어떻게 살았지?’를 달고 살다 바로 항복했다. 참 고마운 물건이다. 물론 걱정은 남았다. 곧 청구서가 닥칠 테고 요란한 숫자일 게 뻔하다. 게다가 한전은 조만간 전기요금 인상 여부를 결정해야만 한다. 올해부터 연료비 연동제를 도입했고 기름값이 올랐다.
 뭐 선거도 있고 하니 당장은 빚을 확 키우는 쪽으로 갈 텐데 그래서 더 문제가 된다. 적자 눈덩이가 매달 수천억원씩 차곡차곡 쌓이는 판이다. 눈사람 정도가 아닌 눈사태를 걱정하는 전문가가 많다. 그렇다고 이 정부가 ‘탈원전 스톱’으로 방향을 틀 가능성은 전혀 없다. 대통령 직속 탄소중립위원회는 얼마 전 원전 비중을 더 낮추고 태양광·풍력으로 대체한다고 발표했다. 전기요금이 대략 3배쯤 올라야 할 거라고 한다. 부채질하며 산다고 치자. 서울시 면적의 10배 이상을 태양광 패널로 덮어야 한다던데 현실성은 따져봤는지 모르겠다.
 폭주 기관차에 브레이크가 없기론 시민의 발도 있다. 달릴수록 적자가 불어나는 빚더미 서울 지하철은 매달 부족한 운영 자금만 1000억원을 훨씬 넘는다. 구조조정은 노조 반발로 엄두를 못 낸다. 건강보험은 3년 연속 적자 수렁이다. ‘대통령이 보살펴준다’고 자랑하는 ‘문재인 케어’ 탓이다. 골병 든 4대 연금의 신음도 깊다. 민간 기업이면 모두 부도가 났을 텐데 짐을 차곡차곡 청년들 어깨로 떠넘기는 중이다. 일자리 참사에 부동산 대란, 백신 불안으로 허둥대는 정부까지 떠올릴 필요가 없다. 일상 어디를 둘러봐도 성한 숫자가 드물다.
 문재인 대통령이 야당 시절 ‘수퍼 전파자는 정부’라고 두들겨 팰 때 메르스 확진자는 두 자릿수였다. 그래도 특별 성명과 대국민 호소문으로 ‘뒷북 대응에 컨트롤타워는 작동되지 않았다’고 대통령 사과를 요구했고, 수사한다면 대상이 바로 정부라고 압박했다. 지금은 뭐가 다를까. 굵고 긴 데다 주먹구구인 K방역엔 고통의 목소리가 높다. 그러건 말건, ‘우리가 세계 제일’이란 정부다. 들이대는 통계엔 엉터리 분식이 많다. 당장 원전을 억지 폐쇄한 경제성 평가 수치가 그랬다.
 딱한 건 이렇게 죽을 쑤는 정권을 상대로 야당은 더 죽을 쑤고 있다는 사실이다. 자기들끼리 싸운다. 그것도 싸우면 말려야 하는 당 대표가 올려세워야 할 주자들과 낯 뜨거운 진실 공방이다. 평론가 시절의 이준석 대표는 상대방을 조롱하며 제압하는 뛰어난 화술로 평가받았다. 사사건건 말싸움을 벌여 이겼다. 하지만 이젠 당 대표다. 얼마 남지 않은 대선에서 정권을 바꿔야 하는 큰 숙제가 주어져 있다. ‘흔들리지 않겠다’는 공격수 본능은 길을 잘못 들었다.
‘지금 대선 하면 5%포인트 차이로 진다’는 게 이 대표의 선거 방정식이다. 영남 몰표에 의존한 과거식 지역 대결론 어렵고 2030세대 지지를 끌어내야 한다는 뜻이다. 일리가 있다. 문제는 어떻게 2030의 갈채를 모을 수 있느냐다. 청년 세대를 제대로 이해하고 바르게 리드하도록 정치권 분위기를 바꿔 달라는 게 ‘이준석 돌풍’이었다. 그들의 꿈과 미래가 무엇인지, 왜 좌절했고 어떻게 분노했는지를 조목조목 따져 바로 세워 달라는 요구다. 그렇게 했나.
 반세기 전 파격의 40대 기수론이 먹혀든 건 국민과 함께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청년재난시대'를 연 정권의 무능ㆍ폭주와 싸워야 하고 잘 싸우려면 야권 전체 전열을 정비해야 한다. 적당히 투쟁하고 안락함만 찾는 당의 웰빙 체질과도 싸워야 한다. 그걸 약속했다. 그래 놓곤 ‘그냥 딱합니다’란다. 참으로 딱한 일이다. 30대가 대표인 당에서 이 모양이면 엄청난 빚잔치의 설거지를 도맡아야 할 젊은 유권자의 질식은 도대체 누가 대변할 건가.

최상연 논설위원

최상연 논설위원

'정치 교체' 약속한 30대 당 대표 #두 달 만에 구태 정쟁 허우적대면 #세대교체, 정권교체 어떻게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