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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오영환의 지방시대

“늙어가던 도야마시, 도시철도망 바꾸니 확 살아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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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오영환
오영환 기자 중앙일보 지역전문기자

‘지방소멸’에 맞서는 일본의 압축도시

일본 도야마시 한복판을 달리고 있는 차세대 노면전차(LRT). 도야마시는 노면전차 등 공공교통망을 활성화하고 그 주변으로 도시 기능을 모으는 압축도시를 지향하고 있다. [사진 도야마시]

일본 도야마시 한복판을 달리고 있는 차세대 노면전차(LRT). 도야마시는 노면전차 등 공공교통망을 활성화하고 그 주변으로 도시 기능을 모으는 압축도시를 지향하고 있다. [사진 도야마시]

동해와 면한 일본 혼슈 중북부의 도야마(富山)시. 도야마 현청 소재지로 북알프스라 불리는 3000m급 히다(飛騨)산맥 관광의 출발지와 유리 가공으로 유명하다. 7월 말 현재 인구가 41만여 명인 이곳은 일본 압축도시(Compact City)의 선도 모델이다. 지방 고령화와 인구 감소 속에서 도시 기능 집적(集積)과 네트워크로 활기를 되찾고 있다.

철도→트램 개조하고 순환선 완공 #공공교통망 주변에 주택·상업시설 #도심인구 늘어나고 교외확산 줄어 #일본 581곳, 압축+네트워크 나서 #우리도 지속가능한 도시설계 절실

도야마시의 도전은 2002년 모리 마사시(森雅志·68) 시장 당선과 더불어 시작됐다. 올 4월 물러난 모리는 취임 이후 ‘압축 마을 만들기 연구회’를 발족했다. 당시 압축도시는 일본에서 논의만 무성했을 뿐 가보지 않은 길이다. 새 시도에 나선 배경은 여러 가지다. 무엇보다 도심 공동화다. 시가지 인구 밀도가 2005년 1㏊당 40.3명으로, 47개 광역단체 청사 소재지 가운데 가장 낮았다. 도심 인구(2만4099명)는 10년 새 11.5%, 소매 판매액(1182억엔)은 40% 줄었다. 도심 땅값도 덩달아 떨어졌다. 도시의 도넛 현상이 뚜렷했다.

광역단체 2위인 도야마현의 도로 정비율(73.5%)과 높은 자가 보유(77.6%) 성향, 교외의 싼 땅값이 여기에 한몫했다. 결과는 자동차 의존 사회였다. 자동차 교통 분담률이 72.2%로, 20만명 이상 중핵시 가운데 가장 높았다(1999년). 자연스레 공공 교통망이 쇠퇴했다. 차가 없거나 운전을 못 하는 시민에겐 극히 불편한 도시가 됐다. 더구나 2030년엔 75세 이상 후기고령자 비율이 20%가 넘을 것으로 추계됐다. 마지막은 행정비용 압박이다. 도로·공원·하수도 등 공공시설 유지·관리가 큰 숙제로 등장했다. 인프라의 역습 문제다.

“일본이 유사 이래 처음 인구감소 사회를 맞게 된 데 대해 강한 위기감을 느꼈다. 인구 감소는 피할 수 없어도 완만한 감소 정책을 통해 젊은 세대에 부담이 적은 도시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모리 전 시장은 서면 인터뷰에서 “지속가능한 도시 구축을 위해 철도와 노면 전차 등 공공교통망 연선(沿線)에 상업·업무·문화, 거주 기능을 집약하는 ‘공공교통 중심의 거점 집중형 압축도시’를 2003년 이래 줄곧 추진했다”고 했다.

2018년 8월 모리 마사시(가운데) 당시 도야마 시장이 아베 신조 총리(오른쪽)에게 노면전차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지지통신]

2018년 8월 모리 마사시(가운데) 당시 도야마 시장이 아베 신조 총리(오른쪽)에게 노면전차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지지통신]

압축도시 방안을 부연한다면.
“도야마시는 도심의 도야마역을 중심으로 공공 교통망이 방사형으로 돼 있다. 지방 도시로선 혜택받은 환경이다. 압축도시는 ‘경단 꼬치’ 구조다. 공공교통은 꼬치(꼬챙이)이고, 꼬치에 연결된 (원형) 경단은 역과 버스정류장의 도보권으로 보면 된다. 공공교통을 활성화하고, 그 연선에 거주를 추진하면서 중심 시가지를 활기차게 하는 3개의 축으로 돼 있다.”

공공교통의 핵심 프로젝트는 차세대 노면전차(Light Rail Transit) 네트워크 구축이다. 시내엔 1913년 이래 도야마역과 남쪽 지역 6.4㎞를 잇는 노면전차가 운행돼왔다. 여기에 도야마역과 북쪽 도야마항을 잇는 옛 JR 철도선의 궤도와 역을 전면 개조한 LRT 노선(7.6㎞)을 2006년 개통했다. 재래선 철도의 LRT 개조는 전국 처음이다. LRT는 저상형 차량이라 승하차가 편하다. 2009년엔 도심 순환선(3.4㎞)을 완성했고, 지난해엔 신칸센과 JR 노선으로 분단된 남북 간 노면전차를 연결했다. 도야마 역사(驛舍)를 통한 남북 접속은 도야마 시민의 숙원이었다.

공공교통망 주변 주민 거주는 어떻게 추진했나.
“시가 지정한 도심 지구(436㏊)와 공공교통 연선지구(19곳 3440㏊)로 거주를 유도했다. 연선 지구는 철도·궤도 역 기준 반경 500m 이내, 버스정류장 기준 반경 300m 이내로 잡았다. 거주 유도를 위해 보조금을 지급했다. 양질의 주택을 도심에서 취득하면 50만엔(약 533만원), 연선지구이면 30만엔을 지원했다. 공동주택 건설사업자엔 도심의 경우 1채당 50만엔(상한 2500만엔)을 보조했다. 2005~2020년의 누적 보조액은 약 23억엔이다. 중앙 정부는 이 보조 사업에 국비를 충당하겠다고 했다. 연선지구 거주 주민 비율은 2005년 28%였고, 이를 2025년 42%로 높이는 목표를 잡았다. 지난해 그 비율이 39.7%로 도시의 확산을 억제하고 있다.”
다른 성과는.
“전입 인구가 늘어났다. 도심 지구는 2008년 이래 전입 초과를 유지하고 있다. 공공교통 연선지구도 2012년 전입 초과로 돌아선 뒤 이듬해를 제외하고 전입 초과다. 상업·주택 지역 땅값도 올랐다. 도야마현 전체 땅값 평균은 29년 연속 빠졌지만, 도야마시는 최근 6년 연속 올랐다. 중심 시가지에 대한 집중 투자는 세금의 환류라는 관점에서도 효과적이다. 2012년과 올해 고정자산세·도시계획세액을 비교하면 중심 시가지는 5.4% 늘었다.”
추진 과정에서 어려웠던 점은.
“도시 만들기는 행정만으로는 안된다. 시민과 협동해야 한다. 중요한 하나가 충분한 설명 책임이다. LRT 사업을 시작할 때 시는 약 120회에 걸쳐 시민 설명회를 열었다. 당시 2시간짜리 설명회에 하루 4차례 참석한 적도 있다. 설명과 설득 책임, 그리고 결과 책임을 다하는 것이 행정 수장의 책무라고 생각하고 있다.”
도야마시 콤팩트시티 효과

도야마시 콤팩트시티 효과

도심도 그새 크게 바뀌었다. 전천후 다목적 광장인 그랜드플라자와 유리미술관 등이 문을 열었고, 건강관리 거점도 생겨났다. 공공 투자가 마중물로 작용하면서 민간 투자가 잇따랐다. 압축을 통한 선순환이 이뤄지기 시작한 셈이다.

도야마 모델은 일본에서 압축도시 확산 정책의 한 계기가 됐다. 일본 정부는 2014년부터 압축+네트워크형 도시 정책을 본격화했다. 그 해는 일본 지방 정책의 한 분기점이다. 5월에 마스다 히로야 전 총무상의 지방소멸 보고서가 나오면서 아베 신조 내각이 지방 창생 정책의 닻을 올릴 무렵이다. 아베 내각은 6월 정부 지침 문서인 ‘경제재정운용과 개혁의 기본 방침’과 ‘일본재흥전략’에 압축도시를 넣었다. 국토교통성은 7월 이를 구체화했다. 국토정비계획의 가이드라인인 ‘국토 그랜드디자인 2050’에서 다극(多極) 네트워크형 압축 도시를 제시했다. 그러면서 산간지에 진료소·상점 등을 집약한 ‘작은 거점’ 5000개를 정비하고, 30만 명 이상의 압축도시 60~70곳을 구축하는 목표를 내걸었다.

8월부턴 압축도시 마스터플랜인 입지 적정화(立地適正化) 계획이 시행됐다. 도시구역계획을 가진 기초단체(시·정·촌) 1374곳이 대상이고, 지자체 간 연대도 가능하다. 계획은 복지·의료·상업 시설을 한데 모으는 도시기능 유도구역, 주택 단지 등의 거주 유도구역, 이와 연계하는 공공교통망을 설정한다. 유도 구역 내 시설 이전이나 신축 땐 중앙 정부가 세금·재정 지원을 한다.

도야마시

도야마시

올 4월 현재 압축도시 만들기(입지 적정화)에 나선 대상 도시는 581곳으로, 전체의 42%나 됐다. 이 중 383개 도시는 계획을 만들어 공표했다. 단기간에 압축도시가 일본 국토계획의 대명사가 됐다. 교외 개발을 축으로 한 일본의 전후 도시 정책이 큰 전환점을 맞았다. 1970~80년대 팽창 지향의 열도 개조가 압축+네트워크형으로 바뀌고 있다. 65세 이상 고령화율 28.8%(75세 이상 14.9%)와 지방의 인구 감소가 몰고 온 일대 변화이다. 윤철재 경북대 교수(건축학부)는 “일본은 우리보다 먼저 도시 축소를 염두에 두고 다양한 정책을 시행하면서 입지 적정화 계획을 채택했다”며 “이제 막 시작 단계인 만큼 향후 20~30년간 이 정책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국은 세계에서 고령화 속도가 가장 빠르다. 2049년엔 고령화율이 37.7%로 일본을 추월한다(유엔 인구 전망 기준). 사망자 수가 출생아 수보다 많은 인구 자연 감소도 시작됐다. 지방 소멸 위기는 이미 일본과 한가지다. 하지만 교외 개발은 멈추지 않는다. 철도 등 인프라 건설 계획도 봇물이다. 생활·기간 인프라 유지비는 구르는 눈덩이가 될 게 뻔하다. 미래 세대의 부담은 이래저래 늘어날 판이다.

우리도 압축도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나오지만, 입법 조치를 수반한 제도화는 요원해 보인다. 도시 전체나 권역 차원의 접근이 아닌 사업 단위별 도시 재생에 무게가 쏠려 있다. 현재 417개 지역이 정부와 지자체 재정 분담의 도시재생 뉴딜 사업을 추진 중이다. 사업비는 2018~22년 5년간 50조원이다. 소규모 주택 정비에서 경제거점 창출까지 크고 작은 사업이 진행 중이지만, 지속가능한 도시를 위한 설계도는 없다. 인구동태를 비롯한 환경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도시도 도태하고, 결국은 세금 먹는 하마가 된다. 수도권 집중 해소와 지방 분산, 압축과 초(超)연결 도시로의 국토 대개조가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