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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서경호의 시선

머지? 저거 곧 정리됩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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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서경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서경호 경제·산업디렉터

서경호 경제·산업디렉터

‘쓸수록 중독되는 할인의 맛’. 요즘 시끄러운 머지포인트 홈페이지 첫머리에 나오는 캐치프레이즈다. 2018년 9월 시작한 머지머니는 다수의 선불 모바일 상품권을 짬뽕한 비즈니스 모델이다. 단일 업종에서 발행 가능한 모바일 상품권 여럿을 통합(merge)했다고 해서 머지머니라고 이름을 붙였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머지머니 모바일 상품권을 액면가보다 20% 할인된 값에 산 뒤 앱에 등록해 제휴 매장에서 사용할 수 있었다. 심지어 1만원 상품권을 6000원에 파는 40% 할인 행사까지 있었다.

‘머지런’ 빚은 머지포인트 논란 #감독당국 더 유능할 수는 없었나 #디지털 융합에 규제도 세련돼야

월 1만5000원을 내고 멤버십에 가입하면 상품권을 사지 않아도 20% 할인을 받는 서비스도 있었다. ‘우주 최초 마이너스 없는 구독서비스’를 표방하며 매달 내는 돈만큼 할인을 못 받으면 차액을 머지머니로 되돌려주기까지 했다. 머지포인트 운영사인 머지플러스는 자기네 회원 수는 100만 명이고, 하루 평균 접속자만 20만 명 수준이라고 홍보하기도 했다.

잘 나가던 머지포인트가 갑자기 사달이 난 건, 전자금융법 위반 소지가 있다며 금융감독원이 직접 실태조사에 나섰다는 소식이 지난 5일 언론 보도로 알려지면서다. 전자금융거래법에 따라 2개 업종 이상에서 사용할 수 있는 모바일 상품권 등을 판매하는 업자는 금융위원회에 전자금융업자(전금업자)로 등록해야 한다. 머지포인트는 그동안 이 절차를 밟지 않고 미등록 영업을 해온 셈이다.

눈치 빠른 대형 유통업체에서 발을 빼려는 움직임이 보이자 결국 머지포인트는 11일 음식점업을 제외한 타 업종 서비스를 갑자기 중단했다. 하루 만에 6만여 곳의 상품권 사용처가 사라졌다. 뱅크런(은행 예금인출 사태)을 방불케 할 정도로 환불을 원하는 소비자들이 회사로 몰려드는 ‘머지런(merge run)’이 터졌던 이유다. 2만 명을 넘어선 온라인 피해자 모임에는 수만~수백만원이 물렸다는 하소연이 이어졌다.

업체 대표는 “서비스를 임시 축소해 적법성을 갖추고 전금업 등록절차를 빠르게 진행해 서비스를 재개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전금업 등록이 업체의 희망처럼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현행 전자금융거래법상 고객이 충전했지만 쓰지 않은 돈(미상환 잔액) 대비 자기자본 비율이 20% 이상이어야 한다. 외부자금 수혈 등으로 자본금을 더 늘려야 가능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쿠팡의 적자를 메워준 손정의 같은 ‘천사투자자’가 있으면 좋으련만 그게 쉽지는 않을 것이다.

머지포인트 사태를 보면서 몇 가지 포인트를 정리해봤다. 첫째, 머지포인트 100만 가입자는 어떻게 가능했나. 머지포인트는 맘카페와 뽐뿌 같은 특정 커뮤니티를 집중 공략했다고 한다. 모바일과 디지털 환경에 익숙하고 ‘짠테크’에 민감한 이들을 대상으로 입소문 마케팅을 중점적으로 펼쳤다. 끼리끼리 아는 사람은 잘 알지만 사건이 터지고 나서야 ‘그런 게 있었어?’ 하는 반응이 뒤늦게 나오는 이유다.

2030 젊은 세대가 네이버·카카오 등 빅테크의 선불 충전서비스를 활용하는 데 익숙하다는 점도 한몫했다. 머지포인트가 전금법에 등록된 네이버페이·카카오페이와 비슷하다고 여긴 소비자들이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머지포인트는 미등록 상태로 영업했다. 선불 충전업체가 등록업체인지는 금감원 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다. 등록업체는 정부가 마련한 안전장치인 이용자보호 가이드라인을 염두에 두고 사업을 한다.

둘째, 감독 책임은 없나. 금융을 전공한 한 교수는 “법이 미비한 사각지대에서 발생한 사건”이라고 했다. 감독 책임을 묻기가 쉽지 않다는 거다. 하긴 법령에 의해 마땅히 해야 할 업무라고 적시돼 있는 것도 아닌데 그걸 못했다고 비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유능한 감독 당국이라면 지금보다 문제의 심각성을 먼저 인지하고 검·경에 수사 의뢰를 하는 등의 방법으로 피해 규모를 줄일 수 있었다. 아쉬운 대목이다. 금융감독원은 올들어 보이스피싱을 비롯해 모두 10건의 소비자 경보를 발령했다. 머지포인트 사태도 거기 포함될 수는 없었을까.

셋째, 앞으로 비슷한 사건을 막을 수는 있나. 한국은행과 금융위원회의 이견으로 중단된 전자금융법 개정안을 서둘러 마무리해야 한다. 선불충전금 외부예치 의무화 등이 개정안에 담겼다. 머지포인트 사건은 금융과 유통이 융합된 지점에서 터졌다. 디지털 추세가 강화되면서 산업 간 융합 현상은 점점 뚜렷해지는데 감독과 규제는 부처별 칸막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더 세련되고 효과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저거 곧 정리된다”는 야당 대표의 발언을 둘러싸고 말들이 많았는데, 머지포인트 사태는 곧 정리되기가 힘들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