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서소문 포럼

대선 후보가 '기후 변화'에 무관심한 이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7면

최현철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최현철 정책디렉터

최현철 정책디렉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재임 기간 내내 “지구온난화 주장은 거대한 사기극”이라고 주장했다. 불이 자주 나고, 물은 마르고, 허리케인과 한파가 혹독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인간 활동의 결과로 발생한 탄소 때문이라는 증거가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미국 중서부에 영하 60도 추위가 몰아친 2019년 1월 트위터에 “조금의 지구온난화가 필요하다”고 조롱했다. 그러곤 그해 기후변화 방지를 위한 파리협약에서 탈퇴해버렸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며 불은 불일 뿐, 탄소와 관련 없다"는 트럼프 주장은 아직 기후변화의 영향을 직접 겪지 못한 많은 사람에게 묘한 중독성을 발휘했다.

20년 이내 1.5도 상승 못 피해 #우리도 기후재앙 영향권인데 #후보도 유권자도 무관심일 뿐

 하지만 물불을 가리지 않는 재앙적 기후 현상이 너무도 자주, 과거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크게 발생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트럼프의 주장은 무색해진다. 동토의 땅 시베리아의 온도가 섭씨 38도까지 치솟았고,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산불이 나 한반도 크기의 산림이 잿더미가 됐다. 올여름 이탈리아와 그리스 등 남부 유럽 지역은 45도가 넘는 폭염이 계속됐다. 바짝 마른 대지는 작은 불씨에도 쉽게 타올라 수백 곳에서 산불이 났다. 열흘 넘게 불길이 잡히지 않아 서울 면적의 3분의 2가 타버린 그리스 에비아 섬에서 주민들이 탈출하는 모습은 종말론을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독일에선 지난달 최악의 홍수로 180명이 숨졌다. 지난달 중국 허난성 일부 지역을 홍수가 휩쓸어 300명 넘게 숨졌고, 일본 규슈에는 이번 주에만 한해 강수량의 절반인 1000㎜ 이상의 폭우가 쏟아져 6명이 숨졌다. 하나같이 역대급인데, 언제 어디서 발생할지 예측하기도 어렵다. 안전한 곳은 없다.

일러스트 김회룡

일러스트 김회룡

 며칠 전에는 미국 정부가 라스베이거스 근처 후버댐과 인공호수 미드호가 물 부족 상태라고 공식 발표했다. 22년째 지속해온 고온 현상과, 수원인 콜로라도강 상류 로키산맥에서 빙하 녹은 물이 적어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댐에서 물과 전기를 공급받는 7개 주는 할당량이 줄게 된다. 네바다주는 이미 조경용 잔디 키우기를 금지하는 법안을 만들었다. 마당에 더는 잔디를 심을 수 없게 된 미국 중산층에게 기후변화는 과학적 공상이나 먼 나라 일이 아닌 '자기 일'이 된 것이다.

 지난주 공개된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IPCC)'의 6차 실무그룹 보고서는 이런 상황에 이론적 쐐기를 박았다. 보고서는 트럼프를 의식한 듯 “지구의 온도 상승이 인간 활동의 영향 때문이라는 것은 명백하다”는 문구를 곳곳에 반복해 적었다. 각국 정부가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다양한 시나리오를 짜고 있지만, 가장 적게 배출하는 경우에도 2040년까지 지구 온도는 1.5도 이상 오를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이렇게 되면 산업화 이전 시기엔 50년 만에 나타날 법한 극한 폭염이 10년마다 나타난다고 한다. 이대로 탄소 배출 감축에 실패해 지구 온도가 4도까지 오르면 50도쯤 되는 여름 기온을 거의 해마다 볼 수 있게 된다.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어떤 경우에도 2050년 이전에 최소 한번은 북극 빙하가 모두 녹을 것이라는 섬뜩한 예측이다. 그땐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질지….

 그래도 아직 우리의 체감 온도는 미적지근하다. 잘 만든 재난영화나 재난소설 한 편을 본 것 같은 느낌이랄까. 어쨌든 재앙적 상황은 한반도에 오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치러야 하는 비용이 너무 커 보인다. 우리가 나서지 않아도 어차피 올 것은 오고, 안 올 것은 안 오지 않나 하는 '배짱 심리'도 발동한다. 18일 자정 여당이 IPCC 권고안에 훨씬 못 미치는 탄소 감축량 목표를 담은 탄소중립녹색성장법을 상임위에서 밀어붙인 것도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탄소중립과 그린 뉴딜을 아무리 외쳐도, 본심은 양손에 든 떡을 놓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여야 대선 후보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 진지하게 탄소중립 방안에 대해 이야기하는 후보는 찾아볼 수 없다. 후보 스스로 관심도 없거니와, 당장 득표에도 별반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을 하는 것 같다.

 지난해 사상 최장 기간의 장마와 올해 최단 기간 장마도 분명 기후변화의 영향이다. 다음은 무엇이 찾아올지 모른다. 외국 사례에서 보듯 피해가 상상을 뛰어넘을 수도 있다. 여기에 어떻게 대응할지, 선제적으로 일목요연하게 제시하는 후보자라면 본인과 배우자 과거사를 두고 진흙탕 싸움을 하는 경쟁자보다 돋보일 것이다. 하지만 유권자의 관심이 진흙탕에 가 있으니 어찌할까. 진짜 진흙탕이 빠진 뒤에 후회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