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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니문의 유효 기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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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임종주
임종주 기자 중앙일보
임종주 워싱턴총국장

임종주 워싱턴총국장

2009년 미국 응용심리학회지에 이직 만족도의 유효 기간을 따져본 흥미로운 논문이 등장했다. 132명을 1년간 관찰했더니 만족도가 꾸준히 상승하다 석 달 뒤쯤 정점에 달했다. 기분 좋은 허니문 효과다. 그 후 하강 곡선을 그리다 정체기를 맞는다. 이때부터는 쓰린 속을 부여잡고 만취 상태에서 깨어나던 옛 기억이 어른거리기 시작한다. 숙취 효과로의 전이 현상이다.

논문이 나온 바로 그해 여론조사업체 갤럽은 미국 대통령들의 허니문 유효 기간을 분석해 공개했다. 역대 대통령 평균 지지율 55%를 척도로 재어 본 결과 33대 트루먼부터 37대 닉슨까지는 평균 26개월이었다. 포드부터 조지 W. 부시까지 6명은 7개월로 대폭 줄었다. 비리 문제와 인사 실패, 정책 논란 등이 주된 이유로 꼽혔다.

취임 만 7개월을 맞은 바이든 대통령의 최근 갤럽 지지율은 딱 50%다. 지난 1월 20일 임기 시작 직후의 57%에서 7%P를 까먹었다. 반대로 부정 평가는 37%에서 45%로 껑충 뛰었다. 지난 16일 로이터·입소스 조사에서는 긍정 답변이 46%까지 미끄러졌다. 우호적이던 매체들도 “허니문은 끝났다”며 하나둘 손절매 태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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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반의 아프간 함락은 악재 중 악재다. 20년 전쟁에 종지부를 찍겠다는 바이든 선언 이후 불과 넉 달 만이다. 9·11 테러의 배후 오사마 빈 라덴 제거와 알카에다 축출이라는 당초 목표는 달성했다고 자부했지만, 막판에 쫓기듯 철수하는 모습은 미국의 자존심을 제대로 구겼다. 사이공 함락과 대탈출 작전 ‘프리퀀트 윈드’를 떠올리게 하는 치욕적 베트남전 패퇴의 데자뷔다.

시행 두 달 만에 없던 일로 되돌린 마스크 착용 완화 조치는 바이든 정부의 방역 능력에 의구심을 키웠다. 코로나 감염 확산과 입원 환자 폭증세는 암흑의 터널에 갇혀 있던 지난 겨울 취임 때로 되돌아갔다. 남쪽 국경엔 밀입국자가 갑절 넘게 늘고, 물가는 13년 만에 가장 빠른 속도로 치솟으며 인플레이션 경고음을 울려댄다.

백악관은 “바이든 대통령이 미국 현대 역사상 가장 분열된 순간에 취임했다”는 대응 논리로 맞선다. 진영 논리와 트럼프의 유산에 갇혀 백신 접종 확대와 경제 살리기, 국제적 리더십 회복 노력이 제대로 평가를 못 받고 있다는 항변이다. 지지자들 사이에선 트루먼· 아이젠하워 시절처럼 지지율 70%라는 호사를 누려본 적이 없기 때문에 애당초 허니문 자체가 없었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허니문-숙취 효과’는 단꿈의 소멸 징후를 미리 식별해 대처해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 때를 놓치는 순간 되돌릴 수 없는 더 혹독한 시련기에 접어든다. 바이든 정부가 이미 맞닥뜨린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