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분수대

단군왕검

중앙일보

입력 2021.08.20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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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현예 기자 중앙일보 팀장
김현예 P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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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8월 한국은행 홈페이지에서 전례 없는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광개토대왕은 왜 없냐”부터 “단군왕검이 어떠냐”는 네티즌의 글이 올라왔다. 고액권에 들어갈 인물 선정을 위해 20명의 후보를 추리고 의견 게시판을 열었는데, 정작 네티즌이 많이 추천한 건 후보에도 없던 광개토대왕이었다. 일각에선 ‘조상싸움 시키냐’며 마뜩잖은 시선을 보냈는데, 소동 끝 한국은행이 지난 2009년 첫선을 보인 오만원권의 주인공이 된 인물은 우리가 모두 아는 신사임당이다.

최근 역대급 조상들이 다시 한번 무더기로 소환됐다. 역사 교과서를 펼치면 제일 처음 등장하는 주인공. 단군왕검(檀君王儉)이 대표적이다. 쑥 한 줌과 마늘을 먹고 인간이 된 웅녀가 하늘에서 내려온 환웅과 만나 낳은 그 아들 말이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지난 19일 서울 강남구 일원동에 들어서는 디에이치자이개포 무순위 청약 당첨자가 발표됐다. 무려 12만400대 1의 경쟁을 뚫고 84㎡(전용면적) 1가구에 46세 남성이 당첨됐다. 이를 두고 온라인에서 “전생에 단군왕검이었을 것”이란 우스갯소리가 나왔다. 시세차익만 15억원에 달하다 보니 로또급 비유를 넘어 아예 ‘신화 속 조상’인 단군왕검까지 등장하게 된 셈이다. 총 5가구 선발에 25만명이 몰렸는데, 84㎡ 당첨자가 전생에 단군왕검이라면, 118㎡ 당첨자 4명은 각기 이순신·안중근처럼 전생에 나라를 구한 위인일 것이란 웃픈 얘기다.

이 모든 사달은 바짝 얼어붙은 주택 공급에 치솟은 집값 때문인데도, 정부는 요지부동이다. 무소속 송언석 의원실에 따르면 이번 정부 출범 후(2017년 5월~2021년 5월) 전국 주택건설 인허가 실적은 215만5141가구로 1993년 이후 최저점을 찍었다. 앞선 박근혜 정부 때보다도 14%나 적다.

반면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고점 경고’에도 집값은 고공상승 중이다. 한국부동산원 7월 주택가격 동향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값은 0.81% 올랐다. 수도권은 더 하다. 2008년 6월(1.8%) 이후 가장 높은 1.17%의 상승률을 보였다. 뿐만인가.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는 최근 사상 처음으로 11억원을 넘어섰다. 이러니 언감생심 로또 청약을 하려면 조상님 적덕(積德)은 없는지, 전생 추적부터 해야 할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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