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공권력 무시 민주노총에 끌려다니는 한심한 경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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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조광현 종로경찰서 수사과장 등이 18일 오후 서울 중구 민주노총 앞에서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의 구속영장을 집행하려고 출동했다가 양 위원장 측의 반발로 포기하고 되돌아가고 있다. 뉴시스

조광현 종로경찰서 수사과장 등이 18일 오후 서울 중구 민주노총 앞에서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의 구속영장을 집행하려고 출동했다가 양 위원장 측의 반발로 포기하고 되돌아가고 있다. 뉴시스

경찰이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집행하러 서울 중구 정동의 민주노총 사무실 앞까지 출동했다가 영장 제시 20분여 만에 빈손으로 철수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지난 18일 벌어졌다. 법원이 구속영장을 발부한 지 닷새나 지난 상황에서 검거의 호기를 잡았음에도 경찰이 소극적으로 대처해 눈앞에서 피의자를 놓친 것이나 다름없다. 특히 민생 치안을 책임지는 공권력이 현 정부 출범에 지분이 있다고 주장해 온 민주노총 지도부 앞에서 무기력하게 물러서는 장면은 애초부터 검거할 의지는 있었는지 의구심을 자아낸다. 그 자체가 고착화된 공권력과 노조 간 힘의 불균형을 상징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

사태의 일차적 책임은 양 위원장에게 있다. 그는 지난달 3일 코로나 방역 수칙을 위반, 노조원 8000여 명을 동원해 서울 도심에서 불법 시위를 벌였다. 집회 하루 전날 김부겸 국무총리가 민주노총을 찾아가 “이번 한 번만 도와 달라”고 읍소했으나 문전박대당했다. 상전도 이런 상전이 없다. 이후 양 위원장은 경찰의 소환 요구에 세 번이나 불응하며 대놓고 공권력을 무시했다. 구속영장이 청구되자 법원의 영장실질심사를 거부했다. 경찰이 구속영장 집행을 위해 출동했을 당시 양 위원장은 기자간담회를 진행 중이었다. 이 자리에서 그는 “법 위반을 모두 인정했는데 무조건 구속 수사는 부당하다” “노동자의 문제를 정부가 해결할 의지가 있다면 법에 따라 신변 문제를 판단할 의사가 있다”고 말했다. 구속 여부를 스스로 판단하고 사법 절차를 정부와의 협상 조건으로 내세운 오만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상황이 이런데도 경찰이 영장 집행을 미루고 있는 것은 큰 문제다. 먼저 경찰은 양 위원장이 영장실질심사에 불출석하겠다고 선언했을 때 신병 확보에 나섰어야 하나 법원에서 구인영장을 발부받고도 집행하지 않았다. 또 18일 민주노총 건물 앞에선 양 위원장의 변호인이 “피의자가 타인 소유 건물에 있을 때는 수색영장을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하자 경찰이 “수색영장은 없다. 오늘 구속영장 집행에 협조할 의사가 없는 것 같다”며 순순히 물러선 것도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 양 위원장 잠적 즉시 소재 추적을 위한 통신영장과 수색영장을 발부받았어야 함에도 손 놓고 있다가 헛발질을 하고 말았다. 결국 피의자가 공개석상에 등장하며 법치를 농락하는데도 경찰은 ‘보여주기식 쇼’만 한 셈이 됐다. 노조 단체가 법을 무시하고 경찰이 법 집행을 주저하는 나라는 정상이 아니다. 이런 경찰에 검찰이 갖고 있던 1차 수사종결권을 주고 국가정보원의 대공수사권마저 2024년에 이관하는 게 올바른 개혁인지, 심히 우려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