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달보다 승자 손 들어준 모습 기억되길”

중앙일보

입력 2021.08.20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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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2016 리우올림픽에서 자신을 이긴 상대 손을 들어준 이대훈. 그는 당시 사진을 보며 “승자의 손을 들어준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고 했다. 김성태 기자

2016 리우올림픽에서 자신을 이긴 상대 손을 들어준 이대훈. 그는 당시 사진을 보며 “승자의 손을 들어준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고 했다. 김성태 기자

“마지막은 찬란한 금빛일 줄 알았는데, 제가 상상했던 것과는 다른 느낌이네요.” ‘태권도의 왕’ 이대훈(29·대전시청)은 담담했다. 그는 도쿄올림픽을 마치고 귀국한 지 일주일 만에 대전 소속팀 훈련장으로 복귀했다. 올림픽을 끝으로 은퇴를 발표했기에 도복 띠를 조여 매고 땀 흘릴 일이 더는 없다. 이젠 지도자를 준비할 생각이다.

태권도 전설 이대훈 은퇴 인터뷰
올림픽 금 없어도 아름다운 퇴장
새가슴? “큰 경기 화끈하게 하려다”
최선 다한 패배 인정하는 문화 남겨

지난 11일 만난 이대훈은 “은퇴 시기를 갑작스럽게 결정한 건 아니다. 올림픽 출전을 확정한 2019년 12월 마음을 굳혔다. 수많은 경기를 치르면서 결과를 아쉬워한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더는 만회할 기회가 없다고 생각하니 처음으로 아주 아쉽다”고 했다.

이대훈은 한국 태권도의 ‘살아있는 전설’이다. 고교 3학년 때인 2010년부터 올해까지, 12년간 태극마크를 달고 세계 정상을 지켰다. 정글 같은 한국 남자 태권도에서 이대훈처럼 오랜 기간 뛰어난 기량을 유지한 선수는 찾기 어렵다. 그는 이 기간 아시안게임에서 사상 첫 3연패를 달성했고, 세계선수권 우승도 세 차례 했다.

그런 그가 이루지 못한 꿈이 하나 있다. 올림픽 금메달이다. 그는 앞서 두 차례 올림픽에서 우승 문턱을 넘지 못했다. 스무 살에 처음 출전한 2012년 런던 대회에서 은메달, 2016년 리우 대회에서 동메달을 각각 목에 걸었다. 도쿄올림픽에서 마지막 불꽃을 태웠지만, 시상대에 오르지 못한 채 끝이 났다. 이대훈은 “코로나19 여파로 1년 7개월 동안 국제 대회에 출전하지 못하다 올림픽에 나갔다. 경기 감각이 떨어졌다. 기량을 더 보여주지 못해 화가 났지만,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 답답했다”고 했다.

일부 팬은 올림픽에 유독 약한 그를 두고 ‘새가슴’이라고 비꼬았다. 이대훈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첫 올림픽이었던 런던 대회가 끝나고 ‘재미없는 경기를 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어린 마음에 많이 놀랐다. 한국 태권도를 대표하는 선수로서 ‘재미없다’는 말을 듣는 게 죽기보다 싫었다. 그때부터 ‘다른 대회는 몰라도 많은 분이 보는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에선 반드시 박진감 넘치고 재밌는 태권도로 이기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토로했다.

그는 이어 “아시안게임에선 원하는 플레이를 하고도 우승할 수 있었다. 올림픽은 수준이 더 높다. 이번 올림픽에서도 ‘발 펜싱(다리를 들고 수비만 하는 모습을 비꼬는 표현)’만 했다면 성적을 낼 수 있었지만, 무의식 중에 ‘화끈하게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다 역전을 허용했다. 금메달을 따지 못했으니 큰 무대에 약한 것은 인정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그런 상황이 다시 와도 난 ‘재밌는 태권도’를 할 것”이라며 웃었다.

한국 태권도의 자존심을 짊어진 이대훈에겐 말 못 할 고민도 있었다. 그는 “국제무대에서 계속 좋은 성적은 거뒀지만, 해가 지날수록 몸이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훈련을 열심히 해도 회복이 더뎠고, 기술적으로 잘 풀리지 않았다. 올림픽이 1년 미뤄지면서 조급했지만, 그래도 출전은 해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금메달을 못 딸 것 같다’는 속마음을 언론 인터뷰에서 밝힐 순 없었다”고 털어놨다.

이대훈의 올림픽 도전이 무의미했던 건 아니다. 그는 올림픽 무대에서 금메달보다 더 값진 유산을 남겼다. 리우올림픽 당시 우승 후보였던 이대훈은 남자 68㎏급 8강전에서 요르단의 아흐마드 아부가우시에게 8-11로 충격적인 패배를 당했다. 하지만 아쉬워하거나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경기가 끝나자마자 축하의 박수를 보내더니 승자의 손을 번쩍 들어 주며 축하했다. 최선을 다하고 경기를 진심으로 즐긴 자의 품격이 돋보인 순간이었다. 이대훈이 패자전을 거쳐 동메달을 따자 팬들은 “금메달보다 자랑스러운 동메달”이라며 박수를 보냈다. 이대훈은 그렇게 ‘금메달이 아니면 안 됐던’ 한국의 올림픽 문화와 인식을 바꿨다.

그로부터 5년 뒤 도쿄올림픽에선 제2의 이대훈이 여럿 나왔다. 매 경기 최선을 다한 젊은 선수들은 금메달이 없어도 웃었다. 유도 남자 100㎏급 우승 후보였던 조구함은 결승에서 패하고도 우승자 에런 울프(일본)의 손을 들어주며 축하했다. 리우 대회의 이대훈이 재조명됐다. 조구함은 “그때 이대훈 선수를 보고 ‘진정한 무도가’라고 생각했다. 땀 흘려 얻은 내 은메달은 금메달만큼 소중하다”고 했다. 이대훈은 “멋진 후배들이다. 덕분에 리우 당시 내 모습도 다시 보게 됐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도 욕심나지만, 올림픽에서 ‘승자의 손을 들어준 선수’로 기억되는 게 더 영광스럽다”며 활짝 웃었다.

이대훈이 걸어온 길
9세 ‘태권도 천재’로 불리며 선수 생활 시작

18세 첫 국가대표 발탁
첫 아시안게임 금 (2010 광저우)

20세 첫 올림픽 메달(2012 런던 은)

22세 아시안게임 2연패(2014 인천)

24세 두 번째 올림픽 메달(2016 리우 동)

26세 아시안게임 3연패(2018 자카르타-팔렘방)

29세 세 번째 올림픽(2020 도쿄) 후 은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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