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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재갈법 공조, 당정청 ‘침묵의 카르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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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더불어민주당은 19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언론 말살, 언론 장악”이라는 야당의 반발을 뚫고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단독 의결했다.

여당, 언론중재법 문체위 처리 강행 #민주당 유력 대선주자도 반대 안해 #“문 대통령·청와대 침묵은 OK 사인” #야당 “언론의 자유 파괴하는 공범” #주무 부처 문체부는 방관자 자세 #기자 출신 의원은 “의견없다” 뒷짐 #친문 강경파 ‘강행처리’ 판 깔아줘 #야당 “여당보다 비겁한 건 대통령”

국민의힘은 “회의할 때마다 조항이 바뀌었다. 최하 품질의 악법”(이달곤 의원)이라고 반발했지만 가결을 막지 못했다.

김기현 원내대표를 비롯한 국민의힘 의원 40여 명의 집단 저항 속에 강행된 이날 표결 현장은 아수라장을 방불케 했다. 민주당 소속 도종환 문체위원장은 회의 개의 2시간 만인 오후 1시48분 “논의가 공전되고 있다. 표결 요청이 있다”며 의결 절차에 돌입했다.

국내외서 언론중재법 개정안 반대 성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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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국민의힘 의원들이 위원장석에 몰려가 “여기가 북한이냐 평양이냐”(김도읍), “언론 말살이다”(최형두)고 소리쳤지만 도 위원장은 밀어붙였다. 도 위원장이 “찬성 의원은 기립해 달라”고 외치자 김의겸 열린민주당 의원이 가장 먼저 일어나 손을 들어 찬성 의사를 밝혔고, 민주당 의원들도 일제히 오른손을 들었다. 도 위원장은 “재석 16인 중 찬성 9명으로 가결됐음을 선포한다”며 의사봉을 두드렸다.

이날 오후 한국신문협회·관훈클럽·대한언론인회·한국기자협회·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한국여기자협회·한국인터넷신문협회 등 국내 언론 7개 단체는 공동성명을 내고 “언론에 재갈 물린 위헌적 입법 폭거를 규탄한다”며 “반민주적 악법으로 전락한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지금이라도 폐기할 것을 국회에 요구한다”고 했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일사천리로 상임위 관문을 통과한 데엔 민주당 윤호중(원내대표)·김용민(미디어혁신특위 위원장)·박정(문체위 여당 간사)·김승원(미디어혁신특위 부위원장) 의원과 열린민주당 김의겸 의원 등 ‘언론재갈법 5인방’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하지만 당·정·청 내부의 동조자들이 침묵의 카르텔로 프리 패스의 길을 열어줬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민의힘은 “언론 자유 파괴의 공범”이라고 비판했다.

청와대의 침묵이 대표적이다. 대선 후보 시절인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은 언론들의 ‘최순실 게이트’ 보도에 “언론의 침묵은 국민의 신음”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번 논란에 청와대는 침묵에 침묵만 거듭했다. 해당 법안이 문체위를 통과한 19일에도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국회에서 논의하고 의결하는 사안”이라고만 말했다.

청와대 “우리와 무관한 일” 황희 “의결해주셔서 감사”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이번 건은 민주당이 처음부터 전체를 주도했다”면서 “None of my business(우리와 무관한 일)”란 표현까지 썼다. 하지만 문 대통령과 청와대의 이런 태도에 대해선 “강성 친문이나 당내 주도 세력에 사실상의 ‘OK’ 사인을 주는 무책임한 행동”이란 비판이 나온다. 야권에선 “여당보다 더 비겁한 것은 침묵하는 문 대통령”(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이란 반응이 나왔다. 이날 표결 직후 김승수 국민의힘 의원은 “국경없는기자회 홈페이지에는 언론 자유를 제약하는 나라 수반들의 얼굴이 올라와 있다. 문재인 대통령 얼굴이 곧 올라오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민주당 강행한 언론중재법... 막판에 뭐 고쳤나.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민주당 강행한 언론중재법... 막판에 뭐 고쳤나.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언론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 역시 방관자적 태도였다. 법안 통과 후 황희 문체부 장관은 “의결해 주신 데 대해 깊은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문체위 소위가 열렸을 때만 해도 문체부 입장은 달랐다. 당시 오영우 1차관은 여러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해 “언론 자유 침해 우려가 있다”고 했다. 그러다 강경파들이 페달을 밟기 시작한 뒤 태도가 달라졌다. 지난달 27일 소위에서 야당 의원이 “민주주의 국가에서 언론의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규정한 입법례가 있느냐”고 묻자 오 차관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만 했다. 지난해와 같은 소신 발언은 없었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징벌적 언론중재법의 생산 기지이자 컨트롤타워는 지난달 5월 출범한 민주당 미디어혁신특위인데, 특위를 출범시키고 김용민 최고위원을 위원장에 앉힌 이가 송 대표다. 송 대표는 각계에서 이 법안에 비판이 쏟아지는 상황에서도 “언론 환경 개선은 필요하다”는 식의 원론적인 답변으로 피해다녔다. 소위에서 법안이 강행 처리된 뒤인 지난 10일에도 “문체위에서 야당 의견을 수렴해 조정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만 했다.

기자 출신 민주당 의원들 역시 침묵으로 일관했다. 민주당 대선주자들 중엔 동아일보에서 21년간 기자 생활을 한 이낙연 전 대표가 있다. 그는 ‘기자 출신으로서 언론중재법 통과를 어떻게 보느냐’는 물음에 “언론이 산업으로서 지속 가능성을 가져야 하는 동시에 신뢰를 회복해 국민의 사랑을 받길 원한다”며 애매한 태도를 견지했다. 다른 이들도 모두 “의견이 없다”는 말만 했다. 방송사 기자 출신의 한 의원은 ‘진보 언론계에서도 비판이 많은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의견이 없다”고 답했다. 또 다른 방송사 출신 의원도 “말씀드리기 곤란하다”고 말했다. 이달곤 국민의힘 의원은 “기자 생활을 한 사람이 법안에 동의한다면 우물에 침 뱉고 가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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