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8일 제주 녹지병원 녹지국제병원. 최충일 기자
“허가 지연…3개월 내 개원 힘들었을 것”
제주도가 녹지국제병원 개설 허가를 취소한 것은 부당하다는 항소심 판결이 나오면서 재판부 판단 근거에 관심이 쏠린다. 항소심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녹지병원 측이 기한 내 개원을 하지 못한 정당한 사유가 있었던 만큼 허가 취소는 부당하다”고 봤다.
광주고법 제주제1행정부(부장 왕정옥)는 지난 18일 중국 루디그룹 산하 녹지제주헬스케어타운 유한회사가 제기한 ‘외국의료기관 개설허가 취소 처분 취소’ 소송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제주도 녹지병원 개설 허가 취소 처분이 부당하다”고 판결했다. 녹지 측이 예상치 못한 조건부 허가와 허가 지연으로 인해 개원을 준비하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했던 만큼 허가 후 3개월 이내에 병원을 개원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취지의 판단이다.
“15개월 지나서야 ‘외국인 한정’ 예상 어려워”
재판부는 “보건복지부 장관 승인을 받은 사업계획서 등을 보면 녹지병원이 진료 대상자를 제한하지 않는 것을 전제로 설립이 추진됐던 것으로 보임에도 (제주도가) 외국인으로 한정하는 조건을 달아 허가했다”며 “녹지병원 측이 의료기관 개설을 위한 물적, 인적 준비를 마치고 15개월이 지난 2018년 12월에야 외국인 한정 조건부로 허가가 이뤄질 것이라고 예상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녹지병원 측이 3개월 이내 개원해 업무를 시작하지 못한 것은 제주도의 허가 지연에 따른 것이어서 정당한 사유가 있다는 판결이다.
재판부는 또 “허가 지연 과정에서 채용 인력 과반이 이탈하고, 조건부 허가가 이뤄져 사업 계획 변경이 불가피한 상황이었음에도 제주도는 계획을 다시 수립할 기회를 부여하지 않았다”며 기한 내 개원 못 할 사유가 있었음에도 허가를 취소한 것은 위법하다고 판결했다.
제주도는 2018년 12월 5일 녹지병원 영업 허가를 내주면서 ‘외국인만 대상으로 영업한다’는 조건을 제시했다. 녹지병원 측은 이에 반발해 2019년 4월 17일까지 병원 문을 열지 않았다. 제주도는 이를 근거로 개설허가 취소 처분을 내렸다. 의료법 64조에 따르면 허가 후 3개월 이내에 병원을 열어야 한다.
이에 루디(綠地)그룹은 녹지병원 개설허가 취소 처분이 부당하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1심 재판부는 지난해 10월 20일 “녹지병원 측이 개설허가를 받고도 3개월 이내에 정당한 사유 없이 업무를 개시하지 않았다”며 제주도 손을 들어줬다.
당시 재판부는 또 내국인 진료를 제한하는 것은 위법이라며 루디그룹 측이 별도로 소송을 제기한 ‘외국의료기관 개설 허가 조건 취소 청구 소송’에 대해서는 개설 허가 취소 소송 최종 판단을 보고 결정하겠다며 선고를 연기했다.
제주도 “상고”…의료영리화저지본부 “유감”

지난 8일 찾은 제주도 서귀포시 토평동 녹지국제병원 전경. 최충일 기자
일각에서는 “대법원에서도 녹지 측이 최종 승소할 경우 제주도가 그동안 발생한 손해를 루디그룹 측에 배상해야 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루디그룹 측이 병원 개설 지연에 따른 피해액 회수를 위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있어서다.
제주도 관계자는 “이번 판결문을 검토해 향후 대응 방안을 마련할 방침”이라며 “행정 처분에 따른 항소심 판단을 분석해 조만간 상고할 것”이라고 했다.
의료영리화저지와 의료공공성 강화를 위한 제주도민 운동본부는 이날 성명을 내고 “코로나19라는 국가 재난 상황에 민심과 어긋난 법원의 판결에 강력하게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루디그룹은 2017년 8월 778억원을 투자해 제주헬스케어타운 부지 내 지상 3층·지하 1층 건축 연면적(1만8223㎡)에 47개 병상과 4개 진료과목을 갖춘 병원 건물을 지었다.
녹지병원은 국내 최초로 시도된 투자개방형 병원이다. 영리병원으로도 불리는 투자개방형 병원은 기업 등 투자자 자본으로 운용해 수익이 발생하면 이를 투자자에게 돌려주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의료서비스의 품질을 높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건강보험 체제를 무너뜨릴 수 있고 의료비 폭등을 유발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