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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패주’ 조롱했던 중국, “탈레반 못 믿는다” 경계론 분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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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중국 베이징 싼리툰 외교단지에 자리한 아프가니스탄 주중 대사관에 아프간 국기가 걸려있다. 중국 무장경찰이 삼엄하게 경계를 서고 있었지만 내부는 아무런 인기척 없이 한산했다. 신경진 기자

18일 중국 베이징 싼리툰 외교단지에 자리한 아프가니스탄 주중 대사관에 아프간 국기가 걸려있다. 중국 무장경찰이 삼엄하게 경계를 서고 있었지만 내부는 아무런 인기척 없이 한산했다. 신경진 기자

“탈레반은 왜 강한가요?”
“강하지 않습니다. 주적(아프간 정부군·경찰·군벌·민병)이 봐줬을 뿐입니다.”

주융뱌오 교수 “탈레반 변하지 않아” #中 외교부 “탈레반, 테러와 단절해야” #네티즌 “탈레반 축복 아니다”에 ‘좋아요’

“탈레반이 돌아오면, 아프가니스탄 국민 대다수에 축복인가요? 재앙인가요?”
“축복은 아닐 겁니다. 대부분 겁을 먹고 걱정합니다. 탈레반이 말한 대로 온건하게 변할지 여부를 지켜봐야 합니다. 어느 정도 온건해질지, 얼마나 오래갈 수 있을지를.”

중국의 인터넷 매체 펑파이(澎湃)가 17일 긴급 개설한 아프간 질의응답 코너에 이틀간 올라온 100여건의 중국 네티즌과 주융뱌오(朱永彪) 란저우(蘭州)대학 아프간연구센터 주임의 대화 중 가장 많은 ‘좋아요’를 받은 대화다. 중국 정부의 중앙아시아 정책을 자문하는 아프간 전문가 주 교수는 탈레반을 보는 중국의 불신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주 교수는 중국이 탈레반과 외교관계 수립에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그는 “아마 수교하지 않을 것”이라며 “(탈레반) 공식 승인과 수교는 진지한 과정으로 일정한 절차가 필요하다. 단기간 할 수 없다. 게다가 아프간 국내는 한동안 혼란이 이어질 것”이라며 내전 지속을 예상했다. 실제 18일 외교부 브리핑에서 자오리젠(趙立堅) 대변인은 탈레반 승인 여부에 대해 “국제 관례는 하나의 정부를 승인하려면 우선 그 정부 수립을 기다린다”며 “중국은 아프간이 개방적·포용적이며 광범한 대표성을 가진 정부를 세우길 기대한다. 이는 아프간 국민과 국제사회의 보편적 기대”라고 답했다. 정식 정부 수립까지 시간이 필요하다는 유보론이다.

탈레반의 재등장이 중국 안보에 끼칠 유·무형의 부정적 영향도 인정했다. 주 교수는 “극단주의 테러세력이 중국 국경에 충격을 가할 가능성은 비록 매우 적지만, 간접적으로 중앙아시아·파키스탄 등에 충격을 가해 중국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며 “이념적으로 ‘3대 세력(폭력 테러 세력·민족 분열 세력·종교 극단 세력)’에 끼칠 자극 효과를 장기간 경계해야만 한다”고 경고했다.

중국 정부의 대응책에 대해 주 교수는 “중국은 탈레반의 약속을 믿지 않을 것”이라며 “국경을 단단히 지키고 동시에 탈레반의 약속 이행 여부를 살펴야지, 남에게 희망을 품어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다. 중국은 지난달 28일 톈진(天津)에서 왕이(王毅)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탈레반 2인자 물라 압둘 가니 바라다르를 만나 신장(新疆) 독립 세력인 ‘동투르키스탄 이슬람 운동(ETIM)’과 관계를 끊겠다는 다짐을 받은 바 있다.

탈레반의 변화 가능성 역시 회의감을 표했다. 그는 “탈레반이 지금까지는 적어도 ‘보다 부드럽게’ 포장했지만, 구체적으로는 진정 변했는지, 단지 책략에 불과한지 장담하기 쉽지 않다”며 “탈레반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또, 주 교수는 아프간은 ‘제국의 무덤’이 아니라고 평가했다. 그는 개인적 입장을 전제로 “‘제국의 무덤’ 호칭은 유인하려는 미끼에 불과하다”며 “영국·구소련·미국은 사실상 아프간의 전략적 가치를 과장했다. 외세 침략이 없어도 아프간은 늘 내란에 빠졌고, 역사적으로 아프간의 근대화 개혁은 모두 보수 세력의 방해로 실패했다”고 중국은 아프간 함정에 빠져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당초 카불 함락 직후엔 ‘미국의 패주’라며 조롱하는 기류가 중국 SNS와 관영 매체를 채웠지만 이젠 그 이면에 숨어 있던 ‘탈레반 경계론’이 공개적으로 분출하고 있다.

7월28일 웬디 셔먼 미 국무부 부장관 회담 이틀 뒤, 왕이 외교부장은 톈진(天津) 같은 장소에서 탈레반 정치위원이자 2인자 물라 압둘 가니 바라다르와 회담을 가졌다. 중국 외교부는 탈레반과 회담은 왕이 부장이 두 다리를 가지런하게 한 사진을, 미국과 회담은 다리를 꼬고 앉은 사진을 웹사이트에 게재했다. [중국 외교부 웹사이트]

7월28일 웬디 셔먼 미 국무부 부장관 회담 이틀 뒤, 왕이 외교부장은 톈진(天津) 같은 장소에서 탈레반 정치위원이자 2인자 물라 압둘 가니 바라다르와 회담을 가졌다. 중국 외교부는 탈레반과 회담은 왕이 부장이 두 다리를 가지런하게 한 사진을, 미국과 회담은 다리를 꼬고 앉은 사진을 웹사이트에 게재했다. [중국 외교부 웹사이트]

중국 당국 역시 발빠르게 아프간 사태에 인권은 불문에 부친 채, 국익 수호에만 주력하겠다는 원칙을 러시아와 함께 천명했다. 지난 16일 왕이 외교부장은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과 통화를 갖고 첫째 아프간 내 중·러의 정당한 이익을 수호하고, 둘째 탈레반이 온건한 종교정책을 취하도록 장려할 것이며, 셋째 새로 들어설 아프간 정부가 동투르키스탄 이슬람 운동(ETIM)을 포함해 각종 국제 테러 세력과 결별하도록 협력하는 데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러시아와 함께 아프간 내 중국과 러시아 국익 보장, 테러 근절을 전제로 지원하겠다는 조건부 압박 전략이다.

중국은 유엔 안보리 채널도 활용했다. 겅솽(耿爽) 유엔 주재 중국 부대표는 지난 16일(현지시간) 소집된 안보리 아프간 긴급회의에서 “탈레반은 모든 테러조직과의 관계를 완전히 단절해야 한다”며 “각국은 국제법과 안보리 결의에 따라 모든 테러와의 전쟁에 협력하며 이슬람국가(IS)·알카에다·ETIM 등 테러조직이 아프간 혼란을 이용하지 못하도록 단호하게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ETIM은 최대 3500여 명으로 추산되는 신장 독립 추진 조직이다. 일부는 아프간에 기반을 두고 있다. 유엔과 미국은 9·11 이듬해인 2002년 ETIM을 테러조직으로 지정했지만, 워싱턴은 지난해 ETIM을 테러리스트 명단에서 삭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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