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폭염 속 오물 쓴채 갇히거나 죽은 개 80마리…견주 “동물학대 없었다” [영상]

중앙일보

입력 2021.08.19 05:00

18일 오후 경북 구미시 인의동 변두리. 밭 사이로 난 길을 굽이굽이 들어가자 저 멀리 검은 가림막을 씌운 가건물이 눈에 띄었다. 꽤 먼 거리에서도 악취가 풍겨오고 가까이 다가서자 개 여러 마리가 한꺼번에 짖는 소리가 요란했다.

18일 경북 구미시 인의동 개 사육장 한 구석에서 새끼를 낳은 개가 젖을 먹이고 있다. 김정석 기자

18일 경북 구미시 인의동 개 사육장 한 구석에서 새끼를 낳은 개가 젖을 먹이고 있다. 김정석 기자

가건물을 한 바퀴 돌아 입구 쪽으로 접근하니 녹슨 케이지에 갇힌 개들 수십 마리가 큰 소리로 짖고 있었다. 바닥에 닿지 않아 일명 ‘뜬장’이라고 불리는 철장 케이지 아래에는 개들이 배설한 분변이 진흙과 뒤섞여 진창을 이루고 개들의 몸에도 오물이 튀어 털에 엉겨 붙은 상태였다. 무더운 날씨에 비까지 내려 한눈에 봐도 극도로 비위생적인 모습이었다. 이런 가운데 한 구석에는 갓 새끼를 낳아 젖을 먹이고 있는 개도 보였다.

이곳에서 개들에게 먹이를 나눠주고 있던 한 자원봉사자는 “이 상태가 그나마 정리가 된 것”이라고 전했다. 동물보호단체 ‘위액트’가 지난 12일 이곳을 찾았을 때는 1~2마리씩 뜬장에 갇힌 80여 마리의 개들이 방치돼 있었다고 한다. 이 봉사자는 “먹이를 오랫동안 먹지 못했는지 물을 줬더니 5분간 쉬지 않고 물을 마셨고 물을 놓고 개들끼리 싸웠다”고 했다.

18일 경북 구미시 인의동 개 사육장 모습. 불법 가건물 아래 분변이 섞인 흙탕물을 이루고 있는 가운데 개들이 뜬장 안에 갇혀 있다. 김정석 기자

18일 경북 구미시 인의동 개 사육장 모습. 불법 가건물 아래 분변이 섞인 흙탕물을 이루고 있는 가운데 개들이 뜬장 안에 갇혀 있다. 김정석 기자

현장을 처음 찾았을 때 개들은 좁은 공간에 오래 갇혀 이상 행동을 보이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위액트 측은 “35도를 웃도는 날씨에 물그릇은 바싹 말라 있었고, 언제 줬는지 모르는 사료 몇 알과 말라비틀어진 음식물 쓰레기 자국이 보였다”고 했다. 사육장 한 쪽에서는 개 사체도 발견됐다.

음식물 마른 먹이통…한쪽선 개 사체도

동물보호단체가 개 사육장으로 보이는 공간을 발견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동물 학대 논란이 일자 구미시는 조사에 나섰고, 견주는 개에 대한 소유권을 포기했다. 구미시에 따르면, 견주는 인근에 살고 있는 60대 여성으로 약 10년 전부터 이곳에 유기견들을 조금씩 데려왔다.

이 견주는 자신이 운영하다 폐업한 가게 안에도 개 여러 마리를 방치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인근 주민들이 민원을 넣고 동물보호단체에 이를 제보하면서 방치 사실이 드러났다.

지난 12일 동물보호단체 위액트가 경북 구미시 인의동 한 개 사육장을 찾아왔을 당시 모습. 같은 품종의 개 한 쌍씩 한 케이지에 갇혀 있다. 사진 위액트

지난 12일 동물보호단체 위액트가 경북 구미시 인의동 한 개 사육장을 찾아왔을 당시 모습. 같은 품종의 개 한 쌍씩 한 케이지에 갇혀 있다. 사진 위액트

경북 구미시 인의동에서 발견된 개 사육장에서 철장에 갇힌 개가 경계하는 눈빛으로 카메라를 쳐다보고 있다. 김정석 기자

경북 구미시 인의동에서 발견된 개 사육장에서 철장에 갇힌 개가 경계하는 눈빛으로 카메라를 쳐다보고 있다. 김정석 기자

견주가 소유권을 포기했지만 구미시가 당장 개들을 모두 구조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시가 운영하고 있는 유기동물 보호소가 포화 상태여서다.

구미시 축산과 관계자는 “구미시가 반려동물문화공원을 조성해 유기동물 보호센터를 직접 운영할 예정으로 사업 공모를 진행 중이긴 하지만 현재는 수의사협회를 통해 유기동물 보호소를 위탁 운영 중”이라며 “동물보호단체와 협의해 최대한 이곳에 있는 개들을 입양시키고 남은 개들은 여건이 되는 대로 옮길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어디까지가 동물 학대인가…보는 관점 따라 입장차

동물 학대 논란에 대해 구미시는 “견주가 불법 가건물에 유기견을 데리고 와 키우긴 했지만 동물 학대로는 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개 농장이 아닌 사설 임시 보호소로 운영됐다면서다. 견주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유기견 보호소에 가면 안락사 시킬 것 같아 버려진 개들을 돌본 것”이라고 말했다.

18일 경북 구미시 인의동 변두리에 조성된 개 사육장 모습. 불법 가건물로 만들어졌다. 푸른 천막은 최근 동물보호단체가 이곳을 발견한 뒤 설치됐다. 김정석 기자

18일 경북 구미시 인의동 변두리에 조성된 개 사육장 모습. 불법 가건물로 만들어졌다. 푸른 천막은 최근 동물보호단체가 이곳을 발견한 뒤 설치됐다. 김정석 기자

반면 동물단체 측은 이곳에서 개 농장을 운영한 흔적이 곳곳에서 보이고, 실제 임시 보호소로 운영됐다 하더라도 개들의 건강을 보살피지 않은 채 비위생적인 공간에 방치한 것 역시 동물 학대에 해당한다고 반박했다. 이른바 ‘애니멀 호딩(animal hoarding·자신의 사육 능력을 고려하지 않고 무책임하게 많은 동물을 키우는 것)’이다.

갈 곳 못 찾은 개들은 안락사 가능성

김보련(25) 봉사자는 “현장에 처음 도착했을 때 같은 품종의 암컷과 수컷이 케이지별로 들어가 있었다”며 “반면 잡종견들은 규칙 없이 섞여 케이지에 들어 있었는데 이는 번식을 시키려 한 정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발견된 개들 중 상당수가 병에 걸려 있었다는 점도 동물 학대가 맞다는 증거”라고 지적했다.

18일 경북 구미시 인의동 한 불법 가건물에서 운영된 개 사육장에서 동물보호단체 봉사자가 케이지에 개를 넣어 옮기고 있다. 김정석 기자

18일 경북 구미시 인의동 한 불법 가건물에서 운영된 개 사육장에서 동물보호단체 봉사자가 케이지에 개를 넣어 옮기고 있다. 김정석 기자

현재 위액트는 견주가 소유권을 포기한 개들을 구조하기 위해 임시 보호와 입양을 원하는 이들을 찾고 있다. 발견 당시 80여 마리였던 개들은 입양되거나 구미시가 보호소로 옮겨 지금은 50마리 안팎까지 줄어든 상태다. 개들이 방치돼 있던 사육장은 곧 아파트 건설이 시작될 부지여서 이달 말까지 사육 시설은 모두 철거될 예정이다. 개들이 갈 곳을 찾지 못하게 되면 안락사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위액트 측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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