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 푼 대선 6수생···가축 치던 그가 14조 나랏빚 문제 풀까

중앙일보

입력 2021.08.19 05:00

‘반역자’에서 대통령이 된 대선 ‘6수생’. 남아프리카 잠비아 야당 지도자인 히카인데 히칠레마(59) 국가개발연합당(UPND) 대표의 정치 역정은 이렇게 정리된다. 히칠레마 대표가 60% 득표율로 지난 16일(현지시간) 대통령에 당선됐다고 AP통신 등이 보도했다. 세 번째 맞대결을 펼친 ‘숙적’ 에드거 룽구(64) 대통령을 100만표 이상 차이로 따돌렸다. 25년 만의 압승이다. 부정 선거를 주장하던 룽구 대통령은 패배를 인정하고 평화적 정권 이양 방침을 밝혔다.

가축 치다 사업으로 자수성가…잠비아 최고 부자

16일(현지시간) 잠비아 수도 루사카에서 기자회견 중인 하카인데 히칠레마 대통령 당선인. AFP=연합뉴스

16일(현지시간) 잠비아 수도 루사카에서 기자회견 중인 하카인데 히칠레마 대통령 당선인. AFP=연합뉴스

히칠레마 당선인은 자신을 “평범한 집안에서 가축을 치던 ‘목축 소년’”이라고 소개한다. 잠비아 대학교에서 장학생으로 경제학과 경영학을 전공한 뒤 영국 버밍엄 대학교에서 MBA 학위를 받았다. 금융과 부동산, 축산업, 의료업, 관광업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자수성가한 사업가로, 잠비아 최고 부자 중 한 명이다. 2006년 대선에 처음 출사표를 던진 이후 15년 만에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는 정치에 입문한 후 15번 체포된 이력으로도 유명하다. 2017년 대통령의 차량 행렬에서 길을 비켜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반역죄’로 체포돼 4개월간 수감 생활을 한 게 대표적이다. 불과 1년 전 대선에서 10만표 차이로 패배한 야당 지도자를 탄압한다는 비판 여론이 들끓자 정부는 그를 석방하고 무혐의 처리했지만, 히칠레마 당선인은 이후 언론 인터뷰에서 “룽구 정권은 8일 동안 빛도 들지 않는 독방에서 물과 음식도 주지 않고 고문을 하며 나를 죽이려고 했다”고 주장했다. 지난 16일 수락 연설에선 룽구 정부를 ‘잔인한 정부’로 규정하면서도 “과거는 잊어버리자”며 “우리는 우리를 체포했던 이들을 잡으려고 집권한 게 아니다”라고 단결을 호소했다.

12일 잠비아 수도 루사카의 투표소에서 투표 중인 히칠레마 당선인. AFP=연합뉴스

12일 잠비아 수도 루사카의 투표소에서 투표 중인 히칠레마 당선인. AFP=연합뉴스

그의 당선 비결은 ‘경제’와 ‘소통’이라고 BBC는 분석했다. 히칠레마 당선인은 “아프리카 제2의 구리 생산국인 잠비아의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성공한 사업가가 필요하다”고 강조해왔다. 투자자 친화 정책과 부정부패 척결을 주요 공약으로 내걸었다. 잠비아 최대 목장을 보유한 그는 자신의 농업 기반을 활용해 잠비아를 남아프리카 지역의 식량 생산 기지로 만들겠다고도 했다.

정치분열, 경기침체에 변화 열망…부도국가 극복 숙제

환호하는 히칠레마 잠비아 대통령 당선인 지지자들. EPA=연합뉴스

환호하는 히칠레마 잠비아 대통령 당선인 지지자들. EPA=연합뉴스

무엇보다 젊은 유권자와의 소통이 주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히칠레마 당선인은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SNS)에서 젊은이들이 즐겨 쓰는 은어나 축구 등 정치 외의 일상 소재를 자주 언급하면서 젊은 층의 호감을 샀다. SNS 슬로건으로 쓴 “발리가 해결하겠습니다”란 의미의 해시태그(#BallyWillFixIt)의 ‘발리’는 누군가를 아버지로 지칭하는 은어다. 지지자들은 그의 당선이 확정되자 거리로 뛰쳐나와 “발리, 가자”라고 외쳤다. 잠비아 유권자 약 700만명 중 절반 이상이 35세 미만이다.

잠비아는 1991년 약 20년간 지속한 일당체제를 끝내고 다당제를 도입한 후 아프리카에선 민주주의가 안정적으로 정착된 국가로 꼽힌다. 하지만 지난 2016년 대선에서 여야 지지자 간 충돌이 발생하자 룽구 정부는 군을 배치했다. 이듬해엔 히칠레마가 반역죄로 수감된 후 방화가 잇따르자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정부를 비판하는 언론사를 폐쇄하거나 언론인을 체포하기도 했다. 이같이 정치적 갈등이 심화하고 경기침체까지 겹치면서 잠비아에서 변화에 대한 열망이 커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잠비아는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여파로 1998년 이후 처음으로 경기침체에 빠졌다. 주요 수입원인 구리의 수요 감소가 직격탄이 됐다. 국가채무만 120억 달러(약 14조원)가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국가 재정의 30% 이상을 이자로 지급한다. 결국 만기가 지난 400만 달러에 대한 이자 상환을 포기하고 채무 불이행(디폴트)을 선언, 세계 최초의 코로나19 부도 국가가 됐다. BBC는 “히칠레마 당선인이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지금의 인기도 식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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