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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표·주자 릴레이 멱살잡이 "국민의힘, 정권교체 포기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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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지난 6월 22일 서울 여의도 켄싱턴호텔에서 열린 원코리아 혁신포럼 출범식에서 원희룡 당시 제주지사(오른쪽)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인사를 나누는 모습. 오종택 기자

지난 6월 22일 서울 여의도 켄싱턴호텔에서 열린 원코리아 혁신포럼 출범식에서 원희룡 당시 제주지사(오른쪽)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인사를 나누는 모습. 오종택 기자

‘정권교체의 전초기지’라고 주장하는 제1야당의 자중지란이 점입가경이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처럼, 갈등에 새 갈등을 더해 그러잖아도 꼬인 실타래를 헝클어트리고 있다.

18일엔 근래 당을 시끄럽게 만든 ‘이준석 대 윤석열’의 갈등 축에 ‘이준석 대 원희룡’이라는 또 다른 축이 더해졌다. 원 전 지사가 이 대표를 “위선적”이라고 하자, 이 대표가 “그냥 딱하다”고 비아냥대는 모습도 연출됐다.

발단은 "저거 곧 정리된다"는 이 대표의 말이었다. 이 발언은 17일 원 전 지사가 “이 대표가 통화에서 '윤 전 총장이 정리된다'고 했다”고 주장하면서 공개됐다. 이 대표는 곧장 “(윤석열) 캠프와의 갈등 상황이 정리될 것이라고 말한 것”이라고 반박했고, 심야인 오후 11시30분께 페이스북에 원 전 지사와의 통화 녹취 파일 일부를 공개했다.

녹취록에 따르면 원 전 지사가 대선 경선 과정의 갈등을 우려한 듯 “지금 싸우는 사람들, 나중에 다 알아야 될 사람들이잖아요”라고 하자, 이 대표는 “너무 걱정 마십시오. 저쪽(윤석열 캠프)에서 입당 과정에서도 그렇게 해가지고 세게 얘기하는 것”이라며 “지금 저희하고 여의도 연구원 내부 (지지율)조사하고 안 하겠습니까. 저거 곧 정리됩니다”라고 말했다. “지사님 (지지율) 오르고 계십니다. 축하드립니다”라는 말도 했다.

국민의힘 대선주자인 원희룡 전 제주지사가 1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의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금방 정리된다’ 발언에 맞대응하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오늘 오후 6시까지 자신과 통화한 녹음 파일 전체를 공개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국민의힘 대선주자인 원희룡 전 제주지사가 1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의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금방 정리된다’ 발언에 맞대응하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오늘 오후 6시까지 자신과 통화한 녹음 파일 전체를 공개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발끈한 원 전 지사는 18일 기자회견을 자청해 “‘곧 정리된다’는 발언 대상은 윤석열 후보”라며 “정확하지도 않은 인공지능(네이버 클로바) 녹취록의 일부만 풀어 교묘히 뉘앙스를 비틀어 왜곡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기억과 양심을 건다"고 한 그는 “이 대표는 녹음 파일 전체를 오늘 오후 6시까지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정리된다’는 발언에 대해선 “내부 조사에서 윤 전 총장 지지율이 떨어지기 때문에 곧 정리될 것이고, 나는 오르고 있으니 축하한다는 덕담까지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한 이 대표의 반응은 “그냥 딱합니다”(페이스북)였고, 녹취 파일 공개 요구엔 “응할 생각이 전혀 없다”고 잘랐다.

본격적인 경선을 시작하기도 전에 당 대표와 대선 주자 간의 갈등이 중첩되고 급기야 녹취록이 등장하는 폭로전까지 벌어지자 당에선 “정권교체를 포기했냐는 원성을 요즘 자주 듣는다”(재선 의원)는 냉소와 “막장으로 치닫는 집안싸움을 국민이 어떤 눈으로 보겠나”(초선의원)는 우려가 횡행한다.

그러잖아도 앞서 이 대표와 윤 전 총장 측이 벌인 일련의 기 싸움에 대해 ‘이(李)-윤(尹) 전쟁’이라는 말이 나도는 등 험악한 분위기였다. 갈등의 도화선이던 대선 예비후보 토론회(18일)가 취소되면서 갈등이 봉합하는 듯도 했지만, 언 발에 오줌 누기 조차 안 됐던 셈이다.

국민의힘 김기현 원내대표가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김기현 원내대표가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런 갈등 양상은 18일 오전에 있었던 국민의힘 비공개 의원총회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서병수 당 경선준비위원장이 “왜 이렇게 지도부를 흔드는 것인지 제발 좀 자중해달라. 각 후보 캠프들도 당내 권력 투쟁에 몰두하지 말았으면 한다”고 말한 게 화근이었다.

서 의원의 발언 직후 자리에 앉아있던 곽상도 의원이 “말씀을 그렇게 하시면 안 된다”고 소리쳤고, 김정재 의원도 “그게 저희가 원하는 거다”며 불만을 표시하는 등 소란이 일었다.

김기현 원내대표가 급하게 비공개로 전환한 이후엔 3선의 김태흠 의원이 발언대에 섰다. 김 의원은 “누가 이 대표를 흔든 게 아니라 이 대표 스스로 책임을 망각하고 편향된 입장을 내보인 것”이라며 “방송에서 ‘윤석열이 대통령 되면 지구를 떠난다’고 하거나, 통화를 녹음하고 녹취록을 까는 당 대표가 어디 있느냐”고 비난했다. “지역에서 이 대표에 대한 비판 문자가 너무 쏟아진다. 당 대표 리스크를 관리해야 한다”(윤한홍 의원)는 말도 나왔다고 한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 임현동 기자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 임현동 기자

전례가 없는 대혼란에 대해 당내에선 "대선을 공정하게 관리해야 할 대표가 자꾸 주인공이 되려고 나서는 게 모든 문제의 원인”(3선 의원)이란 분석이 나온다. 앞서 윤 전 총장과의 통화 녹취 유출 의혹에 휩싸였던 이 대표가 이번엔 아예 직접 원 전 지사와의 통화 녹취를 공개하며 설전을 벌인 걸 두고는 “신뢰를 깨는 행위”라는 비판도 나온다.

하지만 이 대표만이 비판의 표적은 아니다. 윤 전 총장에 이어 이 대표의 ‘새로운 주적’으로 등장한 원 전 지사를 향해서도 “대선주자라는 사람이 사적 대화까지 과장, 왜곡해 뒷북 공개하면서 당내 분란을 부추기는 저의가 무엇이냐. 당장 예비후보를 사퇴하라”(하태경 의원) 같은 비판이 이어졌다.

이날 의원총회에 불참했던 이 대표는 이후 기자들과 이런 문답을 주고받았다.

당내 갈등 봉합 어떻게 할 건가.
“고민하고 있다.”
하태경 의원이 원 전 지사를 징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 의원이 그런 말을 했다면, '참 분란이 크긴 크구나'라고 생각한다.”
국민의힘 대선주자인 원희룡 전 제주지사가 1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의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금방 정리된다’ 발언에 맞대응하는 긴급 기자회견을 하기위해 들어서고 있다. 임현동 기자

국민의힘 대선주자인 원희룡 전 제주지사가 1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의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금방 정리된다’ 발언에 맞대응하는 긴급 기자회견을 하기위해 들어서고 있다. 임현동 기자

대선을 목전에 두고 내부 멱살잡이에 몰두하는 야당에 대해 전문가들은 “참사 수준”이라고 지적한다. 이진곤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백주 대낮에 당 대표와 대선주자가 혈투를 벌이듯 싸웠다는 게 문제"라며 "정권교체를 바라는 유권자들은 새 정치를 기대했는데, 구태가 반복되니 실망은 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학과 교수는 “녹취 파일 공방 등 괴기한 내분이 반복되면 중도 표심이 상당수 이탈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병준 전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대선 후보들 간의 비전 경쟁이 이뤄져야 할 경선판이 당대표와 대선 주자의 싸움터로 변질하고 있다”며 “그러는 사이 다양한 후보들의 비전 경쟁이 묻히고, 국민의 피로도가 가중되는 절체절명의 위기 상태”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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