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하현옥의 시시각각

무대책 정부의 금리 인상 무임승차

중앙일보

입력 2021.08.19 00:40

업데이트 2021.08.19 08:05

지면보기

종합 30면

하현옥 기자 중앙일보 팀장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15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에서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 한국은행]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15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에서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 한국은행]

 ‘파티 푸퍼(Party Pooper)’. 파티의 흥을 깨는 사람을 일컫는 이 말은 중앙은행의 동의어로도 쓰인다. “중앙은행의 역할은 파티가 한창일 때 ‘펀치볼(punch bowl)’을 치우는 것”이라고 했던 윌리엄 마틴 전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의 말과 맥락이 닿아 있다.

“금리 오르면 주택 가격 조정될 듯”
졸지에 ‘집값 파이터’ 총대 멘 한은
정부, 취약층 보호 재정정책해야

 펀치볼은 와인에 과일을 넣은 ‘펀치’라는 칵테일 음료를 담는 그릇이다. 파티 참석자가 만취하기 전 술병을 치워버리면 그야말로 파장이다. 이처럼 중앙은행은 경기가 과열되기 전 금리를 올려 부작용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후 펀치볼은 중앙은행 통화정책의 상징이 됐다.

 통화정책의 키를 쥔 중앙은행 입장에서 금리 인상은 인하보다 수백만 배 어렵다. 돈의 값(금리)이 비싸지면 볼멘소리 하는 사람 천지다. 돈을 빌린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주식 시장도 긴장 모드다. 유동성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주가가 떨어지면 투자자의 불만은 커진다. 정치인이나 정부 관료도 금리 인상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경기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어서다.

 그런데 뭔가 묘하게 돌아가고 있다. 금리 인상을 껄끄럽게 여기는 정치인과 정부 관료들이 오히려 금리 인상을 학수고대하는 모양새다. 지난달 28일 ‘부동산 무대책 담화’를 발표한 홍남기 부총리는 “금리가 오르면 주택 가격이 조정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금리 인상이 집값 하락의 만능열쇠인 양 기대감을 드러낸 것이다.

 금리 인상에 대한 기대감 혹은 중앙은행 등 떠밀기는 25번인지 26번인지도 모를 부동산 대책을 내놓고도 판판이 깨진 정책 당국의 백기 투항이다. 각종 규제와 엄포를 비웃듯 다락같이 오르는 집값을 잡을 카드는 사실상 모두 소진한 상태다. 중앙은행이 어쩌다 ‘최후의 믿을 맨’이 된 셈이다.

 이런 상황이 오히려 마뜩잖은 곳은 한국은행일 수 있다. 정치권과 정부가 금리 인상에 태클을 걸지 않는 것을 다행이라 하기엔 뭔가 찜찜하다. 코로나19의 충격 속에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 수준까지 낮춘 이례적 통화정책을 정상화하려다 졸지에 ‘집값 파이터’의 총대까지 멜 수 있어서다.

 기준금리 인상을 고민하는 한은도 과도한 유동성으로 인한 부동산 등 자산가격 상승과 시장 과열을 진정시킬 필요를 인정한다. 비록 금리가 불쏘시개 역할을 했더라도, 문제는 최근의 집값 상승이 연이은 부동산 정책 실패의 결과물이라는 데 있다. 더 나아가 집값 급등을 부추기는 공급 부족 문제는 쉽게 풀릴 사안이 아니다. 그 때문에 금리 인상이 도깨비방망이가 될 수 없는 건 자명하다.

 어느새 집값 대책으로 치환된 기준금리 인상은 어떤 의미에서 극약 처방이다. 누구든, 어디든 가리지 않는 무차별적인 정책이기 때문이다. 서울과 지방의 금리가 다르지 않고, 부자와 빈자를 가르지 않는다. 1주택자와 다주택자에게 동일한 잣대가 적용된다. 이처럼 무차별적인 무딘 칼을 휘두를 때 먼저 베이고 끊어지는 곳은 약한 고리다.

 이제 극약 처방은 피할 수 없게 됐다. 연내 금리 인상을 시사한 한은은 투약 시점을 고민하고 있다. 이르면 오는 26일이 될 수도 있고, 10월로 넘어갈 수도 있다. 이제 필요한 건 무딘 칼날조차 견뎌내지 못하는 약한 고리, 금리 인상의 직격탄을 맞을 취약 계층을 보호하는 것이다. 정부의 재정정책이 필요한 지점이다. 더 나아가 꼬인 부동산 정책의 실타래를 풀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

 ‘금리가 오르면 집값이 조정될 것’이란 한가한 말만 되뇌면 금리 인상에 무임승차하려는 무능함만을 드러낼 뿐이다. 영국 경제지 이코노미스트는 지난달 “재정 정책이 도와야만 중앙은행이 펀치볼을 치우기 쉽다”고 했다. 완화적 통화정책으로 인한 부의 불평등을 해결하는 데 재정정책이 필요하다는 말이었지만, 한국 상황에 대입해도 다를 바 없다. 벼락거지를 막기 위한 금리 인상이 간절하다면, 정부도 손 놓고 있어서는 안 된다.

하현옥 금융팀장

하현옥 금융팀장

Innovation Lab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