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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강찬호의 시선

매일 혈세 1억씩 삼키면서 권력 견제 포기한 국민의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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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강찬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강찬호 논설위원

강찬호 논설위원

“대통령님, 민주주의 파괴한 드루킹 대선 여론조작 왜 모른 척하십니까. 사과하십시오!”

대통령 측근 댓글공작 유죄 확정 #국민의힘 대표 침묵, 의원만 시위 #한해 361억 보조금 받는 야당 맞나

국민의힘 의원들이 이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들고 청와대 앞에서 시작한 1인 시위가 3주 넘게 이어지고 있다. 당내 최다선 (5선) 정진석 의원이 지난달 29일 “드루킹 주범을 민주 법정에 세울 때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청와대 앞에서 릴레이 시위에 나서자”는 글을 의원 단톡방에 올리고, 본인이 1번 타자를 자청하고 나선 게 계기가 됐다.

그날 정진석 의원실 전화통은 불이 났다. “나도 시위에 나설 테니 일정을 잡아달라”는 국민의힘 의원들의 요청이 쇄도했다. 의원실 관계자는 “독려 전화 한 번 한 적 없는데 의원 50여 명이 참가를 신청해 다음달까지 예약자가 꽉 찼다”고 말했다. 계파도 가리지 않는다. 시위를 주도한 정진석 의원은 친윤석열계로 분류되지만, 이종성·조명희·조태용 등 최재형 후보와 가까운 의원들과 이만희 의원 같은 중립 성향 의원들도 앞다퉈 참여했다. 최재형 후보와 가까운 조명희 의원은 시위 6일 차인 지난 5일 청와대 앞에서 피켓을 들면서 “‘친윤’만이 아니라 당 전체의 시위임을 보여주려고 날짜를 당겨 나왔다”고 했다.

반응도 뜨겁다. 시위에 참여한 의원들은 “시민들이 얼음물 주며 격려하는 건 기본이고, 감시하러 나온 경찰들도 위로의 말을 건네더라”고 했다. 의원 한 명이 시위할 때 경찰 20명이 따라붙는다고 한다. 정진석 의원실 관계자는 “시위 중인 의원이 경찰들에게 ‘우리 때문에 고생한다’고 하니까 경찰들은 '의원님이 당연히 하실 일이다. 잘하고 계신다’고 답해주더라, 청와대가 이걸 알고 경찰 해코지할까 걱정”이라 했다.

이번 시위는 제1야당이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혈육으로 여긴다는 김경수 전 경남지사가 대선 댓글 공작 공범이었음이 최종 확정됐기 때문이다. 친정권 성향의 김명수 대법원장 체제의 대법원에서 민주주의의 근간을 파괴하는 대형범죄 혐의가 입증됐으니 ‘빼박(빼도 박도 못하는)’인 셈이다. 이 사실만으로도 문 대통령은 국민에 사과하고 댓글 공작의 몸통 규명을 약속해야 한다. 그러나 문 대통령 측은 "입장이 없는 게 입장”이라는 궤변과 함께 입을 닫아왔다.

정권 교체와 민주주의 회복을 입버릇처럼 외쳐온 제1야당이라면 당연히 대통령의 침묵을 규탄하고, 사과를 끌어내야 한다. 그런데 의원 개개인들만 8월 땡볕 더위 속에서 시위를 이어갈 뿐 국민의힘 지도부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특히 이준석 대표의 직무유기가 심각하다. 시위 현장을 찾아 격려하기는커녕 "정부랑 싸우면 대선 후보들의 메시지가 가려질 수 있다. 현 국면에서 대정부 투쟁에 앞장서는 건 내 역할이 아니다”라고 원희룡 전 제주지사에게 강변했다니 기가 막히다.

제1야당의 직무유기에 비판 여론이 드세자 김기현 원내대표가 1인 시위 개시 20일 만인 17일 뒤늦게 청와대 앞에서 의총을 열고 대통령의 사과와 진상 규명을 요구했다. 하지만 일에는 때가 있는 법이다. 만일 보수 정권에서 대통령 최측근이 댓글 공작으로 유죄를 받았다면 민주당은 그날로 의원 전원이 청와대 앞에 드러누워 "대통령 나와!”를 연호했을 것이다. 민노총 같은 우군들도 총출동해 촛불시위를 벌여 어떻게든 정권의 사과를 받아냈을 거다. 그게 야당이다. 대통령 최측근이 민주주의 근간을 뒤흔든 범죄로 수감됐는데 가만히 있는 야당은 야당 자격이 없다.

게다가 내년 대선에서 제2의 드루킹이 나오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4년 전 대선 때 드루킹 댓글조작의 핵심 피해자였던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는 "지금도 댓글 조작팀 여러 개가 암약하고 있다. 이렇게 중요한 범죄를 한 곳에만 맡기진 않는 법”이라고 했다. 그는 "의혹 수준이긴 하지만 ‘과천팀’이란 이름의 댓글 공작팀이 움직이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라고도 했다. 사실 여부를 떠나 댓글 공작에 대해선 털끝만큼의 의혹도 샅샅이 들추며 발본색원 의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여론 조사와 디지털 댓글이 선거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요즘 세상에선 권력과 돈을 가진 정치집단이라면 반드시 써먹고 싶은 유혹을 느끼게 되는 게 댓글 조작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국고 보조금을 가장 많이 받은 정당은 국민의힘이다. 수령액이 361억원에 달한다.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327억원)보다도 많다. 100% 국민 혈세다. 하루 1억원씩 세금을 집어삼키면서, 야당의 본분인 권력 감시와 대여 투쟁은 등한시하고 집안싸움에만 정신이 없다. 양식이 있는 당이라면, 코로나로 인한 최악의 불경기에도 혈세로 보조금을 대주는 국민에게 최소한의 밥값은 해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