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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굴 위한 입시 개편이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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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천인성 기자 중앙일보 모바일24부디렉터(EYE)
천인성 EYE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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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보자 가족을 둘러싼 논란의 차원을 넘어 대입 제도 전반에 대해 재검토를 해달라.” 2019년 9월 1일 아세안 순방을 앞둔 문재인 대통령이 당·정·청 관계자에게 남겼다는 ‘당부’다. 정국을 뒤흔들던 ‘조국 논란’에 침묵을 지켰던 대통령의 첫 번째 언급이었다. 발언이 알려지자 여권이 조 후보자의 비리를 ‘제도의 문제’로 돌리고 정면 돌파할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실제로 일주일 뒤 장관 임명을 강행했다.

동시에 대통령 발언은 예정에 없던, ‘광복 이후 19번째’ 대입 개편의 신호탄이었다. 다음 달 대통령은 “정시 비중 상향을 포함한 입시 개편안을 마련하겠다”고 선언했다. “정시 확대보다 학종 개선이 우선”(유은혜 부총리)이라던 교육부가 부랴부랴 교사와 대학의 반대를 꺾고 개편을 강행했다.

2년 뒤 나온 법원의 판단은 청와대·여권의 인식과는 사뭇 달랐다. ‘남들도 그랬다’는 항변, ‘제도의 희생양’이란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지난 11일 정경심 교수에게 1심과 같은 징역 4년을 선고한 2심 재판부는 정 교수의 범법행위가 “다소 과장되거나 후한 평가가 기재된 확인서를 발급받는 정도”가 아니라고 판시했다. “사실과 다른 확인서를 요구하고” “내용을 임의로 변경하고” “하지 않은 활동을 기재하고” “표창장을 위조하는 범행까지” 저질렀기 때문이다.

노트북을 열며 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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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입시제도 자체의 공정성에 대한 우리 사회의 믿음 내지 기대가 심각하게 훼손되는 결과에까지 이르렀다”고 꾸짖었다. 명백한 범죄행위를 100% 제도 탓인 것처럼 포장해 정치적 난관을 돌파한 청와대·여권에 대한 비판으로도 들린다.

나아가 기자에겐 속도전 치르듯 진행된 ‘조국 발 대입 개편’이 맞는 방향이었는지 걱정도 든다. 따지고 보면 조 전 장관의 딸이 치른 2010학년도 대입은 10년이 지난 요즘 학종의 모습과 꽤 다르다. 도입 초기 입학사정관제는 실제로 문제투성이였고, 조 전 장관 딸처럼 부모 기득권으로 얻은 스펙으로 진학한 사례도 있다. 하지만 비판과 제도 보완이 반복되면서 ‘학교 밖 스펙’ 반영을 금지하는 등 어느 정도 개선했던 것도 사실이다.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줄여가던 학종이 조 전 장관 부부가 10년 전 저지른 비리 탓에 한순간 무너졌다.

특유의 교육열에 시달리는 한국에선 입시 제도는 최대한 자주 점검해 제때 손질해야 한다. 하지만 누군가를 위해, 특정 정파를 위해 토론과 성찰, 합의를 건너뛰는 식이라면 예상 못 한 문제점, 한층 심한 부작용을 피하기 어려울 테다. 조 전 장관이 쏘고, 문재인 정부가 실행한 새로운 대입 체제를 꼼꼼히 따져봐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