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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카 안입은 여성 총살” 탈레반의 공포 현실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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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미제 M4소총 등으로 무장한 탈레반들이 18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서 순찰을 하고 있다. 현지 사정에 정통한 소식통에 따르면 탈레반은 시내 전역에 검문소를 설치해 행인들의 휴대전화와 몸을 수색하고 때론 폭행을 가하는 등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미제 M4소총 등으로 무장한 탈레반들이 18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서 순찰을 하고 있다. 현지 사정에 정통한 소식통에 따르면 탈레반은 시내 전역에 검문소를 설치해 행인들의 휴대전화와 몸을 수색하고 때론 폭행을 가하는 등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AP=연합뉴스]

20년 만에 아프가니스탄에서 재집권한 탈레반 대변인이 첫 공식 인터뷰에서 여성 인권을 존중하겠다고 약속한 날 온몸을 가리는 부르카를 입지 않은 채 외출한 여성이 총에 맞아 숨졌다는 보도가 나왔다. 탈레반의 강압 통치 소식도 전해졌다. 동부 잘랄라바드에서는 이날 탈레반이 아프간 국기를 들고 시위하는 시민들을 향해 발포해 2명이 숨지고 12명이 다쳤다.

“여성 인권 존중” 발표 하루 만에 #외신 “여성 총살, 시민 폭행” 보도 #탈레반, 시위대에 발포 2명 숨져 #탈레반 고위인사, 주민들에 명령 #택시기사들, 여성 승차 거부도 #20세 이하, 탈레반 시절 경험 못해 #본보기 삼아 통제 강화할 우려도

18일 폭스뉴스에 따르면 아프간 타하르주 주도 탈로칸에서 지난 17일 한 여성이 피투성이가 된 채 숨져 있고 부모와 주변 사람들이 어쩔 줄 몰라하는 사진이 찍혔다. 폭스뉴스는 이 여성이 부르카 없이 외출했다가 숨졌다고 보도했다.

또 17일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탈레반은 아프간 국영 TV의 유명 앵커인 가디자 아민을 비롯한 여성 직원들을 무기한 정직시켰다. 아민은 “나는 기자인데 일할 수 없게 됐다”며 “탈레반은 탈레반이며 그들은 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같은 날 자비훌라 무자히드 탈레반 대변인은 “이슬람법(샤리아)의 틀 안에선 여성의 권리도 존중될 것”이라며 “여성의 취업과 교육도 허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또 “아프간 내 민간 언론 활동도 독립적으로 이뤄지기를 원한다. 기자들이 국가의 가치에 반하지만 않으면 된다”고 했지만 공염불이었다. 탈레반은 과거 집권기(1996~2001년) 여성의 교육과 일할 기회를 박탈하고 외출 시 부르카 착용을 의무화하는 등 가혹한 대우를 해 왔다. 탈레반의 재집권 후 이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가 커지자 이날 대변인까지 나섰지만 상황은 과거로 회귀하고 있는 것이다.

“15세 이상 소녀·40세 미만 과부, 탈레반 전사와 결혼하라”

1970년대 아프가니스탄 친소련 정권이 세속화를 추구하던 때의 여성들. [트위터 캡처]

1970년대 아프가니스탄 친소련 정권이 세속화를 추구하던 때의 여성들. [트위터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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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철수가 시작되고 탈레반의 진격이 가시화된 지방 및 외곽 점령지에선 이미 한두 달 전부터 여성 탄압 증언이 잇따랐다. 지난 6월 말 탈레반이 북부 타카르 지방의 루스타크 지역을 점령한 뒤 한 탈레반의 고위 인사는 주민들에게 “15세 이상의 모든 소녀와 40세 미만의 과부들은 탈레반 전사들과 결혼해야 한다”고 말했다.

카불 시내엔 여성들이 집 밖으로 나오고 있지 않으며 택시기사들이 여성 승차를 거부한다는 목격담이 잇따르고 있다. 카불의 부르카 가격이 10배나 급등했다는 외신 보도도 나왔다.

탈레반의 강압 통치 움직임은 수도 카불과 지방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카불 현지 소식통에 따르면 탈레반은 현재 시내 전역에 검문소를 설치해 시민들의 휴대전화와 몸을 수색하고 때론 폭행을 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상당수 시민은 탈레반을 피해 도망다니고 있으며, 일부는 외부 출입을 삼간 채 자택에 숨어 지내는 상태라고 한다.

기존 아슈라프 가니 정부에서 일했던 인사들에 대한 보복 우려도 커지고 있다. 탈레반은 공무원으로 일했던 이들을 추적하기 위해 검문을 강화하고 이들의 거주지에 찾아가 집 안을 수색하고 있다.

지난 17일 차도르 차림으로 여성 권리 요구 시위 중인 카불 여성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17일 차도르 차림으로 여성 권리 요구 시위 중인 카불 여성들. [로이터=연합뉴스]

중부 바미안주에서는 1990년대 중반 세력 확장에 나선 탈레반에 맞서 싸우다가 목숨을 잃은 하자라족 지도자 압둘 알리 마자리의 석상이 탈레반에 의해 산산이 부서졌다.

이희수 성공회대 이슬람문화연구소장은 “아프간은 기본적으로 부족 단위로 돌아가는 국가고, 탈레반도 지방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에 처음부터 개입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탈레반이 향후 ‘본보기’ 차원에서 지금보다 더 잔혹한 통제에 나설 가능성도 제기된다. 특히 20대 젊은 층에 대한 강도 높은 통제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도 나온다. 현재 아프간 국민의 60~65%가량은 20세 이하 인구로 추정된다. 아프간 국민 열 명 중 여섯 명은 탈레반의 아프간 집권 시절(1996~2001년)을 경험해 보지 못한 이들인 셈이다. 일각에선 개방적이고 미국 등 서구사회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이들을 강압적으로 통제하려 할 경우 민중 봉기 형태의 반발이 일어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 17일 카불에서 철수한 후 카타르 임시공관에 머물고 있는 최태호 주아프간 한국대사는 이날 “아프간 젊은 사람들은 인터넷 등의 영향으로 서구 문화에 익숙하고 이에 호감을 가진 사람들”이라며 “특히 여성 인권 향상을 위해 국제사회가 많은 지원을 한 결과 여성 인권의식이 많이 높아져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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