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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오병상의 코멘터리

국민의힘..왜 난장판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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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상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지난 6월23일 제주시 구좌읍 신재생에너지홍보관을 방문한 뒤 원희룡 제주지사 등과 함께 전동킥보드를 타고 해안도로를 달리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지난 6월23일 제주시 구좌읍 신재생에너지홍보관을 방문한 뒤 원희룡 제주지사 등과 함께 전동킥보드를 타고 해안도로를 달리고 있다. 연합뉴스

원희룡 '이준석이 윤석열 정리된다고 말했다' 폭로 #이준석 녹취록 공개..뜯어보니..원희룡 주장 지나쳐

1. 국민의힘이 난장판입니다. 17일, 18일 이틀간 전례없는 추태를 보였습니다. 발단은..지난 17일 대선주자 원희룡 전 제주지사가 이준석 당대표와의 통화내역을 공개했습니다. 원희룡은 ‘지난 12일 통화하던 중 이준석이..윤석열은 금방 정리된다..고 얘기했다’고 밝혔습니다. 원희룡은 ‘보태는 것도 빼는 것도 없이 사실’이라며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2. 충격적이었습니다. 이준석이 17일 밤 11시16분 원희룡이 주장한 통화의 녹취록을 공개했습니다. 요지는..
-참석자2(원희룡) ‘우리 캠프 지금 서로 싸우는 사람들 나중에 다 알아야 될 사람들이잖아요..’(당내 갈등을 우려하는 내용)
-참석자1(이준석) ‘너무 걱정 마십시오. 저는 지금 초기에..제가 봤을 때는 지금..네 저쪽(윤석열)에서 입당과정에서 그렇게 해가지고 이제 세게 얘기하는 거지..예 저거 지금 저희하고 여의도연구원 내부조사하고 안하겠습니까. 저거 곧 정리됩니다.지금..’
-참석자1(이준석) ‘지사님(원희룡) 오르고 계십니다. 축하드립니다.’

3. 위 통화내용을 두고 각자 이해에 따라 해석이 갈립니다.
원희룡 주장처럼 ‘이준석이 윤석열을 정리하겠다고 말했다’고 해석하는 쪽은..‘이준석이 윤석열을 탈락시키려한다’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이준석 주장처럼 ‘시간이 지나면서 윤석열과의 갈등이 곧 정리될 것이다’라고 해석하는 쪽은..‘당연한 얘기’로 받아넘깁니다.

4. 객관적으로 보자면..위 두 주장의 중간쯤에서 이준석쪽으로 기웁니다. 이준석의 말을 좀 더 풀어보자면..
‘윤석열 쪽에서 지금 세게 나오고 있지만..국민의힘 내부 조사기관인 여의도연구원이 여론조사를 하고 있는데..윤석열의 지지가 떨어지고 있습니다. 지지율이 떨어지면 윤석열이 지금처럼 강하게 할 수 없으니까..지금의 갈등양상은 가라않을 겁니다.’
‘그리고..조사해보니 원희룡 지사님은 지지율이 올라가고 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5. 이준석의 발언취지를 정리하자면..‘윤석열의 지지율이 계속 떨어질테니까..윤석열이 자기 맘대로 못할 것이다’는 인식입니다.
윤석열의 지지율 하락을 전망한다는 점에서 ‘별로 우호적이지 않다’는 느낌이지만..그렇다고 ‘윤석열을 망하게 하겠다’는 적대감까지는 아닙니다.
반면 이준석은 ‘원희룡의 지지율상승’이란 조사결과를 알려주면서 ‘축하’합니다. ‘원희룡에 대한 지원’의사까지는 아니더라도..적어도 앞선 17분간의 통화과정에서 ‘원희룡이 말한 내용에 대한 감사의 뜻’을 보인 셈입니다.

6. 이렇게 보자면 원희룡의 주장은 지나쳤습니다. 원희룡이 통화과정에서 정말로 그렇게 들었을 수도 있지만, 정치적 의도에서 뒤틀어서 누설했을 수도 있습니다. 후자일 경우 정치적 의도는 충분히 짐작이 됩니다.
이준석과 윤석열을 동시에 공격하는 효과를 노렸을 겁니다. 이준석에 대해선 ‘공정한 경선관리를 하지 않는다’는 고발이 됩니다. 이준석이 가까운 후보(유승민)편을 든다는 비난도 됩니다. 윤석열에 대해선 ‘곧 망할 것’이란 음해가 됩니다. 동시에 이런 노이즈 마케팅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할 수도 있습니다.

7. 물론 원희룡은 자신이 옳다고 주장합니다. 18일 아침 ‘오후6시까지 이준석은 녹취록 전체를 공개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앞뒤 맥락을 보면 자기 주장이 옳음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겁니다.
이준석은 거부했습니다. 원희룡은 오후 6시를 넘기자 SNS에‘공개안한 건 이준석이 잘못을 인정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자신의 문제제기로 ‘불공정에 제동이 걸렸다’고 주장했습니다. 무슨 의미인지 와닿지 않습니다.

8. 많은 지적이 쏟아졌습니다.
무엇보다 통화내용을 누설한 원희룡에 대한 비난이 많았습니다. 모든 통화를 자동으로 녹음하고..필요시 녹취록으로 공개하는 이준석의 태도에 대한 비난도 적지 않았습니다. 모두 일리 있는 지적입니다. 하지만 이런 한심한 행태는 반복될 겁니다.

9. 첫째 이유는..국민의힘에 중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보수정당인 국민의힘은 ‘박근혜 탄핵’이란 이례적인 상황에서 치른 2017년 대통령 선거 이전까지만 해도 늘 ‘유력 대권후보’가 있었습니다. 박근혜-이명박-이회창 등. 그런데 이번엔 당 밖에서 들어온 윤석열이 가장 유력한데다, 후보가 무려 13명이나 됩니다. (17일 김태호 사퇴로 12명)

10. 둘째, 와중에 당대표가 0선 36세에 불과합니다. 대선을 앞둔 후보, 어차피 각후보에 정치인생을 건 캠프 중진..어느 누구도 이준석을 대표로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이준석이 모든 통화를 녹취하는 건..어쩌면 이런 난장판에서 자기방어를 위한 수단인지도 모릅니다. 어차피 SNS정치시대엔 각자도생입니다.
〈칼럼니스트〉
2021.0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