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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물고기 동물학대' 판단…산천어 축제는 왜 학대 아닐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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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물고기를 길바닥에 내던진 어류양식업자의 행위가 동물 학대라는 경찰의 판단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동물권단체는 ‘긍정적인 변화’라는 입장이지만, 일각에서는 ‘코미디’라는 반응이다.

[이슈추적]

18일 동물권단체 관계자들은 경찰의 기소의견 송치 결정을 두고 “어류에 학대 혐의가 적용된 첫 사례라 더 의미 있다”는 입장이다. 이번 고발을 진행한 동물해방물결(동해물)의 이지연 대표는 “검찰에서도 동물학대 혐의를 인정해 사법부에서 엄정한 판단이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조희경 동물자유연대 대표도 “식용이라 할지라도 상식을 벗어난 가혹 행위에 대해서는 동물학대로 규정해야 한다고 명확하게 선을 그어준 판단”이라고 했다.

어류 동물학대 판단에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조롱이 이어지고 있다. "이제 낚시도 동물학대에 속하겠다. 바늘에 바둥바둥 매달려오는 붕어도 동물학대고, 어항 속 물고기도 엄밀히 학대 아니냐" "어부들과 축산업자도 살인방조죄에 해당되는 거냐. 물고기와 돼지, 소가 꼭 식용으로 팔린다는 확신을 어떻게 하냐"면서다.

‘비닐에 담긴 물고기’는 학대 인정 안 돼

경남어류양식협회는 지난해 11월 27일 정부의 일본산 활어 수입에 반대하며 방어, 참돔을 바닥에 던져 질식사 시키는 집회를 벌였다. 유튜브 미래수산TV 캡처

경남어류양식협회는 지난해 11월 27일 정부의 일본산 활어 수입에 반대하며 방어, 참돔을 바닥에 던져 질식사 시키는 집회를 벌였다. 유튜브 미래수산TV 캡처

지난해 11월 27일 경남어류양식협회는 서울 여의도에서 정부의 일본산 활어 수입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고 방어, 참돔을 바닥에 던져 죽게 했다. 국내산 활어를 산채로 비닐에 묶어 행인들에게 무료로 나눠주기도 했다.

당시 동해물측은 협회가 물고기들을 식용이 아닌 집회의 도구로 사용했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이들은 “비록 현행 동물보호법에서 어류 동물은 식용일 경우 보호 대상에서 제외되지만, 집회에 이용된 방어와 참돔은 집회의 도구로 무참히 살해, 이용됐다”면서 협회를 고발했다.

이번 경찰 판단에선 ‘거리에 내팽개친 물고기’에 대한 학대는 인정됐지만, ‘비닐에 담겨 질식한 물고기’는 예외로 봤다. 사람들에게 나눠준 참돔은 식용 목적 어류로 구분돼서다. 이지연 대표는 “비닐에 담긴 물고기는 결국 ‘먹으라고 나눠줬다’는 이유로 송치가 안 됐다”며 “집회를 위해 퍼포먼스로 이용된 건 마찬가진데, 학대자의 진술에 기반한 자의적인 판단이 이뤄졌다”고 비판했다. 동해물은 이와 관련 영등포경찰서에 이의를 제기할 계획이다.

“산천어축제, 동물학대 아니다” 왜?

2018 얼음나라 화천 산천어축재 개막 이틀째인 7일 오전 강원도 화천군 화천읍 화천천에서 시민들이 산천어 얼음낚시를 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2018 얼음나라 화천 산천어축재 개막 이틀째인 7일 오전 강원도 화천군 화천읍 화천천에서 시민들이 산천어 얼음낚시를 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어류의 동물학대 여부를 판단하는 데에는 애초 ‘식용’이었느냐가 중요한 기준이다. 동물보호법은 포유류와 조류, 어류 등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신경체계가 발달한 척추동물에 적용되나, 어류의 경우 식용을 목적으로 하는 것은 범위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앞서 어류 동물학대 혐의에 대해 ‘식용’이라는 기준을 인정받아 무혐의 처분을 받은 사례가 있다. 지난해 1월 동물보호단체들은 “산천어 축제는 오락이 주목적이고 고통을 느끼는 생명체를 물고, 던지고, 버리고, 질식시킨다”며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최문순 화천군수와 축제 주관기관을 고발했다.

그러나 춘천지검은 축제에 활용되는 산천어는 애초부터 식용을 목적으로 양식된 점을 종합해 볼 때 동물보호법에서 보호하는 동물이라 보기 어렵다는 점을 들며 불기소 결정을 내렸다. 이후 동물단체들이 항고했으나 서울고검은 같은 해 7월 기각 결정을 내렸다

‘동물의 권리를 옹호하는 변호사들’ 소속 한주현 변호사는 “명칭 자체가 ‘축제’지 않냐. 축제를 즐기는 과정에서 물고기를 가지고 노는 등 ‘도구’로 사용하고, 결국 집단 폐사로 이어지기도 한다”며 “그런데 그런 과정들을 뭉뚱그려 ‘결국 먹는 거 아니냐’고 판단하는 건 정밀하지 못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동물해방물결이 지난해 12월 2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살아있는 물고기를 집회 도구로 학대한 경남어류양식협회를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동물해방물결

동물해방물결이 지난해 12월 2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살아있는 물고기를 집회 도구로 학대한 경남어류양식협회를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동물해방물결

스위스, 바닷가재 산 채로 삶으면 ‘학대’

최근 미국에서는 과학적으로 물고기가 고통을 감지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늘고 있다. 스위스도 지난해 ‘바닷가재’에 대한 동물학대 사례가 인정돼 관심을 끌었다. 이후 스위스에서는 바닷가재를 먹을 때 산 채로 끓는 물에 넣지 못하게 하고 있으며, 이탈리아에서도 요리 전 살아있는 바닷가재를 얼음과 함께 보관하는 것은 고통을 주는 행위로 금지되고 있다.

한주현 변호사는 “그동안 국내에서는 어류ㆍ곤충 등을 대상으로 한 동물학대는 수사기관에서도 기본적으로 학대가 성립할 수 없다고 보는 시선이 많았다”며 “그러나 ‘미물’이라고 판단돼 온 것들이라도 동물학대에 해당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지연 대표 또한 “이번 케이스가 유죄 판결이 나면 어류 동물을 이용하는 행위에 대해서도 사회적 인식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며 “스위스에서 바닷가재를 산 채로 삶지 못하는 것처럼 어류, 갑각류에 대한 최소한의 복지 규정이나 권리를 인정하는 규정이 만들어지는 첫 단추가 되는 사건이 되길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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